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리움 관장… 박명자 갤러리 현대 창업주… 이현숙 국제 갤러리 대표…

국내 미술계는 갤러리, 작가, 컬렉터, 큐레이터, 평론가 등 미술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축들을 이해함으로써 기본적인 권력 구도를 파악할 수 있다.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구조는 한국 미술계의 현실적인 지형도를 대변함과 동시에 각각의 요소들은 계속해서 서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의 층을 이뤄나가고 있다.

■ 막강한 자본으로 미술계 담론 형성의 중심에 선 '화랑가'

화랑들은 더 이상 ‘좋은 그림’만으로는 살아 남기 힘든 상황이다. 넘칠 대로 넘친 국내 화랑가에서 유명 작가들과 작품에만 의존해서는 화랑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화랑들은 주로 재벌가의 우먼파워가 대세를 이룬다. 가장 대표적으로 ‘미술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홍라희(63)’ 관장이다. 삼성가의 안주인인 홍라희 관장은 해마다 미술언론 등의 영향력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술품 비자금 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 관장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해 태평로의 로댕갤러리,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등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고, 고고유물과 미술품, 국내외 근·현대 미술품들을 총망라하는 수장품만도 15,000점이 넘는다.

리움의 홍라희 관장과 함께 갤러리 현대의 창업주 ‘박명자(65)’ 회장 역시 국내 미술계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 인물이다. 박 회장은 화랑 직원에서부터 시작해 굴지의 화랑 대표가 되기까지 근·현대 미술사를 수놓은 박수근, 이중섭, 이상범, 유영국 등 내로라 하는 작가들과 동고동락해 온 한국 미술의 산증인이다.

갤러리 현대를 비롯해 두가헌 갤러리와 아들이 운영하는 인사동의 두아트 갤러리, 동생인 박영덕화랑의 박영덕 대표까지 미술계의 파워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1981년 삼청동에 국제갤러리를 설립한 ‘이현숙(59)’ 대표도 국내 미술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인물이다. 화랑 운영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화랑협회의 수장 역할까지 함께 수행하며,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 미술품 감정 등의 다양한 미술계 행사들을 유치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루이스 브루주아, 알렉산더 킬더, 안젤름 키퍼 등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화제가 됐었고, ‘이 시대의 진정한 여걸’이라는 수식어답게 끊임없이 미술계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 권력을 내재화하며 이즘(-ism)을 이끄는 '작가'

작가들은 시대가 원하는 작품, 더 나아가 미래가 원하는 작품을 창조하며 스스로가 미술계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72)’ 작가는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작품을 소개하며 백남준과 함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해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 받고 있다.

1997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뉴욕 소더비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 경매에서는 이우환의 1982년 작품 <무제>가 예상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모노톤의 색을 이용해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한 굵은 붓 터치를 순백의 캔버스 위에 펼쳐놓는 것이 특징인 이우환의 작품들은 동서양을 막론한 전세계 컬렉터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우환과 더불어 1970년대 한국 미술운동의 기수인 ‘묘법’화가 ‘박서보(77)’ 역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다.

특히 60년대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극소화, 단순화, 패턴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70년대 국내 미니멀 아트의 선두주자 인 셈이다. 그밖에 다소 평범할 수 있는 ‘물방울’을 하나의 보편적 브랜드로 승화시킨 물방울 화가 ‘김창열(79)’과 여류 작가 ‘천경자(84)’도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한편 원로 작가들 뿐만 아니라 50대 미만의 중견 작가들도 미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 등 전세계를 무대로 거침없는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작가 ‘이 불(44)’을 비롯해 지난해 30대 작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꼽힌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39)’, 뉴욕에 본거지를 두고 미국은 물론 유럽 전역을 활보하는 설치작가 ‘서도호(46)’ 등 젊은 작가들의 활약 또한 눈부시다.

■ 작가의 권위에 힘을 실어주는 '평론가'

미술계 평론가들은 작가들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비판과 찬사를 통해 그들의 권위에 힘을 부여한다. 1950년대 국내 평론가 문화를 보면 비평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비평가와 비평과 함께 창작활동을 겸하는 겸임비평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당시에는 겸임비평가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직업비평가는 이경성, 방근택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범주가 다양해지자 자연스럽게 비평가들의 숫자가 늘어났고, 1965년에 비로소 국내에 본격적인 평론가협회가 구성됐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출범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이 일, 임영방, 유준상 등이 귀국해 협회에 영입을 했고, 국내에서 전업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던 이경성을 비롯해 방근택, 석도륜, 유근준, 이구열, 김인환, 오광수 등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최순우를 초대 회장으로 겸임비평가가 아니 순수한 전업비평가들로만 구성된 국내 최초의 평론가 단체인 셈이다. 미술 평론에 있어서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여전히 그 중심에 서있다. 최근 들어 협회 회원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윤진섭, 서성록, 고충환, 김영호, 김진엽 등이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