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새 해가 돋는 현장] 화개장터 정겨움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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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2.30 11:58:00


  •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상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윗마을 구례사람 아랫마을 하동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있구요 없을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가수 조영남이 불렀던 ‘화개장터’ 의 가사처럼 화개장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정말 ‘없을것이 없는’ 5일장이었다.

    화개장은 경남쪽 지리산에서 발원한 화개천과 호남을 가로지른 섬진강 물줄기가 만나고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만나 물건을 사고팔고 정을 주고 받으면서 영호남을 연결하는 정겨운 가교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로 전남 구례군 토지면과 맞닿아 있고 ‘10리 벚꽃터널’ 로 유명한 쌍계사와도 지척의 거리인 이곳은 섬진강을 낀 천혜의 운송수단이 남해·하동 등 경상도 사람과 남원·구례 등 전라도 사람이 만나는 장터를 형성하게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개장 당시는 2일과 7일에 장이 섰으나 1928년께부터 지금의 1일과 6일에 개시되는 5일장으로 변했다고 전한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두릅·고사리 등 산중산물(山中産物)과 참나무 숯 등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윗마을 구례에서는 쌀이며 옷가지·과일·가축 등이 넘어왔다. 남해·하동에서는 김·미역·소금·생선 등 수산물이 섬진강 뱃길을 따라 장터로 옮겨져 영호남 특산물 거래 중심지 역할을 해 이 지역 주민들의 빼놓을 수 없는 생활터전이기도 했다.





    전라도·경상도 촌로들 모이는 ‘만남의 장’

    장터옆 나루터 언덕배기에 늘어선 주막에서 흐르는 강물을 벗삼아 시원한 막걸리에 섬진강에서 갓 잡아낸 잉어·붕어·은어 등 살아뛰는 물고기회도 화개장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중 하나였다.

    또 3도(경남·전남·북) 6군 9면 12개고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마을 전체가 북적거리고 물건을 흥정하는 장돌뱅이의 시끌벅적한 틈사이로 한잔 막걸리에 달아오른 촌로들이 시정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만남의 장’ 으로 더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5일장 1번지’ 로 자리매김됐던 화개장은 10여년 전부터 수해상습지구인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장터 면적이 과거의 절반 가량으로 줄었고 탑리 일대도 현대식 상점과 식당들이 즐비하게 되면서 5일마다 서는 장날로서만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화개장터는 현대화의 거센 물결에 밀려 쇠퇴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여전히 김동리의 소설 ‘역마’ 의 무대이자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 로 황량함 보다는 온화함으로 깊이 새겨져 면면이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여기에다 97년 대선으로 진정한 의미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그 어느때보다 ‘영호남 화합’ 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화개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무거운 침묵을 걷어내고 금방이라도 둥둥 북소리 울리며 마술시범 보이는 약장사와 장터 인근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우려져 낮술한잔에 덩실덩실 어깨춤 추는 정겨운 장터 풍경을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 화개장은 노래속 풍경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면서 화개장의 이름만 듣고 찾아와서는 실망하기 일쑤였지만 영호남 화합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최근들어 부쩍 늘고 있다.

    또 김혁규경남지사와 허경만전남지사의 주창으로 영호남 8개시도지사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 를 구성하고 동서화합시대를 선언하고 나섰고 경남과 전남도는 전남 고흥-여수-경남 하동-사천을 잇는 남해안 일주도로 개설과 섬진강 유람선사업,광양만·진주권 광역개발사업을 발표하며 갈등을 딛고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옛 모습 살린 민속촌 형태로 복원

    때마침 경남도와 하동군은 화개장의 옛 모습을 복원키로 결정, 화개장터에서‘전라도와 경상도의 화개장터’ 라는 후렴구를 목청높여 부를 날이 머지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화개장터 복원계획은 총16억원을 들여 3,061평의 부지에 180평규모의 전통 장옥(長屋)3동을 짓고 장돌뱅이들의 저잣거리와 난전, 주막 등 옛 시골장터 모습을 원형 그대로 되살리고 넓직한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곁들인 민속촌형태로 세워진다.

    스스로를 경라도(경상도와 전라도)사람이라고 말하는 정구용 하동군수는 “화개장터는 장터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만큼 동서화합시대의 근원지로 철저하게 원형 그대로 되살리겠다” 는 포부를 밝혔다.

    올 연말 화개장터가 복원되면 화엄사, 쌍계사, 청학동, 지리산 등 관광명소를 연계한 관광벨트를 구축, 명실상부한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국민관광코스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또하나의 ‘영호남 화합의 상징’ 인 화개나루터도 사라진 돛단배 대신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영호남 화합교’ 가 놓여 영호남을 다시 잇게 된다.

    경남도와 전남도는 120억원을 들여 나루터 인근에 폭 13㎙, 길이 300㎙의 ‘영호남 화합교’ 를 2001년까지 건설키로 합의하고 지난해 이미 설계를 마친 상태다. 물론 사업비는 양도가 사이좋게 절반씩 부담한다.

    영호남 수운(水運)을 주도한 교통요충지와 지역특산물 집산지로 화개장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 했던 화개나루터. 수로(水路)로 연결하는 섬진강 600리 물길따라 생긴 수많은 나루터중 가장 오래됐고 이용객도 제일 많았던 화개나루는 전남 구례군 간전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 간 400㎙의 섬진강을 긴 밧줄 한가닥이 설치돼 돛단배가 양쪽을 오갔던 이 지역 유일의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도로가 나면서 이용객이 눈에띄게 줄고 70년대부터 돛단배도 자취를 감추었으나 구례쪽 사람 조식(26)씨가 나룻배를 띄워 여전히 육로교통의 지름길로 애용되고 있다.

    하동포구 80리따라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가 만나는 ‘경라도’ 의 땅 화개. 화개장터가 옛 모습을 되찾을때 깊게 패였던 영호남의 골도 메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동·구례=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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