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문인단체·출판가 구도 속 성장

인간과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언어를 매개로 소통과 실존이 가능해지고 문화를 이룬다. 문학은 그 언어의 힘이 가장 크게 발현되는 장르다. 그만큼 문화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범주는 넓고 깊다. 그러한 문학을, 한국에선 어떠한 파워그룹이 주도하고 있을까.

영화와 같이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대중문화 장르는 자본권력이 문화계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문학, 그것도 한국의 경우는 파워그룹을 형성하는 구조가 크게 작품을 발표하는 문예지와 문예 동호회, 그리고 출판가의 반응으로 나뉜다.

현재 한국 문학계는 20~30년대 좌우 이념 대립이나 70~80년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계열로 나뉘어 큰 흐름을 형성하는 등의 특징적 구조는 없다. 때문에 현재 문학 파워그룹은 이 세가지 문단 구조 속에서 성장한 스타 작가가 각종 문예지에서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하는 특징을 보인다.

■ 문예지와 빅 3 출판사

우선 등단 제도를 통해 신인작가가 배출되고, 각종 문학상의 수상으로 작품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는 문예지는 문학계 파워 인맥을 형성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예지로 <창작과 비평><문학동네>그리고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행하는 <문학과 사회>가 꼽힌다.

이들 문예지는 각각의 잡지 이름을 딴 (주)창비 (주)문학동네, (주)문학과 지성사라는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발행된다. 문예지를 기반으로 등단한 작가들은 다시 등단한 문예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이들 빅3 출판사에서 신간을 간행한다. 또한 문예지의 편집위원과 편집 고문이 각 문예지와 일간지의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거대한 카르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문학권력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섰던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문학권력 논쟁 이후 (문학계가) 구조적으로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 등 빅3 출판사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1966년 1월에 창간된 <창비>는 백낙청을 중심으로 한 동인지 성격의 잡지로, 창간 직후부터 황석영의 <객지><한씨연대기>,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을 실어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에도 김영현·방현석·김하기·김한수·공지영·공선옥 등 신예작가들의 새 작품을 발굴하여 민족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여전히 문단에서는 <창비>와 창비의 편집인인 문학평론가 백낙청의 영향력을 논하는 데 이견이 없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제도적 문학과 반제도>를 통해 “창비의 성공 내부적인 요인으로 백낙청의 개인적인 탁월함을 드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겉으로야 누가 발행인이고 편집인이며 편집위원이 누구로 바뀌었건 언제나 창비란 기관차의 실질적인 기관사는 백 교수였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현재 창비의 편집위원은 백영서 주간을 비롯해 이장욱 시인, 진정석 문학평론가, 한기욱 인제대 교수, 김영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박형준 시인, 백지연 문학평론가, 유희석 전남대 교수, 최원식 문학평론가 등이 있으며 염무웅 문학평론가가 편집고문을 담당하고 있다.

70년 가을 문학평론가 김현, 김병익, 김치수와 변호사 황인철이 펴낸 <문학과 지성>은 계간지의 이름처럼 지성주의를 표방했다. 김원일의 <어둠의 혼> 이청준의 <이어도><선학동 나그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80년 언론통폐합으로 창비와 더불어 강제 폐간됐지만 무크지 형태로 <우리 세대의 문학><우리 시대의 문학>을 발행하다 88년 <문학과 사회>로 제호를 바꿔 재창간했고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문예지 중 하나다.

그러나 김현과 김병익 등 1세대 평론가가 떠난 후 문학과 지성(현재 계간지<문학과 사회>)의 파워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학과 지성이 아직 문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창비의 백낙청처럼 핵심적인 인물을 한마디로 꼽기 힘들다”는 것이 문학계의 반응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예전 정과리 문학평론가가 문학과 지성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지만, 현재 활동하는 인물 중 이정도로 문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문학과 사회>는 이광호 문학평론가(서울예술대 교수)를 비롯해 김동식, 박혜경, 우찬제, 최성실 등이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80년대 창비를 중심으로 한 민중문학과 문학과 지성을 중심으로 한 지성주의 문학, 두 축으로 형성된 한국 문단은 93년 <문학동네>의 창간으로 전환을 맞는다.

‘문학 본연의 아름다움과 문학의 자존을 지킨다’는 명목을 출간된 계간지 <문학동네>는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신인작가를 발굴했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외딴방’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등 대중성과 문학성을 갖춘 화제작을 잇따라 출간했다. 이때부터 문예지의 색깔은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창비와 문학과 지성, 문학동네의 차이가 없어지면서 두 세 개 매체에 동시에 작품을 싣는 스타 작가들이 출현했다.

문학동네를 대표하는 파워인물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남진우 평론가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그는 문학계 담론을 두루 통섭하는 깊이 있는 비평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외에 류보선, 서영채, 신수정, 황종연 문학평론가도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

70~80년대 문학계는 문인단체를 중심으로 파워 인맥이 형성됐다. 현재 국내 문인단체는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 그리고 국제펜클럽의 한국 지부인 한국펜클럽이 있으며 소설가 협회, 시인협회, 평론가 협회 등 장르별 협회가 있다. 이 중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는 각각 1만 명, 2,000명의 회원을 가진 최대 문인 단체로 꼽힌다.

1962년 만들어진 한국문인협회는 1949년 결성된 한국문학가 협회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보수 문인단체다. 초대 이사장은 전영택이었고, 김동리, 서정주, 박종화 등이 활동했다.

현재 시분과회, 소설분과회, 수필분과회, 아동분과회, 평론분과회 등 10개 분과회와 전국에 7개 지회 및 160개 지부를 두고 있다. 68년부터 <월간문학>을 발간하고 있으며 현재 김년균 시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김병권, 김남환, 박곤걸, 정영자, 성준기, 정대연, 김건중 작가가 부이사장으로 활동한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시작된 한국작가회의는 70~80년대 노동운동, 민족문학 논의와 함께 성장한 진보 문인단체다. 지난해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고 은, 신경림, 송기숙, 백낙청, 염무웅, 현기영 작가 등이 상임고문으로 있고 김규동, 김지하, 남정현, 도정일, 박석무, 박완서, 이호철, 임헌영, 임형택, 전상국, 조정래, 황석영 등이 고문을 맡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문학계 인맥이 문예지와 문예지를 기반으로 한 출판사로 옮겨 감에 따라 문인단체를 중심으로 한 인맥 구조는 현재 큰 특징을 찾아 볼 수 없다. 한 출판 전문가는 “요즘 작가들은 문인단체 송년회에는 불참해도 출판사 송년회에는 대부분 참석한다”고 말했다.

■ 대중성과 작품성의 결합

문학계 파워 인맥을 논하는데 작가는 여전히 중심적 위치에 있다. 평론가들은 한국문단에 영향을 준 작가의 기준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꼽는다. 한 해 출판목록에서 베스트셀러에 들면서 평단의 호평을 받는 다거나 문학상을 거머쥐면 더 할 것이 없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2000년대 작가군은 50년대 출생을 기준으로 양분화된다. 고 은, 박완서, 황석영, 이문열, 김 훈 등 1940년대를 전후 한 원로ㆍ중견 작가군과 김애란, 정이현, 김선우, 김영하, 박민규 등 1970년대 전후로 태어난 젊은 작가군이다. 그리고 이 두 작가군 사이에는 1960년대 전후 출생한 공지영, 공선옥, 신경숙, 윤대녕, 성석제 등의 작가그룹이 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고 은은 현실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시를 통하여 형상화한 현대 시인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서 왔다.

올해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 <허공>을 출간했다. 기자 출신의 작가 김 훈은 2001년 <칼의 노래>로 이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후 확실한 팬층을 확보하며 스타작가로 부상했다. 지난 해 <남한산성>는 4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이뤘고 지난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인기 작가 이문열 역시 지난 해 <호모 엑세쿠탄스>를 출간 15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박완서와 황석영 역시 <친절한 복희씨>와 <바리데기>, <개밥바라기 별>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90년대를 거치며 문학계에서 이데올로기와 문예사조 대립은 자취를 감추었다. 정치와 사회 담론의 자리를 자본이 차지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가진 스타 작가는 각종 문예지와 출판사를 오가며 멀티플레이어로 활동 중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없어진 예술계 경향도 영향을 미쳤다. 한 비평가는 “시장주의가 문학계에 상당히 큰 동력이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