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감각과 동양적 감수성으로 배병우·구본창 등 호평

모던 아트(Modern art) 와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를 번역하면 같은‘현대 예술’이 된다. 그럼에도 때로는 이 둘의 용어를 분리해서 쓴다.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회화, 조각, 문학, 음악 같은 예술은 인간의 역사와 겹쳐져 있다. 이처럼 긴 시간의 역사 속에 있는 예술을 구분해 쓰는 것은 그나마 수긍이 간다. 사진은? 불과 170년(1839년이 공식적인 사진 발명의 해이다.) 밖에 안 된 어린 예술이다. 더구나 사진은 예술 동네에서는 천덕꾸러기 서자 아니었던가? 사진가는 예술가이기 보다 그냥‘찍사’였다.

그런 사진을 모던과 컨템퍼러리 포토로 나누고 후자를 기준으로 글을 써보려는 것이다. 이제 컨템퍼러리 포토를 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다른 이들의 구분법을 그대로 쓴다면, 그냥‘동시대의 사진’정도로만 써야 될 것 같다. 그래도 시비 거리가 있다. 언제가 동시대인데? 그렇다. 동시대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딱히 합의 된 것도 없다.

필자의 동시대는 1980년대 하반기부터이다. 그러니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도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사진가들로 한정 된다. 이들은 노력도 따랐지만, 한편으로 세월 좋은 때를 만난 사진가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90년대부터 사진이 현대 예술의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바람은 우리가 일으킨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뉴욕과 런던, 파리, 바젤 같은 주요 도시의 갤러리에 사진이라는 불이 켜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전시 공간의 절반 이상이 사진으로 채워진 것이다. 견고한 미술의 성채 속에 사진의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의 창끝은 예리하게 벼려졌다.

때맞추어 한국의 젊은 사진가들도 북을 두드리고, 진격 나팔 소리를 불기 시작했다. 전후 1세대라 해도 무방할 1950년대에 출생한 사진가들이다. 이전 사진가들과 변별점은 대학의 정규과정을 통해서 사진을 배운 첫 세대들이다. 그동안에도 사설 교육기관이나 도제 형태의 교육이 전수되어 왔지만, 대학과정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디딤돌이 되어 1970년대 하반기부터 유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배준성 (Oil on vinyl, Vinyl 0n photography 220× 153, 2006) (첫 번째) 천 경우(Believing is Seeing # 6, 135× 104) (두 번째) 데비 한(Thinking Venus 100× 220cm, 2006) (세 번째)
배준성 (Oil on vinyl, Vinyl 0n photography 220× 153, 2006) (첫 번째)
천 경우(Believing is Seeing # 6, 135× 104) (두 번째)
데비 한(Thinking Venus 100× 220cm, 2006) (세 번째)

1978년 이후는 미국에서도 모더니즘 계열의 사진이 기울고 뉴웨이브 운동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즈음에 유학 1세대들이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세계 사진의 중심지에서 사진의 흐름을 온 몸으로 익혔다는 것이다.

1988년 워커 힐 미술관에서 열린「사진,새 시좌(視座)」전은 이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공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작업의 완성도를 떠나서 세계 중심 사진과 그들의 프로토콜을 일치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공모전 중심의‘살롱 사진’과 1950년대「인간 가족」전 이후 지배적인 사실주의 사진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두드러진 변화는 사진이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도, 만들기도, 타 매체와 콜라주도 과감하게 시도했다.

이 흐름은 2000년대 들어와 보다 투명해 졌다. 사진이 시각예술에서 차지하는 위상 변화와 맞물려, 인근 예술에서 활동하고 있던 예술가들의 사진의 영역으로 과감한 영토 확장을 시도함으로 사진의 지경은 그만큼 넓어졌다.

이들은 사진이라는 낡은 옷을 버리고 사진도 회화도 아닌, 그냥‘어떤’시각 예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사진가입니까? 묻는다면 한결같은 대답은‘아닙니다. 그냥 아티스트입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구획 될 수 있으며,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는 걸까? 현대 사진 1 세대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호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예로 들겠다.

배병우, 구본창, 아타, 민병헌, 권부문, 이정진, 이상헌, 이갑철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의 뒤를 있는 세대로서는 천 경우, 니키 리, 정연두, 윤정미, 한성필, 배준성, 데비한 같은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서 주목을 받을만한 어떤 틀이 느껴진다. 첫째는 주제나 표현 방식이 글로벌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적 불문하고 이미지를 보는 순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한 눈에 들어나야 한다. 세계인이 가지고 있는 공감각 속에 어울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타, 니키 리, 정연두, 천 경우, 한성필, 배준성 같은 사진가들을 들 수 있다.

두 번 째 경우로는 서구의 그것들과 구분을 짓고, 순수한 한국미, 동양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경우이다. 배병우, 구본창, 민병헌, 이정진, 권부문, 이상헌, 이갑철, 데비 한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세계를 충분히 언급 할 만큼의 지면은 주어지지 않았다. 간략하게 특징을 뽑아보는 선에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프레임 : 아타의 세계는 성과 속, 생성과 소멸의 대립 된 세계이다. 정연두의 경우는 잠복된 인간의 꿈을 복원하는데 관심이 있다. 장노출을 이용하여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느리게 찍는 천 경우도 볼 만하다, 건축물의 실사 가림막을 이용하여 정면(파사드)이 갖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한성필의 작업, 명화의 차용이나, 회화와 사진의 콜라주를 선보인 배준성, 일상 속에 연출된 작가를 끼워 넣어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니키 리도 흥미롭다.

두 번 째 프레임 : 우선 소재에서부터 한국적인 것을 찾고, 해석하는 작가의 경우이다. 대표적으로 수묵화 같은 새벽 소나무로 잘 알려진 배병우가 있다. 초기에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사진으로, 항상 논의의 중심에 섰으나, 최근 스트레이트 한 백자 사진을 통해서 주목받는 구본창이 있고, 옛 기물들의 부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미지를 한지에 인화 하는 이정진의 작업도 여전히 흥미로운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안개, 눈, 꽃과 같은 자연물을과 풍요로운 여백을 조화 시킨 민병헌의 명상적 공간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시원적 풍경을 미니멀 하게 전개하는 권부문 등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풍경과 정물 위주의 작업을 대단히 명상적이고 서정적으로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갑철의 경우는 토속적인 풍경, 제의, 인물 사진을 번뜩이는 앵글로 처리하는 것에 능하고, 대비한은 비너스라는 미에 대한 서구적 잣대를 한국의 중년 여인의 몸과 접목시켜 새로운 한국형 비너스를 만들어 내어 호평을 받았다.

구본창 ( HA 02-1,2006,호림 박물관) (첫 번째) 이상현 (면경호접조어도 120× 240) (두 번째) 정연두(Location # 18, 122×160cm, 2006) (세 번째)
구본창 ( HA 02-1,2006,호림 박물관) (첫 번째)
이상현 (면경호접조어도 120× 240) (두 번째)
정연두(Location # 18, 122×160cm, 2006) (세 번째)




최건수 사진평론가 vintagevie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