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직업의 세계] 박물관 큐레이터 김승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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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4.25 14:43:02 | 수정시간 : 2007.04.25 14:43:02
  • [직업의 세계] 박물관 큐레이터 김승희씨
    유물 역사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박물관의 꽃'
    전시행사 총괄 진행… 관람객들의 감동 이끌어내기 위한 고난과 보람의 작업





    신참은 신참이되, 이런 신참이 없다. 여느 직장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신참교육 풍경이 펼쳐진다. 손목 시계도, 반지도, 넥타이도, 목걸이도 모두 잠시 벗어놓아야 한다. 숨 죽인 채, 조심조심하는 선배의 손놀림을 주목한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실제로 시간의 흔적을 다룬다.

    “도자기를 들 때 이렇게 왼손으로는 몸통을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감싸안는 법, 유물을 만질 때는 혹시라도 흠을 내지 않도록 반지나 시계를 미리 빼놓는 것, 또 회화 작품의 경우 자신의 숨결이 닿지 않도록 마스크나 종이로 코와 입을 가리는 것, 유물을 포장하는 법 등 신입들은 문화재를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부터 배우게 됩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에 근무 중인 큐레이터 김승희(47) 씨. 그도 그런 햇병아리 시절을 거쳐 올해로 16년째다. 2003년 화제를 모은 ‘영혼의 여정’ 특별전시회를 기획하고 진행한 주인공이다. 이 전시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진출해 찬사를 받았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김 씨는 92년 처음 이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직장으로 치자면 취미를 살릴 수 있고 공부를 연장하는 곳이라 직원들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듯이 편안하다거나 안락한 직장은 전혀 아닙니다. ”

    국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모두 11개. 그중 중앙박물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가 약 80명이다. 학예사보, 학예관 등 직위마다 조금씩 이름이 다르긴 해도, 궁극적으로 박물관 전문 큐레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에서부터 진행, 사후 처리까지 전시 행사 전반을 담당하는 박물관의 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모두 33만여 점. 이것으로30여 개의 전시관을 끊임없이 채우고 바꿔가며 관람객의 발길을 잡아야 한다. 상설전시회는 2, 3개월에 한 번씩 주제와 유물을 교체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만큼 전시 내용의 질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크다.

    일당백의 일꾼들, 자기실현 만족감도 커

    특별전시회가 구상에서부터 실제 개막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년. 길면 3년까지 이어진다. 주로 이벤트성 전시회나 퍼포먼스, 재미있는 기획 행사로 구성된다. 준비 기간이나 작업량에 비하면 배치된 인원이 의외로 적은 것 같다.

    “전시회 하나를 보통 한 사람이 맡습니다. 최소한 경력 10년 정도는 돼야 가능해요. 힘들어도 그날이 오기를 모든 학예사들은 소망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내 학예연구실은 크게 4개 부서로 나눠져 있다. 수장고를 비롯해 박물관에 있는 모든 유물의 보존과 관리를 책임지는 ‘유물관리부’, 박물관 내 고고관의 전시와 실제 발굴 작업을 담당하는 ‘고고부’, 그리고 고고품을 제외한 선사시대 이후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들을 다루는 ‘미술부’, 우리나라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데 연구 초점을 맞춘 ‘역사부’다.

    부서를 막론하고, 모든 큐레이터들의 꿈은 공히 자신의 아이디어로 구성된 전시회를 선보이는 것. 기획 단계부터 만만치 않다. 1년에 한 번씩 내부적으로 전시 제안서의 공개 경쟁이 치러진다.

    제안자인 큐레이터 본인이 박물관의 동료와 선후배,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 앞에서 브리핑을 해야 한다. 성공률은 약 35%. 약 10여 편의 제안서가 제출되지만, 그중 채택되는 것은 3, 4편에 불과하다.

    제안서가 채택되면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기획한 전시에 대한 예산을 짜는 일부터 전시 내용 구성, 디자인, 조명, 도록의 크기와 판형, 종이 재질, 홍보 내용까지 세세히 챙겨야 한다. 개막 행사 때 초청할 인사의 명단을 선정하는 것도 큐레이터의 일. 초청장 작성과 섭외, 심지어 개막 때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 메뉴까지 직접 결정한다.

    “그래도 큐레이터들은 자기 전시를 맡을 때가 가장 신납니다. 일은 고되고, 신경쓸 것도 많지만, 그만큼 자기실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직장도 흔치 않잖아요.”

    죽음에 대한 선조의 철학과 윤회 과정을 다룬 ‘영혼의 여정’ 특별전은 준비에만 8개월 가까이 걸렸다. 김 씨는 18세기 그림에 나타난 저승사자의 모습을 첫 페이지로, 지옥과 극락, 수행과 염원의 세계로 옮겨가며 선인들의 독특한 죽음의 철학을 표현하기로 했다.

    주제가 정해진 뒤, 전시할 작품을 고르느라 김 씨는 거의 2, 3개월 동안 유물 보관 창고인 수장고에서 살다시피했다. 필요한 유물을 찾아낸 뒤에도 흠이 나지 않았는지, 전시기간에 바깥 공기에 오랫동안 잘 버틸 수 있을지, ‘건강 상태’를 하나하나 점검한다. 그림 색상이 예상과 다르다거나 ‘약골’ 상태면 후보작 대열에서 바로 탈락시킨다. 이러한 실사 과정으로 또 6개월을 보냈다.

    이어, 전시될 유물들의 순서 배열을 정한다.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차례를 정한다. 이 순서에 따라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전체를 엮는다. 모래알처럼 따로 흩어져 있던 유물들이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전시회’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신참 때부터 익혀 온 세월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든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스스로 소재를 찾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엮어서 마지막에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죠. 하지만 전시는 오로지 정적이고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속성 때문에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가 훨씬 더 어려워요. ”

    현장 준비 못지않게 까다롭고 중요한 작업은 도록을 제작하는 일이다. 행사는 폐막과 함께 사라지지만, 도록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자료로 남는다. 전시회에 대한 모든 정보와 연구 내용이 한 권의 도록에 집약된다.

    전시된 유물들의 사진과 해설, 소제목에다 목차를 붙이는 일까지 모두 직접 한다. 이름은 도록이지만, 내용은 여느 화보집과 백과사전, 단행본, 논문 등을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다.

    총 59점의 불화와 조각, 공예 작품 등을 약 200페이지에 걸쳐 수록한 ‘영혼의 여정’ 도록의 경우, 인쇄 때 색상 문제로 교정본 것만 7번이 넘는다. 모기 한 마리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도 있다. 최종적으로 인쇄에 들어갔는데 윤전기에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든 것이다. 도록에 난데없는 검은 얼룩이 찍혀버렸다. 결국 제 날짜에 도록이 발행되지 못해 속을 태웠다.

    2003년 세간의 호평을 받았던 ‘빛나는 옛 책들’ 특별전도 박물관 큐레이터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는 영어교재 저자로 유명한 송성문 씨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등 약 40권의 귀중한 고서를 박물관에 기증하면서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는 기증된 고서들이 사경이나 조선시대 목판 인쇄물 등 저마다 성격이 달라 하나의 주제로 엮기가 사실상 애매했다. 전시 전부터 다들 ‘그다지 재미있는 전시는 되지 못할 것’이라며 절반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전시회가 열리자마자 관람객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뜨거운 격려를 받았다.

    “저희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비결이라면, 당시에 이를 담당했던 큐레이터 이수미 박사가 종전의 딱딱한 설명 방식과는 달리 전시 해설 등을 워낙 감칠맛 나게 잘 쓴 데다, 마침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강사로 있던 천연염색가의 도움을 받아 전시장과 전시물 곳곳에 아름다운 천연염색 직물들을 깔거나 발로 드리우는 등 멋스럽게 연출한 덕분이었지요.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대성공이었어요.”

    특히 전시물에 대한 기존의 설명 방법을 바꾼 것으로 사실상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후 꾸준히 전시 용어 개선 작업을 벌인 결과, ‘해독 불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유물의 이름표가 일제히 새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해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용어’집까지 펴내 학계와 일반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백자상감인화승렴문호(白磁象嵌印花繩簾文壺)’를 ‘백자 줄무늬 항아리’로 바꾸는 식이다.

    고된 연구작업, 1년에 논문 한 편씩 발표

    “사실, 제일 힘든 게 연구 작업입니다. 전시회 도록이든, 다른 어떤 학술지든, 저널이든 큐레이터들은 최소한 1년에 한 편씩은 논문을 발표해야 합니다. 저희는 일반인과 전공자 사이에 선 중간자이면서 학자이기도 해요.”

    전시예정일이 임박하면 밤샘도 불사, 평소에도 1주일에 3, 4일은 야근을 한다. 주로 일과 관련된 원고를 쓰거나 각종 행정 서류들을 챙긴다.

    전시회가 시작돼 귀빈이 방문하면 직접 안내와 해설을 맡기도 한다. 외국 관광객이 늘고 박물관의 해외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최근엔 영어로 전시회를 해설할 때도 있다.

    휴관일인 월요일에 박물관은 문을 닫지만 큐레이터들은 쉴 수가 없다. 오히려 개관 때보다 더 피곤한 일들이 기다린다. 전시물 중 이름표가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고 조명도 교체한다. 진열장 청소도 직접 해야 한다. 진공청소기, 붓, 먼지털이, 접착테이프 등을 동원해 미세한 먼지까지 샅샅이 제거한다.

    행사가 끝나면 개막서 폐막까지를 결산하는 최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간의 전시 여정에 끝 매듭을 짓는 작업이다. 관람한 학생들이 남겨놓은 감동의 메모, 때로는 외국인들이 보내오는 격려 편지 등을 다시 읽노라면 새삼 큐레이터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전시 폐막 후의 전체 평가는 본인의 업무 수행능력이나 실적에 반영된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의 수입과 기타 대우는 공무원 규정에 따른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까지 부단한 숙련과 연구 열정이 필요하다. 대신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직장이 안정돼 인기를 끌고 있다.

    “정년으로 은퇴하더라도 지자체나 사설 박물관 등에 취업해 계속 일할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지식과 경륜이 쌓여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됩니다.”

    <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려면 >

    국립박물관의 경우 결원이 생길 때만 채용시험을 실시한다. 미술사, 고고학,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이들만 응시할 수 있다. 학사 학위 소지자는 관련 기관의 근무 경력이 있는 경우 응시가 가능하다. 박사 학위자에게는 가산점이 붙는다. 3, 4명 채용에 석·박사 출신 등이 100여 명 몰릴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


    입력시간 : 2007/04/25 14:43




    글, 사진 정영주 pinpl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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