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우리, 희망을 함께 나눠요] 소아암 아동 '특별한 아이'취급은 오히려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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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3.06 12:52:26 | 수정시간 : 2007.03.06 12:58:01
  • 소아암 아동 '특별한 아이'취급은 오히려 상처
    [우리, 희망을 함께 나눠요]
    다시 시작하는 학교생활,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문제









    “다섯 살 때 병원에 와서 수많은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엄마를 힘들게 하였는데, 열 살의 나는 또다시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어요. 여러 번의 항암제를 맞으면서 구역질도 나고 힘들기도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고 싶어요.

    (중략) 병원 생활은 힘들어도 머리카락 없는 나의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병원이 좋을 때도 있어요.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 나와 똑같은 치료를 받을 땐 마음도 아프고 잘 돌봐주고도 싶어요. 하나님! 우리 어린이병동 친구들 모두모두 빨리 낫게 해주세요.

    사랑하는 엄마! 나 열심히 치료 받아서 학교도 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도 싶어요.

    엄마! 꼭 이겨낼게요. 엄마! 미안해요. 항상 웃어주시는 엄마의 얼굴, 무지무지 사랑해요.”

    <이지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2002년 어린이날 기념문집 중에서>

    소아암 어린이 학교 복귀 및 적응을 위한 캠프에서 민우(가운데)가 급성림프성 백혈병을 극복하고 올해 초등학교애 입학한 선종(왼쪽)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른쪽은 선종의 형 영종이. 사진 제공 = 한국맥도날드
    해마다 1,200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암과의 사투를 벌인다. 어른들도 견뎌내기 힘든 병임에도 어린 생명들은 삶의 절벽 끝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며 버틴다. 암이란 무시무시한 병마와의 싸움에서 끝내 이기고 돌아온 작은 영웅들!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서면서 아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학교 생활은 핑크빛만은 아니다.

    올해 재활복지대학에 입학하는 김민우(20) 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왼쪽 팔과 다리에 가벼운 마비 증세가 왔다. 그러나 1년 동안은 종양이 너무 작아서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하다가 이듬해 감기 몸살로 쓰러지면서 ‘뇌종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뇌를 구성하는 세포의 비정상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분열로 발생하는 뇌종양은 두통, 구토, 운동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병이다. 평소 잔병치레가 드물 정도로 건강하던 민우 군은 그러한 결과가 쉽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민우 군은 “1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졌으니까 막연히 ‘어디 아프겠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많이 놀랐다”면서 “과연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무서웠다”고 악몽과 같았던 2002년 진단 당시를 떠올렸다.

    “항암 치료도 힘들었지만, 전신 방사선 치료는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치료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엄청난 어지러움과 한도 끝도 없는 구토가 너무 고통스러웠죠.”

    다행히 치료는 만 1년이 다 가기 전에 끝났고, 민우 군은 이듬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학교 생활은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살 어린 동생들과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학습 진도도 따라가기 어려워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죠.”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병의 그늘 때문이었을까. 민우 군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워하면서도, 그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툭툭 건드리거나 욕을 하는 사소한 행동에도 화를 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친해지려고 아이들이 장난을 걸어온 것인데, 그땐 어린 맘에 웃으며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민우 군이 학교 생활에서 웃음을 되찾은 건 그로부터 3년이 흐른 고2 무렵. 소아암 환우 모임인 ‘한빛사랑회’에 나가면서 같은 아픔을 겪은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선배들의 조언을 받으면서 위축됐던 마음이 서서히 풀려갔다.

    건강한 아이들은 암이라는 병을 이해 못한다고 믿었는데, 차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생들도 생겨났다. 건강이 점차 회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커졌다.

    그러나 요즘도 때때로 우울한 기분에 휩싸일 경우가 있다. 민우 군은 얼마 전 머리카락을 빡빡 밀었다.

    “머리카락을 깎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며 “어린 시절에 겪은 암 치료는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아픔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이제 막 소아암 치료를 시작했거나 끝내고 사회에 돌아가는 아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 그것이 3월 대학 새내기가 된 민우 군의 꿈이다.

    2월 22일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 유스호스텔 3층. 어린이 10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가운데 민우 군은 예술심리치료사와 함께 역할극 놀이를 시작했다. “난 항상 기분이 별루야. 친구들이 날 ‘마빡이’라고 놀려.” 민우 군이 고민을 털어놓자 예술심리치료사 권계영 씨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잠깐 같이 생각해봐요. 이렇게 놀림을 받으면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될까요?”

    “ ‘친구를 놀리면 안돼. 아프면 머리카락을 다 잘릴 수도 있어’라고요.” 지현(7·여)이의 대답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날은 백혈병, 뇌종양 등 1차적인 소아암 치료를 끝낸 어린이들이 3월 초등학교 입학 및 복학을 앞두고 성공적인 학교 생활 적응법을 익히는 날이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와 한국맥도날도가 국내 처음으로 시작하는 ‘학교 복귀 적응을 위한 통합 프로그램’에 민우 군은 자신이 겪은 학교 생활의 경험을 전하고 이를 이겨내는 희망을 주기위해 이 과정에 참여했다.

    많은 소아암 아동은 항암 치료로 얼굴이 붓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외모 때문에 급우들의 놀림으로 학교 생활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섯 살 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았던 범수(7) 어머니는 “항암 치료로 다 빠진 머리를 보고 친구들이 ‘알범수’라고 놀려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하고 나면 머리도 다 빠지고, 눈썹도 없어져요. 애 가진 엄마로서, 그렇게 심하게 아픈 아이 곁에 내 자식을 두고 싶지 않은 다른 학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이제 다 나아서 학교에 온 아이들이거든요. 전혀 전염되지 않는다는 걸 많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교사들이 소아암 아동들을 ‘특별 취급’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초등학교 새내기가 된 선종(7)이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프다고 혼자 앉아 있게 해 싫었다”면서 “초등학교에 가면 체육시간에 뛰어놀 거예요”라고 말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유일영 교장은 “소아암 환자들은 오랜 투병생활로 학교가 무척 가고 싶었던 아이들이라 치료만 끝나면 복귀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며 “소아암에 대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이해가 부족하여 아이들이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소아암 아동 실태 및 현황

    한국 중앙 암등록본부(2002)에 의하면 종합병원에서 암으로 진단받아 등록되는 아동은 1년에 평균 1,188명에 이른다. 이들의 생존율은 2007년 현재 70%를 웃돌고 있다. 따라서 소아암은 이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아니라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소아암 간호의 초점도 이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암환아의 장기적 적응과 삶의 질 증진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질병이 암환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측면을 포함한 전반적인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아암 환자들은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통증, 피로, 장기 후유증과 같은 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리ㆍ사회적 부적응을 경험한다.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학교 유일영 교장

    “생사의 고통을 이겨낸 아이들이 치료 후 일상생활로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정책적 인식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유일영 교장은 “그동안 소아암 아동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아동의 치료에만 머물러 궁극적인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와 한국맥도날드는 소아암 등 만성질환을 가진 어린이들이 장기 입원 후 성공적으로 학교와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한 ‘학교복귀 및 적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소아암 환자의 사회 적응을 위한 통합 프로그램이 마련되기는 국내 처음이다.

    현대 의료기술의 발달로 현재 소아암 아동의 완치율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내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오랜 병원생활로 인한 단절감과 부적응으로 또 다른 고통에 부딪히게 된다.

    유 교장은 “뒤처진 수업도 고민이지만, 또래와의 관계 변화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아암 아동에 대한 선생님과 반 친구의 이해가 부족하여 ‘중환자’ 취급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유 교장은 “심지어 교사들이 소아암 아동의 담임을 맡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조차 있다”며 “소아암 아동이 성공적으로 학교에 복귀하려면 아동뿐 아니라 교사, 부모, 또래 친구를 대상으로 통합적인 프로그램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 프로그램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입원 중인 560명 중 3월 초 학교로 돌아가는 초등학생 280명이 첫 시행 대상이다. 아동과 부모에게는 상담을 제공하고, 또래에게는 소아암과 치료에 대한 교육을, 교사에게는 질병에 대한 지식 및 암환아 지도법 등을 교육할 예정이다.

    프로그램에는 ▲교사를 위한 가이드북 제공 ▲병원·학교 간 네트워크 구축 ▲학교복귀를 위한 영상물 제작 ▲학교 교직원 워크숍 ▲상담 프로그램 ▲ 아동의 개별학습 지원 ▲ 아동 캠프 ▲ 또래 교육 ▲ 부모 개별 상담 및 가이드북 제공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을 통해 소아암 아동들에게는 학교 복귀에 대한 자신감을 심고, 교사와 급우들에게는 소아암 아동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계획이다.

    유 교장은 “이번 교육 프로그램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아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게 되지만, 타 기관에서 학교복귀 프로그램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자문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문의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학교 (02) 2228-3273.


    입력시간 : 2007/03/06 12:53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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