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눈총 받아도 우린 행복해요"가족 구성원 변화따라 가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싱글 대디·국제 부부·동물 가족 등 새롭게 형성되는 패밀리 문화 '눈길'
이혼 급증으로 한부모 가정 급증… 사실혼 관계도 크게 늘어
동성애·사이버 부부·입양 등으로 가족형태 더욱 다양해질듯

최근 가족에 대한 논의에서 화두의 중심은 '변화'다. 생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에도 변화가 두드러진다.

올해도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신세대 결혼풍습이나 이혼에 따른 편부·편모 가정의 증가 등 가족의 구성과 형태의 변화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가족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가족의 해체라는 쪽과 가족의 탄생이라는 쪽으로 엇갈린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영위해가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해체냐 탄생이냐 하는 논의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전통적 개념의 '정상적인 가족'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도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부자(父子) 가정 28만 6천 가구

기운서 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기 씨가 '싱글대디'로 살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 사고를 당한 후 부터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자 아내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사회생활하던 남자가 어느날부터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만 하려니 참 힘들더군요.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어떻게 합니까. 요리니 육아니 전부 동네 아줌마들한테 배웠죠."

시행착오를 거쳐 십년 넘게 갈고 닦아온 그의 살림 솜씨는 이제 프로급이다.

그는 부자(父子) 가정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만큼 암울하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물론 처음엔 익숙치 않은 육아와 집안일,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대우가 기 씨와 딸에게 가장 참기 힘든 현실이었다.

특히, 엄마 없이 아빠 하고만 사는 '이상한 집' 딸이라는 이유로 이웃주민들이 자기 아이들을 기 씨의 딸과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하지만 현실에 적응하고 어려움은 극복해 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집안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고, 주변의 시선은 노력으로 극복했어요. 딸에게 인성교육을 철저히 시켰고, 아이가 착하고 똑똑하게 자라줘서 한부모가정 자식에게 쏟아지는 편견들을 많이 불식시킬 수 있었죠. 저도 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지만, 요즘엔 동네 아줌마들 뿐 아니라 어릴적 동네 친구들과 친목회를 갖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딸 아이는 아빠가 살림을 하니까 잔소리가 적어서 좋다고 해요. 또, 부부싸움을 할 일도 없으니 그것도 아이에게 좋은 일이겠죠."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부자 가정은 28만 6천 가구에 이른다. 이혼의 급증과 함께 한부모가정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것은 한부모가정 중 부자가정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싱글대디, 즉 부자가정이 경험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직장생활과 육아의 병행이다.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 자녀는 방치되기 십상이다. 아버지의 육아가 서투른 점도 문제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자가정의 자녀양육을 지원하는 시설은 국내에 단 1곳 뿐이다.

■ 다문화(多文化) 가정

국제화 시대를 실감케 하듯 외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른바 '다문화가정'이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어느새 흔한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과 결혼해 세살 난 딸을 두고 있는 일본인 사토미 씨. 몇 년 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중 역시 유학와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남편을 만났다.

"한국으로 시집 와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시댁식구와의 지나치게 돈독한 관계에 적응하는 일 같아요. 일본은 한국처럼 가족들끼리 자주 모이지 않거든요. 명절 때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는 풍습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의 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에요."

사토 씨는 시어머니로부터 명절음식 만드는 비법을 배웠고, 지금은 어느 정도 한국의 가족문화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이웃과 어울리기 힘든 것도 외국인 신부가 겪는 문화적 차이의 어려움으로 지적했다.

사토 씨는 얼마 전까지 자신처럼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과 주로 교류했다. 하지만 한국말이 늘면서 이웃들과 대화하는 게 전보다 수월해졌고, 지금은 한국인 친구가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저처럼 한국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그 중에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이혼하는 이들도 많이 있어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당사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고, 그 다음은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주변의 편견과 외국인이 사는데 불편한 다양한 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는 외국인에게 불편한 우리나라 제도 중 하나로 인터넷쇼핑을 들었다. 우리나라 인터넷쇼핑몰은 물건을 주문할 때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그 때문에 외국인들은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할 수 없다.

국제결혼은 국제화와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지난 10년 동안 계속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국제결혼 자료를 살펴보면, 총 국제결혼 건수는 1997년 12,448건에서 2007년 38,491건으로 10년 새 국제결혼이 3배나 늘었다.

또, 통계청의 '2007 국제결혼 추세 및 인구구성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결혼 345,592건 가운데 국제결혼이 38,491건으로, 우리국민의 약 10%는 국제결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들을 배려하는 제도는 드물다는 것이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의 하소연이다.

■ 사실혼 부부와 애완동물 가족

이밖에도 우리 주변에서 변형된 가족의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양이 10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권윤정(33.여)씨는 퇴근 후 고양이 용 파티용품과 특별 간식을 사들고 부지런히 집으로 달려갔다. 오늘 생일을 맞은 '엔터'의 생일파티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그에게 고양이들은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동생들이다.

그는 고양이 양육을 위해 고양이 전문잡지를 구독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데려가 각종 예방접종을 시킨다.

주말이면 고양이들을 데리고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목욕도 시킨다. 고양이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포기한 상태다.

요즘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부쩍 많다. 개나 고양이는 마당에서 기르고,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치워주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옛날 사고로는 권 씨 처럼 애완동물을 친 가족마냥 애특하게 여기는 이들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운 사치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동물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가족처럼 정감을 나누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다. 이들은 애완동물을 기르며 들어 가는 모든 경제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한다.

연서동물병원 정규송 원장은 "최근 들어 애완동물 보호자의 30~40%는 기르던 동물이 죽으면 동물전문 화장업체에 의뢰해 화장처리를 하고, 추모식을 갖는다"며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애완동물 장례문화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들은 동물에게 무슨 장례식이냐며 비웃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최윤석(가명.남) 씨와 김지애(가명.여) 씨는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는 관계로 처음엔 결혼신고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 차이로 자주 다투게 됐고, 둘 다 결혼신고를 늦춰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예 신고를 하지 말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렇게 1년 동안 함께 산 후 이들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필요도 없이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요즘 이들 부부처럼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이처럼 결혼식을 치르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림을 차리는 '사실혼 부부'의 증가를 두고 이혼이 증가하면서 벌어지는 신풍습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런 신풍습을 바라보는 물론 대다수의 시각은 곱지 않다. 먼나라 프랑스 부부들의 얘기인줄만 알았던 동거커플의 증가에 어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신세대 예비부부들은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이혼이라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며, 사실혼 부부를 대변한다.

국내 굴지의 타이어회사에서 근무하는 김 모씨는 2년 째 아내와 떨어져 살고 있는 '원거리 부부'다. 그는 서울의 본사에서, 아내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두 도시에 살고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김 씨가 아내와 한 살짜리 딸이 살고 있는 대전으로 내려간다. 김 씨의 아내는 직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의사 장 모씨는 미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 남편 및 아이들과 10년 이상 떨어져 살고 있다. 자신의 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이 늘면서 주변에서 원거리 부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전화와 이메일, 메신저 등 다양한 통신수단을 이용해 떨어져 사는 가족과 자주 연락을 취하고, 주말이나 휴가를 통해 방문하는 방법으로 가족이라는 끈을 이어가고 있다.

원거리 부부인 김 씨는 "부부가 가끔씩 만나니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며, 부부싸움도 덜 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며 "떨어져 지내는 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과 많은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은 앞으로는 동성애가족, 입양가족, 사이버부부 등 가족형태의 변화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과 형태에서 벗어난 이들 이색가정을 언제까지나 그저 예외적인 소수집단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색가정의 구성원들은 변화의 패러다임에서도 행복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다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