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쩌둥 "김일성 전쟁 판단 잘못…중국 참전 후회"
  • 조기종식 원했지만 3년 이상 장기화…한국전쟁서 장남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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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아 기자 sun@hankooki.com
입력시간 : 2015.06.23 17:17:27 | 수정시간 : 2015.06.23 17:17:27
    •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일성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참전 역시 후회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예상과 달리 전쟁이 3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중국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왔고 개인적으로는 장남(마오안잉<毛岸英>)까지 잃게 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중국 개혁성향 잡지 '염황춘추'(炎黃春秋) 2013년 제12호를 살펴보면 마오쩌둥은 1956년 9월 23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아나스타스 미코얀 소련 부수상과의 회동에서 "조선전쟁(한국전쟁)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스탈린이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마오쩌둥은 이듬해 7월 5일 미코얀과 다시 만나 한국전쟁 문제와 관련 "스탈린과 김일성이 중국에 전쟁 개시 시기와 작전 계획을 고의로 감췄다"면서 "중국은 전쟁하는데 피동적으로 연루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절대적으로 잘못됐다"며 북한과 소련을 싸잡아 원망했다.

    마오쩌둥은 1956년 9월 18일 방중한 북한 대표단에도 "조선전쟁을 예를 들어보면 시작할 때 김일성에게 전쟁하지 말라고 일깨웠고 나중에 그에게 '적들이 후방에서 상륙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 말 중국 지도부의 회담록에도 마오쩌둥이 미코얀에게 "전쟁은 잘못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서도 "그것은 소범위 내(우리끼리)에서만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뿐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조선 당정치국 위원 박일우도 이 전쟁이 잘못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중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마오쩌둥은 1950년 5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개전 동의를 구하러 베이징을 찾았던 상황과 관련, 미코얀에게 "김일성이 와서 '스탈린도 동의했다'기에 3국 중 두 나라(북한·소련)가 동의했는데 나도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면서 "하긴 내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도 제국주의가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기에 내가 그들(제국주의자)의 참모장도 아닌데 그들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면서 "양국이 모두 동의했는데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은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기획한 전쟁이었다거나 미군이 38선을 넘어 중국의 안보를 위협했기 때문에 중국이 참전을 결정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이 자국의 참전 이후를 일컫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과 관련,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북한을 지원한 '정의의 전쟁'이라고 미화하는 것과 달리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남침 결정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중국의 참전 결정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마오쩌둥이 전쟁 발발 전에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으나 전쟁 초창기 적극적인 개입 쪽으로 선회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도 발굴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고용으로 작성한 내부참고(내참)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미 7함대 대만해협 파견' 발표 직후인 1950년 7~8월 미·중 간 제3차대전 발발 가능성을 걱정하는 중국 인민들의 우려가 커졌고 마오쩌둥 정권이 붕괴하고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복귀할 것이란 '변천'(變天) 사상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존립 기반을 흔들었다. 대도시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금·은 가격이 폭등하는 등 각종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자료들을 입수해 분석한 김동길 베이징(北京)대 역사학과 교수와 박다정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원은 중국의 태도 변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한 논문을 최근 역사학회 학술지인 '역사학보'에 발표했다. 김 교수팀은 논문에서 "마오쩌둥은 초기 전황이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이용, 전쟁을 조기에 종식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초래한 악영향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마오쩌둥은 1950년 7~8월 조기파병을 통해 한반도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전쟁을 신속히 끝내길 원했으나 스탈린의 부정적인 태도와 북한의 미온적인 태도가 맞물려 조기 파병이 무산됐다. 중국의 파병 결정은 1950년 9월 15일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다급해진 김일성이 10월 1일 마오쩌둥에게 편지로 출병 요청을 한 뒤에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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