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뉴컬러'세대 기폭제… 예술사진 시대 개막

현대미술과 사진, 그 관계의 역사는 1839년 지구상에 사진이란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사진이 중요한 매체로 떠오른 이유는 바로 그 역사의 궤적 속에 서서히 키워진 사진의 예술에 대한 욕구와 현대미술의 사진에 대한 요구가 맞물린 풍경에서 기인하고 있다.

사진이 예술지향의 매체로서의 욕구가 구체적인 운동으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회화주의 사진(Pictorealism)부터 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본격적인 예술지향의 모습을 갖춰 간 것은 1910~1920년대 언저리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나타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기술문명에 대한 실망과 예술의 전통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술개념의 새로운 확장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변혁의 중심에서 매체와 메시지의 전달방식 등이 새롭게 실험 되는데 여기서 사진의 복제기능과 재현의 특성에 주목한 미술가들과 사진가들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당시 까지만 해도 19세기 이래 미술에서의 사진의 위상은 미술을 흉내내는 것이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참조의 도구정도로 이해되고 있었던데 반해서 다다이스트, 내지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일반적인 미술매체로 인정되지 않았던 사진에서 오히려 신선한 매력을 발견해 냈던 것이다.

배병우-'만남과 헤어짐'

사진은 미술처럼 오랜 전통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에 의해 얼마든지 다양한 작업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들은 읽었던 셈이다. 만 레이(Man Ray), 브라사이(Brassai)같은 걸출한 사진가들의 기발한 발상과 사진재료의 유연한 사용법은 시대의 요구와 맞닿으면서 새롭게 사진의 가능성을 열어 간다.

이들에 의해 사진이라는 기계적 도구는 새롭게 변하는 시대의 미학에 더 없이 혁신적인 잠재력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만 레이의 경우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데 어쩌면 미술이 사진과 절묘하게 만나 그 위상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최초의 인물로 만 레이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대미술과 사진이 적극적으로 만나지는 풍경은 대체로 1960년대 초반의 팝 아트(Pop Art)의 등장으로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도 사진이 미술과 함께, 혹은 미술처럼(?)이해되고 전개되는 풍경은 아무래도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6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 미술계를 흔들어 놓았던 개념미술의 등장은 비로소 사진을 그림을 그리기 위한 수단, 즉 참조대상이나 이미지의 차용대상이 아닌 사진 그 자체로 자족적인 재료로 뒤바뀌게 한다. 이것은 팝아트 등에서 사진을 여전히 이미지 자체로 국한시켜 이용하고 있던 것에 비해 전혀 달라진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개념미술은 그 경향 자체가 지향하듯 아이디어와 미술로서의 개념을 구현하는데 목표를 두었던 만큼 사진이 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복제성, 즉 지시대상과 등가물을 이루는 사진의 개념이 그대로 미술의 개념이 되어 작품제작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70년대 초반이 되면 소위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불리웠던 미술도 등장한다. 말 그대로 땀구멍 하나까지 극명하게 묘사해 내는 회화, 또는 조각의 경향으로서 포토리얼리즘으로도 불릴 만큼 이들의 이미지는 지극히 사진적이다.

한편 사진 쪽에서는 새로운 컬러사진을 지향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나타난다. 훗날 New Color 세대라고 부르게 된 사진가들이 그들이다. 1976년 MoMa, 그러니까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윌리엄 이글스톤(William Eggleston)의 개인전이 기폭제가 된다. 당시 30대의 이글스톤의 초대전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고, 80점에 이르는 대형컬러프린트는 흑백사진의 아름다운 톤(Tone)과 그 전통에 어깃장을 놓는 대형 작품이었다. 비로소 사진은 회화와 맞먹는 크기와 시각적 효과를 확보하게 된 사건이다. 더구나 그의 집요한 피사체의 묘사는 그 반대편에 서 있던 하이퍼리얼리즘이 무색하게 미술과 사진의 재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기에 그의 전시는 사진과 미술 양쪽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윌리엄 클라인 작-NINA SIMONE

이글스톤을 필두로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등등 기라성 같은 뉴컬러 멤버들의 등장, 그리고 이들에 이어 만드는 사진 혹은 구성사진(Constructed Photography)이라고 뭉뚱그려 불리웠던 또 다른 경향의 사진가들의 활약은 한꺼번에 엄청난 사진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동시에 미술관들은 앞 다투어 사진을 콜렉션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콜렉션은 사진을 기성의 예술로 이해하였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예술로서의 가치가 미술과 동등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사진의 시대가 개막되는 광경이다.

애매하게 만드는 사진이라고는 했지만, 여기에는 연극적, 조각적, 설치적인 요소를 가진 사진에서부터 인간의 신체와 성, 또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체성의 문제까지 실로 다양한 관심사가 사진으로 소위 포스트모던의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수많은 경향의 작업들로 나타나고 있다.

셀프포트레이트를 통해 다양한 변신과 피사체라는 개념을 일신시켰던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나 설치와 조각의 개념을 사진 속에 끌어들인 샌디 스코그런드(Sandy Skoglund), 화가로서 사진의 새로운 방법론, 즉 다시점(多視點)의 개념을 구사하는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미디어의 사회성을 날카롭게 비판한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그리고 신체와 성을 예술의 전면에 부각시켰던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등, 이들의 다양한 표정의 사진이 보여준 방법론들은 곧바로 세계사진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전통의 해체는 사진으로 하여금 어떠한 태도도 용인하게 만들며 깊숙이 미술세계 안으로 사진이 진입하는 물꼬를 터 갔던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사진은 제 1세대 유학파로 지칭되는 사진가들의 귀국과 함께 몇몇 국내파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80년대의 새로운 사진 개념에 세례받은 이들은 '한국사진의 수평 전'등 일련의 대형기획전 등을 조직하면서 소위 현대사진의 다양한 개념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나간다. 또, 이들 작가 대부분이 대학 강단에 진출하게 된 것도 현대 한국사진의 위상을 새롭게 하는데 당시까지 다큐멘터리와 스트레이트한 사진의 전통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던 사진 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이후 비엔날레 등 국제전에도 국내 사진가들이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의 미술계 역시 사진을 수용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70~80년대를 거치며 구축된 사진의 미술화, 미술의 사진화 현상은 화가가 재료로서 사진을 사용하던 시대가 무색하게 미술가가 사진가가 되고, 사진가가 미술가로 이해되는 국면을 이루게 했다.

이제 한국의 사진현상도 유학파를 비롯한 1세대 현대사진가(이런 명칭을 용서한다면)들을 거쳐 차세대 디지털 마인드의 소장파로 옮겨가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는 와중에 놓이게 됐다. 거스키(Andreas Gursky), 칸디다 회퍼(Candida Hefer)등 초특급 작가들의 사진이 수 십만달러에 호가되는 시대에 조금은 늦은 감도 있지만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억대의 작품가격이 운위되는 국내작가들의 존재는 오늘날의 사진의 위상을 웅변한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지금 이 쯤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직도 우리의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에는 사진부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 큐레이터를 양성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수한 국제전에 거의 30%에 이를 만큼의 사진관련 작품이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 미술계와 사진계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새로운 감각과 실력을 갖춘 젊은 작가들이 불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사진역량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징후라고 해도 좋다면 사진의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뒤따라 주어야 마땅하다.


김장섭 사진가, 한성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kimjs-mai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