• 주간한국 : [한일 문화대전] "어차피 부딪힐 일, 정면승부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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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1.05 11:58:00


  • “(지금까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무역장벽은 실제로는 주로 일본의 고급문화를 막았다. 저급문화는 갖가지 형태의 밀수를 통해 무역장벽을 넘었다. 덕을 본 것은 일본 대중문화를 본받고 베껴서 ‘창작’ 처럼 팔아온 사람들이다. 대중매체 분야에서 특히 심했다. 일본만을 따로 골라 다른 나라들과 달리 다루는 것은 어두운 과거에 우리 스스로 얽매이는 것이다. 일본을 여러 이웃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대하는 것이, 일본문화를 활기찬 우리 문화를 만들어내는 자양의 원천들 가운데 하나로 삼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울리는 태도다.” (소설가 복거일씨)

    “대중문화란 일종의 소비재인데 그것을 왜 이렇게 나라경제가 어려운 때에 들여와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장롱 속의 금반지까지 꺼내 모으던 때가 언젠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개방에 대해 실로 ‘개방된 논의와 국민적 합의’ 가 먼저 있고 개방이 결정돼야지 결정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려 하는가 하는 뒤바뀐 순서에 어이가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대중문화는 산업이다. 문화라는 말로 호도돼서는 안된다. 그런데 벌써 일본에 건넬 로열티를 다른 나라보다 10배까지 뛰어오르게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소설가 한수산씨)

    최근 정부가 일본문화 개방방침을 밝힌 뒤 두 작가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처럼 대조적인 주장을 폈다.





    다양한 사회적 논란 “장점 활용해야”

    일본문화 개방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대충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약간씩 다른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반에서 조금 벗어나 구체적인 부문으로 들어가 득실을 따져보면 양상은 사뭇 복잡해진다. 단기간의 예측에서 장기간의 전망까지.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득이 될 가능성도 있고… 등등. 아니면 문화를 단순 득실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양분의 흡수로 보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도 무성하다.

    우선 국제영화제 수상작 등을 1차로 개방키로 한 영화 부문을 보자. 벌써부터 일부 일본 작품에 대한 수입계약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린다.

    호남대 연극영상학과 복환모(40) 교수는 “일부 일본영화 마니아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겠지만 이는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본다” 며 “정정당당히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서 배우고 우리 소재, 우리 방식으로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면 우리에게도 길은 있다” 고 주장한다.

    “일본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수준이 높고 무엇보다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깔고 있어서 당분간 우리 시장을 어느 정도 빼앗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단계적·점진적 개방이라는 여과장치가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인디펜던트(독립영화제작사)의 역할이 절대적이고 종래의 메이저사들은 극장 전국 배급에 치중하는 시스템이나, 흥행 위주의 감독조차 일본적 소재와 미학전통을 살리는 노하우 등 일본의 장점을 잘 익혀 활용하면 우리에게는 자극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만화공세 본격화되면 우리작가들 치명타

    만화는 좀 복잡하다.

    만화평론가 김이랑(35)씨의 진단. “지금도 웬만한 일본만화는 다 번역돼 이미 보고 있습니다. 일본까지 가서 사보는 마니아라면 직수입되는 일어판 만화를 사보겠지만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원서 만화도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다 들어올 상황도 아니고…. 게다가 원서만화는 현지가가 500∼1,000엔대여서 어지간한 독자가 돈 주고 사보기는 어렵다고 봐야지요. 정말 겁나는 것은 우리 잡지사들이 일본 만화잡지와 계약을 맺고 통째로 번역해 판매할 경우입니다. 슈헤이 출판사 한 곳의 만화물량만 해도 우리 만화시장 전체와 맞먹으니까요. 아니면 일본 출판사가 직접 한국에 진출할 수도 있지요. 이렇게 되면 상당수 우리 작가들은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업계와 작가들, 그리고 정부가 한 데 힘을 모아 방안을 짜내야 할 때입니다.”

    시장 규모는 물론 앞으로의 산업적 가능성도 엄청날 것으로 추정되는 애니메이션도 상황은 단순치 않다.

    애니메이션 제작업계에서는 당분간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용자 입장에서 볼 때 그동안 이미 TV나 비디오로 사실상 어지간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다 봐왔기 때문이다.

    극장용이 들어올 때 그에 따른 기대심리나 원판 비디오를 한글로 자막처리한 것에 대한 매력이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대규모 변동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3,000억∼5,000억원 규모로 짐작되는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사실상 미국 등 외국 캐릭터에 의한 것이라고 볼 때 국내 업계는 타격을 입을래야 입을 것이 별로 없다는 자조적인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SDI 제작 PD 문성기(27)씨는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이 어쨌든 우리 업계에 당분간 악재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면서도 “문제는 이를 기화로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것을 잘 만들고 상업화할 수 있느냐” 라고 주장한다.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는 그동안 미국 일본의 하청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이를 부동산이나 빌딩 사는 데 투자하고 애니메이션에 재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본투자와 노하우 개발이 선진국보다 수십년 뒤졌지요. 그러나 일본에 수출한 대원동화의 ‘녹색전차 해모수’ 나 최근 비디오용으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무비의 ‘누들 누드’ 를 보면 우리에게도 헤쳐나갈 길은 있습니다. 완전히 절망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분발하느냐 좌절하느냐입니다.”

    이런 각 부문의 상황은 우리 문화계에 어떤 응전을 촉구한다. 그러나 제작·유통업계는 업계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이해관계가 다른 탓인지 일관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엇갈린 행태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느낌이다. 어차피 언제까지고 막기만 할 수 없다면 지혜를 모아 정면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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