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메세나협의회 이병권 사무처장기업의 사회적책임·경영전략 의의… 정부 제도적 지원 아쉬워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는 국내 메세나 운동 확산의 총본산이다. 1994년 출범해 올해로 15년째를 맞이한 메세나협의회는 그간 생소하기만 했던 메세나 개념을 국내에 착근시키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까지 메세나 운동의 깃발이 펄럭이도록 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또한 소외계층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찾아가는 메세나 사업’도 활발히 펼쳐 나가고 있다. 메세나협의회의 살림꾼이자 아이디어맨인 이병권 사무처장을 만나 국내 메세나 운동의 현황과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협의회가 출범 15년째를 맞았다. 국내 메세나 운동 확산 과정에서의 역할을 평가한다면.

“협의회가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은 고 박성용 5대 회장(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취임한 2003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국의 수백 개 보육원을 찾아가 펼친 ‘문화나눔 사업’은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후 ‘기업과 예술의 만남’(Arts & Business)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메세나 활동이 본격화했고, 당초 냉소적이었던 문화예술계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협의회가 문화예술 지원의 시대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기업들의 호응이나 만족도 역시 커지고 있다.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국내 메세나 운동의 저변은 얼마나 두터워졌나.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 금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게 하나의 증표다. IMF 당시 일시적으로 후원 규모가 뚝 떨어지기도 했지만 최근 5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서너 해 전부터는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금을 효과적으로 쓰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메세나가 더욱 활성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국내 메세나 확산에 주도적 기여를 해온 기업과 기업인을 꼽는다면.

“고 박성용 회장은 국내 메세나 역사에 워낙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하지만 그밖에도 메세나 활동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기업들이 많다. 삼성그룹은 삼성문화재단 등을 통해 해마다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 이건산업(박영주 메세나협의회 회장의 소유기업)의 경우 인천지역의 작은 기업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물심 양면으로 문화예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세나에 진정한 애착을 가진 기업인들은 ‘표’를 잘 내지 않는 편이다.”

-메세나 운동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크게 증가하는 분위기다.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 최근 화두로 떠오르면서 특히 문화분야에 대한 공헌이 상당히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국내 공연시장이 커져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는 점도 하나의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곧 인지도를 제고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통로가 된다.”

-최근 메세나의 트렌드가 순수한 후원이나 기부 차원에서 경영전략 또는 마케팅 수단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너무 계산적이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는데.

“물론이다.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더러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힘을 가진 사람의 후원 없이 예술이 성공한 적은 없다. 모짜르트나 베토벤도 궁중에서 그들의 예술적 능력을 선보였다. 너무 근엄한 시각에서 보지 말고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메세나가 기업과 예술의 협력관계, 파트너십으로 자리잡았다.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고 받는 마케팅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다만 메세나가 너무 상업지향적으로 흘러 문화예술을 ‘수단’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메세나는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부상조'를 위한 매개체인가.

“일방적으로 주는 시대는 갔다. 그렇게 해서는 관계가 오래 가지도 않는다. ‘난타’나 ‘유니버설 발레단’을 보면 후원기업을 즐겁게 해준다. 즉 그들은 후원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더 내놓게 된다.”

-궁극적으로 메세나는 문화예술을 위한 것인가, 기업을 위한 것인가.

“둘 다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업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가치’가 높아야 한다. 고객은 이제 양보다 질, 질보다는 격(格)을 따지는 시대다. 기업의 품격을 높이는 데 문화예술만한 수단이 어디 있나. 또한 문화예술의 3대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 다양성, 미래지향성은 오늘날 기업에게도 필수적인 경쟁력 요소다. 물론 문화예술은 메세나를 통해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반대급부를 얻게 된다. 요컨대 기업과 문화예술은 메세나를 매개로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메세나의 정착 및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이 정부의 지원이다. 특히 기업이 지출하는 문화예술 후원금에 대해 세제 혜택을 줘야만 메세나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 ‘문화접대비’라는 제도가 있다. 기업의 총 접대비 중 문화접대비(가령 공연티켓 구매 등) 비중이 3%를 넘을 경우 손비 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 국내 기업들이 문화접대비를 그렇게 안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접대비 전체를 손비 처리해 달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더욱이 문화접대비 제도 자체가 그나마 올해까지 유효한 한시법이라는 점도 문제다. 세제 당국의 적극적인 인식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

◇ 한국메세나협의회가 걸어온 길

1994. 4월 (사)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발족

1994. 5월 1대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 취임

1996. 11월 국제심포지엄 ‘태평양아시아 국제문화회의’ 개최

1997. 5월 2대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 취임

1999. 7월 3대 하나은행 윤병철 회장 취임

2000. 6월 4대 SK그룹 손길승 회장 취임

2000. 7월 국제심포지엄 ‘기업과 문화예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개최

2003. 7월 5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 취임

2004. 2월 ‘한국메세나협의회’로 명칭 변경

2005. 3월 메세나대상 ‘문화훈장’으로 승격

2005. 9월 기업과 예술의 만남(Arts & Business) 사업 시작

2005. 10월 6대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취임

2006. 2월 국제심포지엄 ‘기업과 문화예술 교류의 뉴 패러다임’ 개최

2007. 3월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 사업 시작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