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한국 : [직업의세계] 요리에 생명 불어넣는 시각의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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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5.15 15:51:18 | 수정시간 : 2007.05.15 15:51:18
  • [직업의세계] 요리에 생명 불어넣는 시각의 마술사
    푸드스타일리스트 박용일 씨
    '군침 도는 요리사진'의 열쇠 쥔 또다른 요리전문가, 10년 정도 경력 쌓아야 '전문가' 대접



    아는 사람만 아는 ‘군침 도는 요리 사진’의 비밀은 뭘까. 죽 위에 맛깔나게 뿌려진 통깨는? 몇 시간씩 허리를 구부린 채 일일이 핀셋으로 ‘심어넣은’ 것이다.

    한 눈에도 입맛 도는, 반지르르 윤기나는 즉석조리 밥은? 면봉으로 ‘기름칠’을 한 결과다. 기름 종류도 재밌다. 식용인 참기름은 노란 색이 감돌기 때문에 탈락. 몸에 바르는 베이비 오일을 밥알 위에 칠한다.

    전문가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일반인들에게는 신기한 눈맛 비법들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음식의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주는 직업입니다. 요리사는 아니면서 요리가 가진 특성이나 생명력을 실제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주는 역할을 하죠.”

    박용일 씨는 국내 업계에서는 아직 ‘희귀족’으로 꼽히는 남자 푸드스타일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2001년, 학원의 수강생 시절부터 국내 제1호 남자 수강생으로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그는 현재 동종업계 상위의 전문가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2005년 출간된 <용의 트래블그라피>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그는 최근까지도 방송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출연, 각종 매체를 통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촬영있는 날은 하루 14시간 강행군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주 수입원은 주로 각종 잡지나 TV 광고, 강연 등에서 나온다. 대중 매체의 사진이나 영상 촬영에 관여하거나 직접 기고하거나 출연하는 일, 기업체 등으로부터 강의나 파티 준비를 의뢰받는 일들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여성 월간지나 요리 전문지 등 잡지에 실리는 요리 사진 촬영이 일거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잡지사로부터 의뢰 전화가 걸려오면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기본적인 테마는 통보되지만, 구체적인 메뉴는 상대방이 먼저 제시해오는 경우도 있고, 푸드스타일리스트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잡지사 측이 원하는 분위기와 사진 크기까지 미리 정확하게 파악해둔다.

    메뉴가 정해지면 재료 준비에 들어간다. 직접 시장을 찾아 신선한 재료들을 고른다.

    간단한 메뉴 하나에도 장을 보는 데만 최소 2시간이 걸린다. 요리를 담아낼 그릇과 그릇 아래에 장식할 매트, 스푼이나 포크 등 연출에 필요한 모든 소품들도 챙겨둔다. 메뉴가 무엇인가에 따라 자유자재로 소품도 바꿔 선택한다. 이때의 미적 감각도 전적으로 푸드스타일리스트의 개성이자 능력이다.

    “메뉴가 정해질 때부터 이미 어떤 재료로 어떤 색감을 낼지, 재료를 써는 방법에서부터 그릇에 담고 배치하는 방법까지 모두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어떨 때는 직접 종이에 레이아웃을 그려보기도 하구요.

    이번엔 무슨 색의 파프리카를 선택하며 그것을 가로로 썰지 세로로 썰지, 감자는 으깨는게 좋을지 통째로 놓는게 더 예쁠지, 와인 잔은 뒤에 3개를 놓을지 4개를 늘어놓을지, 그때그때 판단을 빨리 해야 합니다. ”

    촬영 당일엔 조리를 시작한다. 요리를 배운 박 씨의 경우, 직접 요리사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최소한 촬영 약속 시간 1시간 전에는 웬만한 준비가 모두 끝나 있어야 한다. 촬영 시점보다 조리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원치않는 불상사가 터지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만들어두면 음식이 마르거나 주저앉거든요. 예를 들어 주스는 과육이랑 즙이 분리가 된다든지, 거품있는 음료가 시간이 지나면 거품이 사라져버린다든지, 국물의 경우 건더기가 국 아래로 가라앉아버린다든지, 그러면 촬영에 쓸 수가 없죠.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합니다.”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요리의 개수를 ‘품’ 단위로 통칭한다. 요리 10품을 기준으로, 촬영 자체의 시간만 기본 8시간. 오전 10시부터 준비하면 오후 6시쯤 돼야 카메라가 꺼진다.

    아무리 서둘러도 1품을 찍는데 30~40분씩 걸린다. 촬영팀이 떠난 뒤 뒷설거지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10시간은 지난다. 하루 14시간씩 강행군을 할 때는 온 관절이 욱신거린다고 한다.

    “그럴 땐 정말 미쳐요. 잠깐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열 몇 시간씩 서 있다보니 온몸이 다 결리고 아플 때가 많습니다. 제게도 3년 전부터 시작된 증상인데, 목 뒷부분이 뻣뻣하게 당기고, 어깨와 허리도 아픕니다. 근육에 무리가 가서 생긴 직업병입니다. 하긴 저희들 작업이란 게 하루종일 요리만 들여다보며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일하는 자세니까요. ”

    과로 끝에 119 신세를 진 적도 있다. 1년 넘는 연중무휴 일에 미쳐 살았던 박 씨. 지난해 12월경 연말행사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박 씨는 하루하루를 전쟁을 치르듯 살았다.

    어느 날 일을 하다말고 등 쪽의 근육이 심하게 당기고 아파서 잠시 누웠는데, 그 길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 결국 119 대원의 등에 업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MRI(자기공명영상)촬영을 했지만 다행히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응급처치로 주사 몇 대만 맞고 돌아온 뒤, 그 몸으로도 다음날 촬영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정말 몸이 힘들 때는 ‘그 일을 못하겠다’고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 굴뚝같은 데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 일을 거절하고 나면 그 뒤에 연결될 수 있는 다른 일들의 기회까지 놓칠 수도 있고, 뭣보다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도저히 취소를 할 수가 없는 거죠. 결국 제 몸만 혹사를 하는 겁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실제 음식 맛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촬영할 음식이 공연히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면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작전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기술을 몇 가지 더 소개하면 이렇다.

    샐러드의 야채를 촬영할 때는 야채의 생생함을 높이기 위해 촬영 직전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구이 요리는 프라이팬이나 오븐이 아닌 가스용접기(토치)로 지져서 모양을 그럴싸하게 만든다.

    대개의 경우, 촬영용 음식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 시각적인 효과 위주로 재료를 선택하다보니 실제로 먹기가 꺼려지는 음식도 있고, 야채의 경우 소금을 뿌리면 삼투압 현상으로 쪼그라들기 때문에 전혀 뿌리지 않는다. 촬영만 끝나면 대부분의 촬영용 요리는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단발성 작업 많아 수입은 둘쑥날쑥

    준비는 고되지만 경제적인 대가는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니다. 모든 보수는 요리 품당으로 계산된다. 여성지의 경우 음식 1품당 지급비가 평균 3만5,000원. 재료비와 소품,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많지 않은 액수다. 표지용 요리 사진은 많으면 1품당 40만원을 받을 때도 있지만 항상 찾아오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재료비를 빼고 나면 이윤이 얼마되지 않는다. 재료가 비싼 쇠고기 스테이크나 제철도 아닌 과일 주스 사진을 찍어야 할 때는 오히려 손해를 본다.

    “언론에 알려진 저희 소득은 좀 과장되고 부풀려진 면이 있어요. ‘억대 연봉’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은데 현실과 다른 이야기예요. 물론 단 하루 촬영하고도 몇 백만원씩 받을 때도 있지만 늘 그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죠. 수입이 아주 불안정하고, 자신을 찾는 손님이 없으면 무일푼일 수도 있어요.”

    개인의 실력 외에도, 이들의 소득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한 달에 몇 천만원을 벌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한 달 내내 일만 껴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 국내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생업 삼아 이 분야에 성공한 사람으로 내세울 만한 이들은 모두 합쳐봐야 열 손가락을 벗어나지 못한다. 알려진 이들에게만 계속 일이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누가 개업했다 해도 금세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1년도 아닌 단 몇 개월 만에 문을 닫는 친구들이 수두룩합니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정확히 얼마만큼 공부하면 된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고객이 생겨야 그 순간에 비로소 본격적인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거지요.”

    아직 잡지사와의 작업 과정에서도 ‘계약’ 개념이란 게 없다. 모든 의뢰가 형식상 1회용이다. 다음 의뢰 전화가 걸려오기까지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다. 항상 맘졸이며 다음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알려지면 그 뒤부터는 더 이상 연락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밀려드는 연락 때문에 오히려 자신 쪽에서 일거리를 잘라야 되는 상황이 가능해지지요.”

    때로는 받아야 할 돈을 떼이는 황당한 상황도 발생한다. 촬영이 끝난 후, 잡지사로부터 보수를 입금받기까지 걸리는 시일이 통상 두세 달이다. 그런데 그 사이 잡지가 폐간되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수천만원의 돈을 꼼짝없이 날리게 된다. 박 씨 자신도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다.

    특히 심성이 여린 여성 푸드스타일리스트들 중에는 이 때문에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화려한 사교계의 파티를 연상하는 일반인들의 상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도 적지않다.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각 작업 때마다 사진작가와 담당 기자 또는 진행자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서로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일이 아닌 주변 상황 때문에 일 자체까지 싫어질 때가 있다. 가장 괴롭고 지치는 순간이다.

    순수미술 전공한 광고맨에서 용기있는 전직

    2000년 봄. 박 씨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에 취업해 2D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우연히 TV에 소개된 푸드스타일리스트 세계에 ‘충격’을 받으면서 그는 전업했다.

    TV에 나온 주인공들을 찾아가 교육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ICIF 푸드코디네이터 과정 및 프랑스 르 코르동블뢰 요리학교와 ICIF 요리학교를 수료했다. ‘음식과 소품을 이용한 미술작업의 연장선’이라 생각할 만큼 그에게는 갈수록 재미있는 일이었다.

    기본기를 갖춘 뒤, 직접 자신이 연출해 촬영한 요리 사진들을 이력서 삼아 들고 무턱대고 잡지사를 찾아가 담당자들을 만났다. 사실상 현재도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거의 유일한 취업 방법이다.

    한두 달 후 그를 찾는 잡지사 전화가 하나둘씩 걸려오면서 박 씨의 본격적인 활동은 비로소 시작됐다. 2년 전 모 수입자동차 회사의 대규모 연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던 때를 박 씨는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다. 박 씨를 포함한 스태프 10명의 손으로 국내외 약 300명의 대식탁을 아름답게 꾸며냈다.

    아직 국내 시장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 영역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과도기 단계다. 이미 이름은 화려하게 알려져 있지만 교육과 취업 과정, 계약 방식 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구조적인 난제들이 적지 않다.

    “처음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이러저러해서 힘이 드니까 단단히 각오하라’고 말하면 ‘뭐, 그 정도야’하던 사람들 10명 중 9명이 결국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다 독한 사람들만 남아있는 거죠(웃음). 궁극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 ”

    박 씨는 ‘대략 5~10년쯤 후에는 누구나 원할 만한, 명실상부한 전문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전망한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업계의 ‘기성 세대’가 되어버린 박 씨 세대의 역할이 그래서 지금 더 묵직하다.

    <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되려면 >

    정해진 방법이 없다. 전공학과나 나이에 제한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미술, 요리 공부를 한 이들이 유리하다.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양성하는 학원이나 대학 등에서 관련 내용을 배울 수 있으며, 약 2년 정도 실무를 익힌 뒤 취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초기에는 선배 푸드스타일리스트의 보조원으로 1년 이상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보조원이 되려면 관련 과목이 개설된 대학의 수강생으로서 수업 과정에서 발탁되거나 직접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찾아가 기회를 얻는 방법이 있다. 공식적인 관련 자격증이 없으며, 취업도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입력시간 : 2007/05/15 15:52




    글 정영주 pinplus@empal.com
    사진=박용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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