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경제적으로 부상했으나 '미국의 길들이기'에 빠진 형국"
  • [전문가 칼럼]
    미국의 대중국 양면 전략- 공격적 행보에는 제동, 소프트파워로 길들이기
    중국 부상은 미국 주도 시장경제의 열매… 한·중 FTA는 미·중 FTA의 전초전
    한국 정부,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파트너 사이에서 고차방정식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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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입력시간 : 2014.12.11 19:01:11 | 수정시간 : 2014.12.11 19:01:11
    • 허윤 교수
    [허윤 교수 칼럼] 미국의 외교 전문지인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 최근 호에 실린 한 기고문이 통상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인 마이클 프로먼(Michael Froman)이 직접 게재한 글인데, 통상 협상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과 향후 정책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통상 어젠다를 둘러싼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세 가지이다. 첫째, 범세계적 항행규칙(rules of the roads) 제정과 집행이다. 둘째, 우방국과의 파트너십 강화이다. 셋째,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의 범지구적 확산이다.

    미 USTR 대표의 글 주목… '범세계적 항행규칙' 등 세 가지 목표 제시

    항행규칙이란 무역·투자에 관한 국제규범을 말한다.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하여 미국이 가장 높은 노동과 환경 기준, 인터넷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데이터 전송의 자유 등을 요구할 것이며 야생동물 거래나 어류 남획, 불법 벌목 및 국영 기업의 불공정한 경쟁 등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정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일치하는 21세기형 글로벌 통상체제를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중국의 TPP 가입 문제를 두고 미국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의 개혁이라는 비싼 입장료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내겠다는 속셈을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파트너십 강화에 대해서는 통상관계의 형성이 일종의 정치적 시그널(signal)임을 강조하였다. 1938년 영미(英美) 무역협정이 영국으로서는 경제적 실익이 없었지만 앵글로-아메리카의 정치적 결속을 강화시켰던 사실이나 1985년 미국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상대가 바로 이스라엘이었던 점 등을 예로 들면서 통상 정책이 경제를 넘어 외교·안보 정책의 중요한 축임을 시사하였다. 결국 미국은 TPP나 TTIP(미-EU FTA) 등 메가블록형 FTA를 이끌면서 이를 안보 전략의 주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또 신통상체제의 범지구적 확산을 통하여 수출 시장을 확대하고 이를 미국 가치(American value)의 표현 창구로 삼겠다는 뜻도 분명히했다.

    프로먼의 글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글로벌 환경의 변화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미국을 제치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의 최대 교역국으로 중국이 떠오르면서 미국의 전통 우방국들이 미국의 원심력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워싱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돈 1원에 1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묻어오는 냉정한 현실에서 국제사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몸집을 꾸준히 불려온 중국이 미국 주도의 기존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크게 흔들고 있다는 점에 워싱턴은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는 지역안보 구조에 대한 전적인 통제 능력에 달려 있는데 이같은 통제력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돈의 힘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중국이 미국 우방국들과 상호 경제적 의존도를 높이면서 외교·안보의 중화자기망(中華磁氣網)을 서서히 형성해 가고 있는 현실이 워싱턴에는 불안감을 넘어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중국 정책은 봉쇄와 개입의 양면 전략

    미국은 봉쇄·개입(congagement)이라는 양면 전략을 통하여 동지나해, 남지나해 등에서의 해양영토 분쟁을 둘러싼 중국의 공격적 행보에 강력한 제동을 거는 한편 미국 고유의 '연성 권력'(soft power)을 확산시키며 중국 길들이기에 나섰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국가이익은 무엇일까? 바로 ‘패권적 지위의 유지’일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가까운 장래에 중국에 추월당할지도 모를 상황이지만 군사력이나 제도 그리고 가치와 규범에서는 중국의 도전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1998년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AMF), 그 이전인 1990년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의 동아시아경제공동체(EAEG) 등의 설립 제안에 미국이 계속 반대해온 것은 이들이 결국은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이 될 것이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미국은 시장의 접근성과 항행의 자유 그리고 공정하고도 투명한 무역 질서를 중국에 확산시킴으로써 중국의 부상을 외교·안보적으로 ‘헤징'(hedging·제동 걸기)하는 동시에 그 확대된 시장을 경제적으로 ‘공유'(sharing)하려는 복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또한 만만찮다. 중국은 한·중·일 투자협정을 수용하고 한·중·일 FTA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추진하는 동시에 한·중 FTA 타결이라는 지역 공조 행보를 계속하면서 서울과 동경 그리고 워싱턴 간의 간격 유지에 나섰다.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의 길들이기 과정에 빠진 형국"

    하지만 ‘중국의 부상’이 지난 30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성공적으로 일궈낸 시장경제의 소중한 열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본과 대만 그리고 한국이 걸었던 그 길을 지금 중국이 다시 걷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제도와 정책의 토양 위에 ‘중국의 부상’이라는 꽃을 피워 낸 지금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의 ‘길들이기'(domestication) 과정에 빠져든 형국이다. 한·중 FTA가 이같은 교화 과정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한·중 FTA를 ‘미·중 FTA의 전초전’로 보는 일부의 해석은 의미 있는 분석이다.

    서울의 딜레마는 미국과 강력한 군사적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북한 문제 해결과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중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잡아야 하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충돌하는 사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봉쇄의 측면만 확대해서 보고 개입과 확산이라는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한다면 양자택일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빠져 치명적인 정책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산업과 통상 그리고 외교와 안보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지혜와 용기가 우리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허윤 교수 프로필

    서울대 경제학과-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 현)- 세계은행 경제자문 역임- 미 조지타운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서강대 국제대학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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