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미용은 기본 경제·대인술·자동차·IT까지 필요한 것 총망라

신세대 남자들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 남성 패션지. 20세기 남자들이 선술집에서 인생을 배웠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자들은 잡지에서 자신을 가꾸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십여 년 전까지 ‘남성지’라는 말은 도색잡지를 의미했다. 취미나 시사 잡지를 제외한 남성들을 위한 잡지 대부분이 벌거벗은 여성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남자 성인용 잡지’들은 제대로 된 도색잡지도 아니었다. 조금만 노출이 심하면 법적 제제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들이 볼 수 있는 잡지란 너무 심각하게 정치와 경제를 논하거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뿐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성지 시장은 잡지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남성지에 광고를 실으려는 광고주들이 줄을 섰다. 해외 명품 패션, 화장품, 자동차 브랜드의 광고는 물론이고 그 이미지를 좇으려는 국산 브랜드까지 남성지를 최고의 광고 매체로 꼽는다.

월에 한 번밖에 발매되지 않지만, 남성지 광고 수주액은 웬만한 일간 신문의 월 광고 총액을 넘어선다. 광고주들이 남성지를 새로운 광고 매체로 선택한 이유는 남자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들

■ 남자의 교과서

예전의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데 인색했다. 패션은 천편일률적이어서 대학생은 폴로 셔츠에 면바지, 직장인은 기성복 브랜드 수트에 흰 와이셔츠라는 룰이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가꾸는 남자는 동성연애자 취급을 받았고, 등산이나 낚시 이외의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때문에 남성복이나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물론이고 남성용 속옷 광고까지 여성지에 실렸다. 남자를 가꾸는 것은 여자의 몫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1세기가 되고 몇 년이 지나면서 부터다. 남자들은 자신의 옷을 직접 골라 입기 시작했고, 피부를 가꾸거나 화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변화한 원인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성의 여성화’로 보는 것이 매우 편협적인 시각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예전처럼 능력이나 학연, 지연만으로 자신을 어필하기 힘들어졌고, 그에 따라 외모나 매너, 스타일로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는 게 맞는 해석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해외 경험 등을 통해 외국 남자들이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영향도 크다.

남성지의 주 독자층인 20대~30대 트렌드세터들은 핑크색이나 보라색 등 화려한 안감이 들어간 유명 브랜드의 정장을 입고 프렌치 커프스로 된 맞춤 와이셔츠를 입는다.

휴일에는 디오르 옴므의 스키니 청바지와 캔버스 운동화로 모양새를 낸다. 그들은 아침저녁마다 전문 제품으로 피부를 관리하며 정기적으로 전문가의 케어를 받는다. 아이팟에 뱅앤올룹슨의 A8 이어폰을 끼우고 음악을 들으며 모토롤라의 휴대폰과 소니 바이오 노트북으로 와이브로 인터넷을 즐긴다. 그들의 모임에서는 절대 폭탄주나 술잔 돌리기를 볼 수 없다. 음식에 맞는 와인을 선택하거나 싱글 몰트 위스키에 물을 섞어 마시는 게 그들의 술 문화다.

그렇다고 과소비 열풍을 조장하는 된장남이라고 욕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예전 세대들이 매일 거나하게 취하기 위해 썼던 돈보다 결코 많지 않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문화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동료들을 만나고 활발한 교류를 한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매일 똑같은 내용의 취중진담을 듣거나 실수한 것 만회하기가 더 비생산적인 사회생활 방법이다.

요즘 남성지는 그런 트렌드세터들이 알고 싶어 하는 온갖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크게 패션과 미용처럼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한 기사와 경제, 대인술, 해외 정세, 자동차, IT 등 남자로서 필요한 상식을 알려주는 기사로 구분된다. 남성지의 기사는 신문 기사처럼 간단명료하지 않다.

상황에 따른 옷 입기에 관한 패션 스타일리스트의 조언, 경제 전문가의 투자 노하우 강좌는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며, 최신 전자제품의 리뷰나 수입차 시승기는 단순한 정보를 나열하는 신문 기사와 달리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다룬다. 장점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세세한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에 실수요자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쉽고 소모적인 이야기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남성지 필진들은 ‘나’라는 1인칭으로 독자들을 향해 이야기하며, 독자들의 무지를 대놓고 비난하기도 한다.

네티즌들의 문제점을 토로하기도 하고, 미국 대선 정국에 대해 미국 전문가가 쓴 글에 수십 페이지를 할애하기도 한다. 영화 한 편당 몸값 100억원 대의 할리우드 배우 수십 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 화보를 싣는가 하면 체첸 반군의 북 오세티아 공화국 베슬란 학교 점거 사건 생존자의 르포가 실리기도 한다.

때로는 ‘독도는 왜 우리 땅일까?’하는 식의 다소 위험한 접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외국 잡지의 라이선스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유도 젊은 독자들의 시야 범위가 국내 필진들의 시각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을 만큼 넓기 때문이다.

남성지는 일종의 남자를 위한 교과서다. 수 만원에 달하는 명품 브랜드의 넥타이를 부록으로 붙인 잡지보다 ‘남자가 꼭 갖춰야 할 매너’라는 주제의 별책부록을 붙인 잡지가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예전에는 할리우드 여배우가 반라로 표지에 등장하면 더 많이 팔렸지만, 요즘은 조지 클루니나 브래드 피트가 표지로 나오는 것을 선호한다. ‘여배우가 표지에 나오면 들고 다니기 창피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때문에 예전의 남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여자 연예인 화보는 구색 맞추기가 된지 오래다.

외국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거나, 위스키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게 창피하다거나, 혹은 레스토랑에서 어떤 포크를 어떤 때 써야하는지 몰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면 당신도 남성지를 통해 당당함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증거다. 예로 든 세 가지 중 한 가지도 와 닿지 않는다면 당신이 구세대라는 증거다.

만약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해야 하거나 사춘기가 지난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면 당신에게도 남성지가 좋은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한글인데 이해가 되지 않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어디 ‘남자’로 살아간다는 게 쉬웠던 적이 있었나.

신동헌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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