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허주, 빈배에 불만만 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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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2.02 11:20:00


  • “당 모양새가 이래서야…. 이제 민정계는 끝났어. (민정당) 대표까지 한 권익현이가 저틈에 끼어서 저런 것(부총재)을 받나. 굴러온 돌이 당 다 말아 먹는구먼. 허주(虛舟·김윤환 전부총재의 아호)도 이회창이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사 알게 됐을 걸”

    한나라당 전국위원회가 열린 11월26일 하오 여의도 중앙당사 10층 대회의실. 단상에 앉은 이한동 전부총재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으로 곁에 앉은 사람들 들으라는 듯,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투덜’ 거렸다. 김윤환 전부총재, 이기택 전총재권한대행과 함께 부총재직을 ‘고사’ 한 이 전부총재는 전국위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먼산바라기만 했다.

    “어이 김 부총재, 여하튼 잘 됐어. 열심히 하라구” 신임 김덕룡 부총재와 함께 나란히 단상에 앉은 신상우 국회부의장이 김 의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다들 부총재 하겠다고 했다가 모두 발 빼버리고…. 어쩌다보니 저만 하게 됐습니다” 김 부총재는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변명’ 을 했다. 신 부의장의 축하인사에 혹여 들어 있을지 모를 ‘가시’ 를 의식한 대응이자, 한자리 건너 옆에 앉은 이한동 부총재를 향한 일종의 ‘쿠션 먹이기’ 였다.

    이상기류는 단상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가 부총재 되는지 겨우 5분전에 알았습니다” 전국위 행사 시작 직전 민관식고문을 만난 박희태 원내총무가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부총재 결정됐어? 나는 아직 누가 부총재 되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점잖게 말하면 해학과 골계-시중언어로 말하면 ‘남 골지르기’ 부문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하는 민 고문은 한술 더 떴다. “고문께서 자꾸 그런 말 하시면 고문이 아니라 고문관됩니다” 조어(造語)에는 일가견을 이룬 박 총무도 지지 않았다. 모두가 당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및 의사소통 과정을 비꼰 주거니받거니였다.





    “이 총재는 믿을 수 없는 사람”

    이 정도 에피소드라면 야당행사에선 빠지면 오히려 섭섭한 ‘고명’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총재직을 끝내 ‘걷어 찬’ 허주측의 ‘말·말·말’ 은 도저히 행사 뒷 얘기가 될 수 없었다.

    “무늬만 실세였다” “있을 때 잘하지” “아예 이번 기회에 반(反)주류나 할까”……… 김윤환 전부총재가 부총재직 수락을 거부키로 최종결정했음을 고지하기 위해 25일 낮 한나라당 중앙당사 기자실을 찾은 김 전부총재의 한서빌딩 멤버(김 전부총재의 개인 사무실은 여의도 한서빌딩에 있다)들이 거침없이 쏟아낸 울분어린 토로였다.

    ‘신의를 저버린’ 이회창 총재에 대한 성토는 일과성 분풀이가 아니었다. 김 전부총재의 최측근이자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캠프의 핵심브레인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근보좌했던 윤원중 의원은 이 총재를 ‘믿을 수 없는 사람’ 으로 규정했다. “이 총재는 8·31 전당대회 전 허주에게 당의장 또는 수석부총재를 약속했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자 슬슬 말이 바뀌더니 나중에는 DR(김덕룡 부총재)과 함께 ‘그냥’ 부총재를 맡아달라고 했다. 허주는 또 받아들였다. 이회창-허주-김덕룡 삼각체제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는 게 허주 판단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선 다시 바뀌었다. 이기택 전대행과 이한동 전부총재까지 모두 참여키로 했다며 다시 양보를 요구했다. ‘갈 데 없는 허주로선 어차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는 괘씸하고도 오만한 생각을 한 것이다”

    윤 의원은 이 총재의 ‘정치적 인성’ 까지도 문제삼았다. “이 총재는 자기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다.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이 걸린 사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고집대로 하지만, 아무리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운 사람이라도 해도 남일은 나몰라라하는 식이다. 일례로 집단지도체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총재는 다른 모든 부총재의 반대를 물리치고 단일지도체제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번 부총재 임명 과정에선 비주류가 딴죽을 걸고 넘어지자 ‘포용과 화합’ 을 앞세워 오히려 허주의 희생을 요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주변 인사들, 결별 기정사실화

    허주 자신도 이 총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로선 2년반동안 이 총재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이 모양이다. ‘신의를 안 지키는데 더이상 어떻게 돕나’ 라며 부총재를 맡지 말라는 주변의 요구가 많았다. 솔직히 (이 총재에 대해) 서운한 감정도 있다” 그러면서도 허주는 이 총재와의 결별 가능성에 대해선 “결별은 무슨…. 백의종군하겠다” 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허주 주변인사들은 이미 결별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허주가 부총재직을 끝내 마다하고 신(新)이회창체제에서 발을 뺀 이유가 과연 측근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 신의’ 문제 때문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는 것이다. 무엇보다 허주의 선택에는 사정(査正)과 한나라당 부총재직 간의 함수관계가 근인(根因)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부총재단 불참론을 개진했던 측근들은 허주에게 “그런 식으로 굽히고 들어가서 부총재직을 받아봐야 ‘방탄 부총재’ 란 오명밖에 얻지 못한다. 세풍사건 당사자인 서상목 의원이 정책위의장에 임명됐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것처럼 남는 것 없이 망신만 당하게 된다.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좋은 소리 못 듣을 게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 차라리 장렬히 전사한 뒤 정치적으로 부활하는 길을 택하자” 고 건의했다.

    이 간언은 뒤집으면 “부총재직을 맡는 것이 오히려 사정의 칼날에 목을 들이미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는 논리로 이어진다. 한 측근은 이와관련, “허주가 표적사정 당한 것은 사실 아니냐. 이 총재를 도운 사람만 당했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멀쩡하지 않느냐” 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허주의 부총재단 불참을 사정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가뜩이나 사정문제로 덜미가 잡혀있는 처지에 여권의 ‘이회창죽이기’ 에 말려들어 명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 고 말한다.

    여권과의 교감설은 이같은 시각에 바탕한 의혹제기다. 그러나 허주의 사법처리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하다. 사전접촉의 흔적도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다. 여권의 ‘은전’ 을 겨냥했다 해도 현재로선 가능성 열어두기 차원의 ‘성의표시’ 였을 공산이 크다. 허주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걸까.

    홍의곤·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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