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직업의 세계] 투어 컨닥터 도원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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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3.20 14:43:08 | 수정시간 : 2007.03.27 14:01:12
  • [직업의 세계] 투어 컨닥터 도원진 씨
    단체여행자 인솔 책임자
    "지독한 육체적·정신적 노동 낭만 하나에 긴장 아홉의 연속"
    돌발 변수 많아 여행내내 조마조마… 위기 대처능력·순발력 필요



    경력 9년차에 접어들던 지난해 이맘 때, 도원진(34) 씨는 혼자 인도 땅을 배회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잠시 쉬겠다’고만 말했지만, 마음 속에 사직서를 품고 떠난 심란한 여행이었다. 타박타박 인도와 네팔을 혼자 돌아다니며 한 달을 보낸 뒤 인천공항으로 돌아왔을 때, 그러나 그는 전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저는 ‘일에 치이고, 사람들 때문에 너무 많이 상심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돌아올 때의 도원진은 ‘일에 대한 의욕이 넘치고, 사람과의 관계에 재미를 느끼고, 마음이 부유해진 사람’으로 변했어요. 여행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으며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기찬 사람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죠.”

    도 씨는 (주)하나투어 여행사에 소속된 베테랑 ‘투어 컨닥터(Tour Conductor)’다. 하나투어는 동종업계 1위 업체로, 사내 투어 컨닥터만 500여 명에 이른다. 타사에서 일한 전력까지 합치면 도 씨는 이제껏 자신의 손으로 인솔한 여행자만 거의 1만 명에 달한다. 아프리카 대륙만 빼고는 거의 전 세계를 누볐다.

    “투어 컨닥터는 여행의 출발부터 돌아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객들의 뒤에서 안전과 안내를 책임지는, 여행자들의 엄마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고객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여행의 꽃이죠. 하지만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 일에 뛰어든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주 힘든 일입니다. ”

    성수기 땐 아플 틈도 없어

    투어 컨닥터는 주로 해외여행 패키지 프로그램을 맡는 여행 인솔자를 말한다. 출국 시 탑승 수속에서부터 현지의 명소 안내,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입국할 때까지 여행객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돌보며 책임진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해나가는, 위기 대처능력과 순발력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온갖 변수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여행 스케줄은 대개 1주일 전쯤 알 수 있다. 회사 측의 통보를 받으면 그때부터 바로 출장 준비에 들어간다. 신청서를 통해 자신이 인솔할 고객들의 기본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안내 코스와 날씨 등 현지에 대한 정보도 철저히 확인한다. 여행은 3박4일부터 20여 일짜리까지, 기간도, 목적지도 패키지 프로그램마다 수시로 바뀐다.

    인솔할 인원은 한 번에 평균 15명 정도. 여름과 겨울의 성수기 때는 20~30명으로 불어나기도 한다. 개인의 소속이나 능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년에 200~250일 일한다. 방학이나 휴가가 겹치는 성수기에는 숫제 휴일도 없는 하루 24시간 근무체제가 된다. 이럴 땐 한 달에 사나흘 집에 들어가기도 어렵다. 한 달 중 거의 27일을 공항에서, 타국 땅에서 보낸다.

    어떨 땐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돌아서서 다음 여행팀의 항공티켓을 챙기고 집에 들어가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옷가지만 몇 벌 챙기고 곧바로 다시 출국할 때도 있다. 하도 바빠 돈 쓸 시간도, 아플 틈도 없다. 성수기가 지나면 습관처럼 한바탕 긴 몸살을 앓는 컨닥터들이 많다.

    이들의 평소 지출비 중 상당 부분은 약값이다. 보약은 기본이고 몸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은 일년 내내 입에 달고 산다. 장시간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다리를 오그리고 있다보니 컨닥터 대부분이 만성적인 관절 통증을 갖고 있다. 파스도 붙이고, 침도 맞고, 관절에 좋다는 연고도 발라보지만 계속되는 여행 때문에 사실상 별 효과도 없다.

    항상 야외를 돌아다니느라 피부도 엉망이다. 자외선 차단 크림도 발라보지만 주근깨와 기미를 피할 수 없다. 도 씨의 경우, 언젠가 난데없는 여드름이 온 얼굴을 뒤덮어 피부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개중엔 생리불순을 겪는 여성 컨닥터도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서야 한 건의 업무가 비로소 마감된다. 담당 고객들의 구성과 성향, 여행 중 있었던 일 등 방금 다녀온 여행팀에 대한 모든 특기 사항이 보고서에 올라간다.

    항의하는 손님들 달랠 땐 굴욕감 느끼기도

    도 씨가 맡는 여행자들의 대부분은 40~60대이다. 사업가나 교수, 국회의원, 자영업자 등 고객들의 직업도 각양각색이지만, 일단 여행만 떠나면 그들은 너나없이 ‘어린애’로 변한다.

    특히 ‘경관 좋은 자리’에 대한 집착과 욕심 앞엔 직위도, 체면도, 나이도 상관없다. 맨 앞자리를 잡겠다며 오전 7시에 출발할 버스 앞에 새벽 5시부터 나와 죽치고 있는 이들을 흔히 본다. 식당이든 어디서든 무조건 자기 가족들끼리 앉아야 한다고 고집을 피는 여행자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도 씨에겐 가장 두려운 상대. 다른 여행자들은 조용한데 ‘음식이 왜 이따위냐’, ‘호텔이 뭐 이 모양이냐’며 공연히 트집을 잡아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꼭 몇 번에 한 명씩은 등장한다. 어떻게든 고객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대화를 유도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투어 컨닥터는 여행사와 여행자의 중간에 서 있는 존재.

    아무리 억울할 때에도 화 한 번 낼 수가 없다. 무조건 ‘미안하다. 잘못했다’며 달래는 길밖에 왕도가 없다.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만 속으로 쌓여간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도 씨는 지레 ‘이번엔 또 누가 언제 소리를 지를려나’ 노이로제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아예 사람이 싫어지기도 한다.

    처음엔 너무나 즐겁던 일이 점점 즐겁지 않아진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가던 2005년 겨울, 도 씨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상냥했지만, 여행자들 뒤에 서서 마음 속으로 ‘오늘은 제발 고객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으면…’, ‘내게 한 마디의 말도 걸어오지 않았으면…’ 기도만 했다.

    사표를 생각할 만큼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졌을 때, 도 씨는 앞서 말한 대로 혼자 배낭을 메고 인도와 네팔을 돌아다니며 한 달을 보낸 뒤 거짓말처럼 더 유쾌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사실 그에게는 이 일이 천직이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출국 전 공항에서 한 차례 첫 인사만 나눠도 20, 30명의 새 손님들 얼굴이 바로 머리 속에 자동입력된다.

    여행 중 아무리 인파 속에 뒤섞여도 자신이 맡은 여행자들 얼굴을 바로 가려낸다. 그렇게 여행 내내 입력돼 있던 얼굴들도 한국으로 돌아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면 거짓말처럼 삽시간에 하얗게 지워진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다시 새 고객들의 얼굴이 채워진다.

    도 씨의 또 다른 강점은 시차 적응력. 본인도 신기해할 만큼 타고났다.

    “비행기 안에서 거의 한 잠도 못 자는데도, 현지에 가서 하루만 지나면 바로 시차적응이 돼요. 돌아왔을 때도 하루이틀 정도만 꼼짝않고 쉬면 바로 회복이 돼요. 이 일을 하라고 하늘이 내려준 능력 같아요.”

    피말리는 순간들. 지나면 추억으로 남아

    때로는 웃지 못할 실수도 종종 저지른다. 여행객들에게는 짐이나 소지품을 잃을지도 모르니 수시로 주의시키면서도 정작 자신의 짐을 도난당하거나 분실해 쩔쩔 맬 때가 있다. 도 씨를 포함한, 모든 컨닥터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한번은 항공권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고객들 앞에서 밝힐 수도 없고…. 그날 밤 다들 잠든 시간에 새벽 내내 계속 공항 측과 접촉하며 분실한 항공권을 찾느라 진땀을 흘렸죠. 다행히 티켓을 찾아서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이런 게 투어 컨닥터들의 말 못할 고충이에요(웃음).”

    투어 컨닥터들을 긴장시키는 최대 변수는 날씨다. 갑자기 돌변하는 날씨 앞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다. 2002년 겨울, 젊은 배낭족을 이끌고 경유지인 코펜하겐을 거쳐 런던으로 간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예보가 심상치 않더니, 코펜하겐에 내리자마자 폭설로 공항이 폐쇄되었다. 승객도, 짐도 모두 발이 묶이면서 공항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항공사 측에서 급히 제공한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공항에 나왔지만 여전히 폭설로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제 갑자기 상황이 풀릴지 몰라 고객들에게 잠시 공항 주변을 구경하라고 말한 뒤 자신은 내내 혼자서 공항 대기실을 지켰다. 결국 밤까지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를 세 번, 2박3일 만에야 겨우 비행기가 다시 떴다.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원래의 여행 일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나중에 그들에게 물어봤더니 그때 코펜하겐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는 거예요. 제게는 정말 피 말리는 시간이었는데 그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된거죠.”

    3년차 연봉 3,000만원 선

    전속 투어 컨닥터의 경우, 수입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소정의 월급과 사실상 주 소득원인 출장비 및 봉사료로 이뤄진다. 개인의 능력과 여행지, 회사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하나투어는 대략 3년차 경력의 신입 컨닥터에게 2,500만~3,000만원 선의 연봉을 지급한다.

    2002년 어느날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넘었던 알프스를 직접 넘어보고 싶다’며 유럽 여행에 합류했던 80대 할아버지의 기억은 도 씨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무사히 알프스를 넘었을 때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감격스러워 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1년, 신부전증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뉴질랜드행 여행길에 올랐던 70대의 시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여행 중 갑자기 컨디션이 악화돼 고통스러워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도 씨는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팔다리를 주물러드리며 보살폈다. 귀국과 동시에 병원으로 이송된 그 할아버지는 얼마 뒤 도 씨에게 감사 전화와 함께 시 한 편을 보내왔다. 투어 컨닥터로서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봄, 가을은 투어 컨닥터들에게 농한기와 비슷하다. 여름과 겨울 성수기에 소진한 체력을 이 시기에 만회하고 재충전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도 씨는 한국에 없다.

    3월 16일부터 10일짜리 호주행 가이드를 해야 하고, 4월에는 무려 21일짜리 중남미행 스케줄도 잡혀 있다. 행복한 여행안내자 도 씨. 그는 제2의 한비야를 꿈꾼다. 찬찬히 다시 보니 활짝 웃는 눈과 입매가 어쩐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가이드를 은퇴하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하는 것, 한비야처럼 ‘도원진과 함께 하는 세계 여행’ 책을 쓰는 것, 그게 저의 두 가지 소망입니다.”

    < 투어 컨닥터가 되려면 >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하는 통역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면 된다.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나 응시 가능하며 1, 2차에 걸쳐 관련 이론 및 실무 시험을 치러야 한다.

    둘째, 국내 여행사에서 근무경력을 쌓아 투어 컨닥터 자격증을 따면 된다. 단, 이것은 한국인만 가이드할 수 있도록 대상이 제한된다. 또한 투어 컨닥터 자격증이 있어도 특유의 돌발 상황 때문에 반드시 영어실력을 갖추어야 안전하다.


    입력시간 : 2007/03/20 14:43




    글, 사진 정영주 pinpl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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