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스포츠계 귀족들의 '표 놓고 돈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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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2.23 17:32:00


  • 올림픽 개최지선정을 둘러싼 충격적인 뇌물스캔들의 폭로로 104년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그동안 소문과 추측으로만 전해지던 뇌물스캔들이 IOC 핵심인사에 의해 폭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발언과 증거들이 잇따라 터져나와 한동안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폭로 내용

    뇌물스캔들이 처음 터져나온 것은 12월 12일. 마르크 호들러(80) IOC집행위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최고 300만 달러에 달하는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매표행위가 자행됐다고 폭로했다.

    호들러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까지 4개 동·하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부정이 행해졌고 대리인들이 표를 모아주는 대가로 유치 도시에 100만달러까지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115명의 IOC위원중 5~7%가 아예 뇌물을 요구하고 있으며 IOC위원 한명을 포함한 4명의 대리인 그룹이 조직적으로 재정지원을 대가로 표를 던지기로 약속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대리인들은 유치에 성공한 도시에 대해 300만~500만달러를 요구할 뿐아니라 ‘자신들의 도움없이는 올림픽을 유치하지못한다’고 공공연히 협박(?)까지 하고 다닌다는 것.

    호들러는 이같은 뇌물스캔들의 일례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의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서 뇌물이 오고갔고 문서로 된 증거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솔트레이크시티 유치위원회가 91~95년 아프리카지역 6명의 IOC위원의 친척을 포함한 13명에게 ‘40만달러’의 뇌물을 주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이탈리아 휴양지 세스트리에시에서 97년 세계스키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키연맹에 120~150대의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다고 밝혔다.

    호들러는 누구?

    폭탄선언의 주인공인 호들러는 지난30여년간 IOC 요직을 두루 거친 세계 스포츠계의 거물. 1918년 스위스 베른 태생으로 변호사 출신인 그는 지난 63년 IOC위원으로 선출돼 후앙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회장과 함께 가장 고참위원이다. 그는 이미 IOC부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IOC 법사위원회와 스포츠 법제분과위원을 맡고 있는등 각종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특히 지난 51년부터 올 5월 까지 장장 47년동안 국제스키연맹 수장으로 군림해왔으며 올림픽 동계스포츠연맹회장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계속되는 폭로

    호들러의 폭탄선언후 그의 발언을 뒷받침할 또다른 사실들이 잇달아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가장 먼저 캐나다출신의 딕 파운드 IOC부위원장의 동조 발언이 이어졌다. IOC의 솔트레이크시티 부정매표행위조사단을 이끌고 있는 그는 13일 “IOC는 대리인들이 득표활동을 한 대가로 돈을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IOC내부에서는 일부 대리인이나 집행위원들의 행태를 주시해왔다”고 밝혀 호들러의 주장을 지지했다. 또 92년과 9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앵커리지 조직위원회의 한 위원도 이날 자신도 80년대 중반과 후반에 IOC의 대리인들로부터 뇌물을 주면 표를 몰아주겠다는 유혹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앵커리지 올림픽조직위(AOOC) 부위원장을 지낸 릭 너랜드씨는 이날 앵커리지 KTUU-TV와의 인터뷰에서 “투표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며 재정 지원을 요구해왔으나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릴리함메르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94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게하르드 하이버그IOC위원도 이날 오슬로의 일간지 ‘베르덴스 강’과의 인터뷰에서 대회를 유치하려는 도시들로부터 수차례 선물과 향응을 받았으며 이러한 것들은 IOC위원들 사이에서는 ‘관행화’되었다고 밝혀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각국조직위및 IOC의 반응

    뇌물제공 리스트에 오른 시드니, 나가노, 애틀랜타, 솔트레이크시티등은 즉각 반박 성명을 통해 뇌물수수는 부인했지만 뇌물요구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꼬리를 내리며 시인했다.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원회(2000년 하계)는 IOC표를 사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며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결코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본 나가노시 관리들도 98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뇌물을 제공한 적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주말판 ‘스포츠 닛폰’지는 ‘더러운 올림픽’이란 제목으로 나가노시가 불특정용도로 20억엔이상을 썼다고 보도, 뇌물스캔들 가능성을 높였다.

    한편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는 호들러의 주장을 시인했다. 프랭크 조클릭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조직위(SLOC)위원장은 14일 “올림픽유치위원회가 시행한 40만달러의 ‘장학금 프로그램’에 대해 사죄하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장학사업은 유치활동과 관련이 없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관련시설등 개최에 따른 유리한 점 때문에 결정됐을 것”이라며 장학금이 뇌물이라는 주장을 정면 부인했다. 그러나 솔트레이크시티는 이 장학사업 추진 초기인 91년, 98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일본의 나가노시와 겨뤄 패배했으나, 4년뒤 2002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스위스의 시온과 겨뤄 압도적인 표차로 이겨 의혹을 촉발시켰다.

    호들러의 폭탄선언후 ‘극히 개인적인 발언’이라고 일축했던 사마란치위원장도 뒤늦게 진화작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사마란치는 “동서 양진영이 올림픽을 보이콧했던 70,80년대와 벤 존슨의 약물복용이 밝혀진 88년 서울 올림픽때처럼 심각한 상태”라며 “유치도시들이 표를 샀다는 그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밝혀지면 지위를 막론하고 전원 축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뇌물스캔들의 전래

    ‘오륜의 영주들’‘스포츠의 마피아’로 불리는 IOC위원들을 둘러싼 뇌물 스캔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6년 7월 수년간 사마란치의 일대기를 기록했던 작가 앤드류 제닝스는 미 케이블TV채널 HBO와의 인터뷰에서 IOC위원들을 ‘범죄자’로 지목하며 “IOC위원들이 하는 유일한 일은 2년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올림픽개최를 희망하는 도시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뒤 여름 휴가를 보내기에 적당한 곳에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또 같은해 9월 독일의 ‘베를리너 차이퉁’지는 “IOC 전사무총장 모니크 베를리우(당시 61세·여)가 올림픽과 관련된 IOC의 비리를 폭로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사마란치위원장으로부터 730만달러를 받아 챙겼다”고 보도했고 이를 AP통신이 전세계에 타전하기도 했다.

    양심선언인가 또다른 음모인가.

    일부에서는 호들러의 폭탄선언이 그의 말대로 양심선언이라기 보다는 IOC내 권력암투에서 불거져 나온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0년 모스크바 총회에서 IOC수장에 올라 18년간 권좌에 올라있는 사마란치 위원장에 대한 반대파의 반격이 또다시 시작됐다는 것. 이같은 해석은 그동안 사마란치의 권위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져온 파운드부위원장이 호들러의 폭로에 곧바로 동조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양심선언이든 또다른 음모의 시작이든 사마란치 위원장과 IOC수뇌부는 이번 폭로로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박희정·체육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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