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문화로 세상읽기] 기분 나쁜 밤, 기분 나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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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1970.01.01 09:00:00 | 수정시간 : 1998.12.30 14:22:00


  • 하나같이 ‘기쁘다, 기분 좋다, 즐겁다’는 제목을 붙였다. ‘기분좋은 밤’(금요일 오후9시50분) ‘기쁜 우리 토요일’ ‘코미디 세상만사’(금요일 오후9시50분)…. 몰래카메라로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이 기분좋고 즐겁다는 얘기다. SBS‘기쁜 우리 토요일’(토요일 오후6시)의 ‘스타 이런 모습 처음이야’는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스타들이란 사생활까지 인기로 팔아 먹으려 하니까. 원조격인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법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경규가 간다’나 ‘양심냉장고’처럼 정말 기분좋은 모습도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시청자의 사생활을 들춰내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상품을 미끼로 퀴즈게임을 벌이고, 그들의 숨은 비밀을 캐내고, 인내심과 양심을 시험하는 TV의 몰래카메라. 선정적인 소재를 시사고발이라는 명목으로 몰래 찍어 방영하는 것 이상의 오만함이자, 저질행동이다. 주말을 하루 앞둔 즐거운 금요일밤을 TV가, 저질 코미디언과 코미디프로가 망친다.

    SBS TV ‘기분 좋은 밤’의 ‘랭크실험실-실험카메라’코너. 처음 소개받는 남자 앞에서 머리비듬을 털고는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는데”“씻는게 제일 싫어”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는다. 과거가 있다며 용서해 달라고 우는 연기를 하고, 공주병 환자처럼 행동해 남자의 반응을 지켜본다. 권위적인 남자를 실험한다는 명목이다. 집에 전화해서는 아들이 누드모델이 됐다고 하고, 딸이 백댄서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는 부모들의 반응을 몰래카메라로 담는다. 부모-자식 간의 직업관 차이를 알아본다는 이유를 붙였다.

    바로 ‘악마의 속삭임’코너가 이어진다. “이래도 악마의 유혹에 안 넘어가고 배겨”하는 시험무대다. 내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접근해 내기를 건다. 그 모습을 아내가 개그맨 신동엽과 지켜본다. 경품과 경쟁심에 넘어가 결국은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고 내기를 하는 남편.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모른척 묻는다. 시치미 떼는 남편. 골려주기 위해 내기에서 진 가짜부부가 파출부를 하겠다고 찾아와 남편을 당황하게 만든다. 금주를 선언한 남편을 공짜 술로 유혹한다. 급기야 여자를 등장시켜 유혹에 넘어가느냐까지 시험했다.

    같은 시간 KBS 2TV는 ‘코미디 세상만사’의 ‘공처가를 찾아라’코너. 동네 약국에서 약사가 손님(남자)에게 병과 상관없는 질문을 한다. “아내의 어디가 좋으냐” “가장 최근에 키스한 날은”에서 “어제 저녁에 무얼 먹었냐”는 하찮은 질문까지. 남자가 대답할 때마다 몰래카메라로 이를 지켜보던 아내는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다섯 문제를 다 맞히면 공처가 자격이 있다며 상품을 주는 TV.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TV쇼로 조작된 영화 ‘트루먼 쇼’나 가공할 첨단 추적과 감시의 힘을 보여주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보고, 화장실 병원 여관의 불법 몰래카메라 파문과 안기부와 검찰의 도청사실을 알고는 ‘프라이버시의 위기’를 느끼는 요즘. TV까지 덩달아 춤을 춘다. 아니 먼저 안방까지 쳐들어와 사생활을 헤집고 가족의 믿음까지 무너뜨린다. 물론 스스로 사생활을 방송에 팔아버리는 시청자의 주권의식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그런 틀을 만들어 놓고 ‘좋은 밤’이라고 떠벌이는 TV는 뭔가. 기쁨주고 사랑받는, 공공성, 인간성이라는 말이 공허하다. 일본의 저질 TV문화를 탓할 자격도 없다. 17일 국무회의가 ‘성폭력범죄 처벌및 파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의결했다. 방송의 몰래카메라부터 수갑을 채워야 한다.

    이대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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