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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창작극의 반란] 풍요 속의 빈곤을 이기는 해법과 증명
'창작예찬' 프로그램 극작가 최대한 우대 창작극 질 높이기 지원




김미도(연극평론가, 서울산업대 교수)

원전유서




무더운 여름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창작예찬’ 프로그램에 관객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창작예찬’은 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극 활성화를 목표로 시행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지원 제도로 지난 해 선정된 4개 작품이 1년여의 준비 끝에 드디어 막을 올린 것이다. 4개의 작품 중에 김지훈 작, 이윤택 연출로 연희단 거리패가 공연한 <원전유서>는 러닝타임이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작품이었다. 우리 창작극 사상 최고로 긴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만원사례였다. 관객들은 중간에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창작예찬’ 프로그램과 특히 <원전유서>의 공연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우선 이런 창작극 활성화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이유는 창작극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 연극계에서 창작극이 번역극을 압도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확하게는 1993년을 기점으로 창작극이 양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된다. 이는 곧 한국연극의 실질적 성장을 의미하며 관객들도 창작극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창작극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데 비해 질적인 수준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는데 무엇보다도 희곡 작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매년 신춘문예와 각종 공모제도를 통해 꽤 여러 명의 신인 극작가들이 얼굴을 내밀지만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연극제작의 특성상 작품을 써서 기획사나 극단에 채택되는 과정이 어렵고, 공연이 결정된다 해도 연습과정에서 자신의 작품이 이리 저리 변형되거나 찢겨나가는 일을 감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희곡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탈고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창조과정에 끊임없이 협력하고 그 과정 자체를 함께 즐길 수 없다면 연극판에서 부지하기 어렵다.

‘창작예찬’ 프로그램의 첫 번째 의도는 바로 극작가들을 최대한 우대하여 창작극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무대화된 4개의 작품 중 3개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가들에게 고액의 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 1년 동안 낭독공연과 워크숍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중하게 연출과 극단을 매치하여 공연에 이르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결과 다른 공연들에 비해 작가와 작품이 최대한 존중 받는 작업과정을 거쳤고 당선된 극작가들이 최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지훈의 <원전유서>는 원래 6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쓰여진 작품인데 이런 지원제도가 아니었다면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매장


‘창작예찬’ 프로그램은 기존의 지원제도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기도 하다. 대학로에 지원금은 넘쳐나지만 오히려 지원금이 연극을 망치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가 커진지 오래다. 지원금의 총액은 많지만 대부분 1천만원에서 3천만원 정도의 ‘소액다건’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야심찬 기획이나 대형 기획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지원금이 생기면 하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기획이 이루어지다 보니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소극장 공연들은 지원금 결정이 내려지면 한두 달 연습해서 졸속으로 올라간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지원금을 소비하느라 극장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도 어려워진다. 현재 문화예술 관련 지원제도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이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최근 들어 ‘소건 다액’ 방식으로 지원제도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나 심의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많다. 지원제도의 대수술과 함께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심의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극 활성화의 걸림돌 중의 하나는 연극 제작 방식이 ‘동인제’에서 대형 기획사 중심의 ‘PD 시스템’으로 전환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동인제 방식이 유지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극단들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의미 있는 작품을 해보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홍보와 마케팅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지자 기획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고 이제는 대형기획사들이 아예 기획과 제작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기획사들이 연극의 숭고한 이상을 아무리 존중한다 해도 기업의 특성상 영리를 최우선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관객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대학로 연극이 전반적으로 ‘대중화’되는 추세에 있다. 기획사들은 대중적 관객에게 소위 ‘먹힐’ 만한 작품을 찾게 되고 극작가와 극단들도 이러한 대중성에 쉽게 길들여지고 있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사실 창작극은 놀랍게 발전해왔다. 올해가 “한국연극 100주년”이라고 난리인데 정확하게는 “신연극 100주년”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1908년에 원각사에서 창작창극 <은세계>가 공연된 것을 기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서양식 무대극이 도입된 것으로 보면 100주년이다. 현재까지 최초의 창작희곡은 1911년 조일재의 <병자삼인>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우리가 서양식으로 희곡 중심의 연극을 시작한지는 아직도 100년이 채 안되었다. 2,500년 이상 희곡 중심의 연극을 해온 서양에 비해 100년도 안된 역사 속에서 이만큼 성장한 우리 창작극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무대극 도입 100년만에 대학로 일대에는 극장들이 150개를 넘어섰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 있는 극장들까지 고려하면 매일 밤 최소 50여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라가고 그 중에 창작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사실상 창작극과 번역극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이제는 대부분의 번역극도 우리 현실에 맞게 번안되거나 재창작되거나 최소한 연출텍스트가 새롭게 쓰여진다. 오태석이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윤택이 연출한 <햄릿>은 번역극인가, 창작극인가. 그 작품들은 한국적으로 재창작되어 명실상부한 한국연극으로 해외에 수출되었다. 습관적으로 ‘창작극 부진’을 한탄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창작극의 질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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