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교황회칙] "허무주의.실용주의가 진리탐구 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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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1.04 11:52:00


  • 금세기 최장수 교황인 요한 바오로2세가 지난 9월16일 즉위 20주년을 맞았다. 교황은 이때를 맞춰 현대 철학의 조류를 포함한 제위20년 동안의 광범한 사상적 성찰을 담은 기념비적 회칙을 발표했다. 회칙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에게 교육방향 등을 지시하는 가장 권위있는 공식 문서의 하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번까지 포함해 모두 13번의 회칙을 발표했다.

    ‘신앙과 이성’ 제하의 회칙은 인간본질에 대한 의문과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명쾌히 정리한 것이다. 폴란드 크라코프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한 바 있는 교황은 이번 회칙에서도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진리와 생명, 자유라는 철학적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종교·사상의 지도자인 교황의 지적은 가톨릭신자는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이 생각해보는 내용이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생략하고 요약한다. 이 회칙의 일부내용은 언론에 소개됐으나 더 많은 부분을 보고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이 있어 다시 정리한 것이다.

    회칙은 먼저 “신앙과 이성은 인간정신이 진리탐구를 위해 날아오르는 양날개” 라고 시작한다.





    전문

    문 와 시대가 다르더라도 인류역사를 일별해보면 인간생활에서 동일한 물음이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악은 왜 존재하는가, 이승의 다음은 무엇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힌두교나 공자의 저서, 부처의 가르침 어디서나 발견된다. 또 그리스의 대시인 호머와 대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작품에도 들어있다. 교회의 가르침도 비슷하다. 단지 하나님을 통해 진리에 다가간다는 것만 다르다.

    이 문제는 철학의 영역이다. 인류는 인간본질에 대한 진리탐구의 수단으로 논리학 자연과학 역사학 등을 앞세워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의 그릇된 사고가 고개를 들고있다. 현대철학은 존재의 탐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절대적 진리를 폄하하는 각종 이념들까지 나오고 있다. 불가지론과 상대주의는 철학적 탐구를 회의주의라는 부유(浮遊)의 모래사장으로 오도하고 있다. 진리에 대한 신의 부족은 모든 관점이 정당하다는 합법적인 다원주의까지 등장시켰다.

    이에따라 진리를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진리와 신앙간의 관계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급격한 변 의 현시대에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세대들이 적절한 관점을 상실치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허망한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회의주의로 빠질 위험을 극복하고자 함이다.





    1장. 지혜의 계시

    철학에 의한 진리나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진리는 상반되지 않는다. 철학이 감각, 경험을 근거로 이성의 빛에 인도된다면 신앙은 영혼을 근거로 구원의 메시지와 축복, 역사를 통해 증명된 진리의 빛에 인도된다. 보이지 않는 신의 계시는 특정지역·문 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인간존재의 궁극적 목적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에서도 중요한 테마의 하나이다. 방법과 내용은 달라도 신을 명상하는 즐거움의 길로 인도한다.





    2장 이성에 대한 신뢰

    고대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는 철학적 탐구와 일치했다. 세계의 구조와 천체의 움직임, 동물의 본성 등을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신을 철학 한 것은 인류의 큰 진보중 하나다. 그러나 사물의 위대함이나 아름다움을 보고 창조주에까지 생각이 미친 그리스 철학자들의 발전이야말로 신의 계시다. 인간이성은 신앙에 힘입어 사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인간 자신의 진리를 구할 수있다. 정 히 말한다면 신에 대한 두려움이야 말로 진정한 지식의 시작인 것이다.





    3장 진리에로의 여행

    진리는 애초 인간에게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의미가 있는가,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등. 첫눈에는 인간존재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또 인간이성의 한계로 절대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 진리에 도달하는 첫 단계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경험이나 본능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개선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산적한 과학적 발견들과 정보의 진위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인간은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믿음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타인이 얻은 지식을 신뢰하는 것이다. 의심과 불신의 풍조는 ‘우정이 진정한 철학적 사유의 최고의 전범’ 이라는 고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믿음이야말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여행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계시적 진실과 철학적 사유의 진실은 그래서 인간이성의 양축을 이루게 된다.





    4장 이성과 신앙의 관계

    그리스 철학자들은 최초로 이성과 종교의 관계를 밝히고 신성시하는 믿음에 이성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절대이성(우주이성)을 갈구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등 가톨릭 사상가들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의 이성적 탐구를 존재를 인식하는 큰 틀로 승 해 발전시켰다.

    그러나 중세 이후 이성주의의 흐름은 무신론적 인간주의라는 형태로 신앙과 이성을 갈라 놓았다. 신앙을 완전한 이성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한 것이다. 극단적 이성주의는 현대에 와서 허무주의(니힐리즘)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허무주의에서는 인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감각과 경험의 조합에 불과하고 모든 존재는 일시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언명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현대 철학은 절대진리와 지식의 탐구에서 벗어나 주변적인 역할로 변모하고 철학적 탐구는 실용주의와 권력향유의 목적으로 전락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지성과 의지의 생산물들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철학자들은 진리탐구를 포기하고 실용주의적 관점에만 집착한 듯하다.





    5장 철학문제에 관한 교권의 개입

    존재론, 상대주의 등과 관련된 잘못된 해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점점 만연하고있다. 교회내에서는 성경만이 판단의 최고기준이라는 성경지상주의라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금세기 역사의 교훈은 이제 절대진리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과 새로운 탐구의 길을 과감히 개척하라는 것이다.





    6장 철학과 신학의 상호작용

    신학은 인류역사의 문화전통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수용한다. 각기 다른 문화 공간에 살고있는 인간도 근본적인 욕구는 같기 때문이다. 철학에 대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철학을 탐구하는 인간은 복음의 진리를 더 잘 이해할 수있다. 인간이성은 새롭고 무한한 영역을 찾기 때문에 복음은 철학을 풍부히 할 따름이다. 독자적인 영역이 있는 철학은 자연질서에 대한 진실을 찾는 데는 중요한 도구다. 그러만 초자연적인 질서를 탐구하는 신학을 부정하는 철학은 진실의 더 큰 분야를 탐구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신앙은 철학자들에게 이성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에 신학과 철학은 사실상 구별된다. 휴머니티를 배운 철학자라면 악과 고통, 인생의 의미 등 어려운 문제를 헤쳐나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악의 존재, 영혼의 개념 등 존재를 연구하는 현대 철학사조에 인간의 존엄, 평등, 자유를 이미 선언한 신앙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세신학자들이 비기독교 철학자들을 원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학과 철학은 이성과 절대진리를 확증하기 위한 서로의 대화상대로 필요했던 것이다. 철학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원칙에서 출발하지만 신앙으로 믿음을 얻는 통합의 관계에 놓여있다.





    7장 필요조건과 과제

    현대의 조류중 눈에 띄는 것은 의미의 위기다. 과학적 욕심에 따라 인생과 세계에 대한 전망은 지식의 조각화를 낳아 의미탐구를 어렵게 하고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자료와 사실의 홍수는 과연 학문이 탐구에 소용되는지 의심스럽게까지 한다.

    서로 답변을 내놓겠다는 각종의 이론, 세계와 인생을 해석하겠다는 갖가지 관점들은 의문을 증폭시키고 회의주의와 무관심, 각종 니힐리즘으로 인도할 뿐이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영혼, 초월적인 영역에 대한 고려없이 내성적 경향으로 흐르는 애매모호한 사상을 침투시켰다.

    신의 계시와 조화해 철학은 우선 절대적인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리함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후에 흩어진 과학의 모든 영역을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본래적 목적으로 통합할 수있다. 실용적 가치만을 추구하고 인간기술의 가능성만 고도로 포장한다면 인류는 말살당하고 비인간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20세기 말의 우리는 현상에서부터 근본으로 이동해야 하는 다급한 필요성에 봉착해 있다. 경험이 인간의 내면과 영혼까지 비추기도 하지만 경험에만 안주해서는 안되고 영혼의 핵심, 근원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형이상학을 피하는 철학은 진실을 이해하고 명상하는 역할에는 절대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신학도 형이상학 없이는 종교적 체험의 분석에는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다.

    형이상학의 중요성은 해석학이나 언어분석의 발전을 고려하면 더욱 간절하다. 일부학자들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할까에만 집착하고 이성이 사실의 핵심을 발견하는 단계로는 나가지 않고있다. 또 신앙의 내용을 모호하게 하고 절대적 진리를 부정한다.

    인간은 통일되고 유기적인 지식을 터득할 수있는 존재다. 이것은 또한 지금까지 내려온 문화적 유산이라는 전통을 존중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이성을 부정하는 현대의 철학적 사조들은 이 모든 과정을 부정한다.

    ▲역사주의

    역사주의는 툭정시기나 역사적 목적을 기준으로 진실이 결정된다고 본다. 즉 어떤 시기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유의 역사는 과거의 시기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고고학적 자료에 불과할뿐 대부분 진부하거나 의미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신학탐구에 있어 역사주의는 모더니즘으로 가장한다. 일부학자들은 현대의 사고와 언어만을 고집하고 전통을 무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더니즘은 진실의 요구를 절대 만족시키지 못한다.

    ▲과학주의

    종교적, 신학적, 윤리적, 심미적 지식을 환상으로 간주하는 과학주의도 경계대상이다. 실증주의, 신실증주라는 이름으로 형이상학의 본질을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존재의 개념을 부정하고 가치를 감정의 산물로 폄하했다. 이러한 경향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도덕적으로 용인된다는 가정마저 낳았다.

    ▲니힐리즘

    인간성과 인간존재를 부정하는 니힐리즘은 인간의 존엄성마저 부정하고 권력이라는 파괴적인 힘에 의존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일부 학자들의 주장인 포스트모더니즘은 때론 부정적이고 때론 긍정적이어서 역사의 경계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확신의 시대는 지났고 인간은 총체적 의미상실의 시대에 살고있다는 주장은 절대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때 신학과 교회는 끊임없는 대화로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결론

    이성과 관련해 철학의 가치는 신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절대진리를 부정하는 철학은 한계가 있다. 인류공통의 관점을 통합하는 철학이 신앙에 원용될 때 진리를 구하는 신앙에 모든 분과학문은 비로소 소용된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이룩한 과학적 진보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 과학은 인간존재의 징표인 철학과 윤리적 가치와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과학자들에 당부한다. 정리= 김정곤·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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