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한일 문화대전] 문화충돌, 혼란은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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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1.05 11:59:00


  • 스스로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있다고 말하는 서울 C고 전모군(18)의 일본 대중문화 엿보기는 5년전인 중학교 2학년때 ‘동급생’ 이라는 일본포르노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 나돌던 이 비디오테이프를 친구로부터 빌려본 것이 일본대중문화를 접한 최초의 일이었다.

    물론 이사건(?)이 매니아가 되는데 계기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도 일본 포르노나 만화대여점에서도 일본만화를 숱하게 봤지만 일본문화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고교 2학년때 자신의 학교가 일본의 모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뒤 일본친구와 펜팔을 하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더욱이 이때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 일본 대중문화붐이 일고 있던 때였다.

    요즘 그는 요즘 NHK TV를 주당 4시간 이상을 시청한다. 고 3이 돼서 시청시간을 그나마 줄인 것이다. 아무로 나미에의 ‘CAN YOU CELEBRATE’, 스피트의 ‘WHITE LOVE’, X-JAPAN의 ‘DHELIA’, 인기그룹인 주디 앤 마리의 ‘소바카즈’(주근깨라는 의미) 등은 길을 가다가도 중얼거린다. 원령공주, 이웃집 토토르, 에반겔리온 등 인기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불법복제 CD롬을 구입해 보았다.

    그는 일본 대중문화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전달자이기도 하다. 전군의 학교친구인 이모군(18)도 전군으로부터 일본대중문화를 접한뒤 어느새 초보자수준을 넘는 관심과 정성을 쏟고 있다. 물론 ‘쪽바리’ 라고 놀리는 친구도 없지않지만 전군은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알고 싶어하고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일본문화 침투’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일본문화는 붐이다. 이것은 패션에서부터 음악 만화 영화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대중문화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에 침투돼 있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노랑머리와 남학생들의 귀걸이. 설령 그 근원이 유럽이나 미국이라해도 이것이 일본을 통해 전파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물갔다는 것이 10대들의 주장이다. 요즘은 천연색 머리나 진홍색머리 등 머리염색이 다양해졌고 귀를 뚫는 유행도 이제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반쯤 접어올린 양말패션과 뭉퉁한 신발, 강한 원색스타일, 깜찍한 손가방, 머리카락을 이마에 바짝 붙인 머리 등 이른바 촌티패션이다. 일본에서 유행한 것이 한달이 지나면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설명이다. 신세대들에게 패션텍스트는 바로 일본잡지인 ‘논노’ 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청소년잡지들도 일본 현지패션을 직접 취재할 정도로 청소년층의 유행에 부응하고 있다.

    멀리는 ‘캔디’ 에서부터 시작돼 ‘슬램덩크’ 와 ‘드래곤볼’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만화대여점을 점령하다시피한 일본만화붐은 새삼 거론하기도 식상할 정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은 한국청소년도 이미 개방이전에 불법 복제 CD롬이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최소한 한·두편정도 안 본 청소년이 없을 정도다. 역겨울 정도로 변태적인 섹스장면이 많은 일본의 ‘헨타이(變態)’ 사이트는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서핑의 기본이다.

    PC통신 채팅방에 들어가면 누군가 “음악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나는 일본의 누구누구 음악 좋아해요” 라는 표현이 금방 튀어나온다. 일본가수에 푹 빠진 청소년 가운데는 국내 음악은 전혀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국내가수는 가수같지가 않다는 설명이었다.

    청소년과 신세대의 주무대라 할 수 있는 신촌 홍대입구 대학로 등에 위치한 노래방에서는 일본음악도 팝송과 마찬가지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풍으로 장식하고 한·일간의 문화교류를 지향한다는 ‘재패니스 클럽’ 은 최근에 서울에만 3곳이 생겼다. 이곳은 문화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유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고 토론도 벌어진다. 처음에는 ‘로바다야키’ 류의 음식점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화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본카페인 것이다.





    주름적 소비계층은 10대 포함한 청소년

    현재 일본대중문화의 주류적 소비계층은 10대를 포함한 청소년층이다. 일본대중문화가 붐을 조성하게 된 배경에는 몰개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의 성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서울 D대학 일문학과 1학년 이모양의 말을 들어보자. “일본생활을 하다 한국에 온 남학생이 처음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던 동료남학생들이 한, 두명이 귀걸이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학과 1학년의 절반정도가 귀걸이를 해요. 3~4명은 귀걸이를 세개나 달고다닐 정도지요.”

    모방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일본 문화붐은 바로 모방심리가 낳은 산물일 수 있다. 더욱이 오랫동안 음성적으로만 맛볼 수 있었던 일본대중문화는 바로 호기심에 가득찬 청소년의 모방과 유행심리를 더욱 부추겼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10대를 대상으로 패션IP사업을 하고 있는 이정은씨(25)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유행을 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며 “패션 브랜드에서도 주고객층인 청소년을 잡기위해 튀는 스타일의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고 말한다. 이씨는 “자신에게 맞느냐보다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패션이냐가 청소년들의 관심거리” 라고 말했다.

    현상적으로 볼때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변별력’ 을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에서 가르쳐준 바도 없을 뿐더러 일본대중문화의 수용과 전달이 대개 학교친구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깊이있는 인식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만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인 수용자는 아니라는 사실은 그나마 위안이다.

    전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일본음악이 참신하긴 하지만 가창력 등 여러 부문에서 한국가수들이 뒤떨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화려한 무대장치 등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더구나 일본 드라마나 사무라이영화만 하더라도 자주 보다보면 차후에 전개될 스토리까지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때로는 유치하고 식상한 경우가 많다” 고 말한다.





    다른 문화적 가치기준, 변별력 길러줘야

    문화변별력은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성질은 것은 아니다. 이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오늘의 일본대중문화 붐은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주윤발이나 유덕화, 임청하 등 홍콩스타에 열광하던 과거의 홍콩영화붐과 동일한 선상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일반적인 우려만큼 일본대중문화의 침투가 심각한 위기는 아닐 것이다.

    재패니즈 클럽인 신촌의 ‘가케하시’ (架橋)의 김학선씨(34)는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으로 문화의 수용자층이나 한국의 문화산업계에서 한동안 몸살을 앓을 가능성은 있다” 며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정서적 차이가 명확하기 때문에 일본대중문화가 보편적 가치를 얻기는 어렵다” 고 말한다.

    사실 잔혹한 폭력성과 변태적 섹스로 인식되는 일본의 저급대중문화 유입이 일본문화를 수입하는데 따른 청소년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차적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이미 이와같은 저급문화는 이는 이미 개방이전에 들어올만큼 들어왔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이에 대한 문화적 심리적 저항력을 갖고있지는 못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일본문화의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식되지 않고 있다는데 문화충돌의 심각성이 있다. NHK 등 일본위성TV를 자주 보게되면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예컨대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광경을 더러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이 청소년들의 호기심어린 눈에는 멋있고 다정한 분위기로 느껴진다면 ‘우리는 왜 저렇게 해서는 안되는가’ 라는 문화적 혼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바로 정신적·생활관습적 측면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한·일 문화충돌의 혼란과 어려움은 ‘바로 지금부터, 청소년에게서’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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