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수제자 김백봉 선생서 배정혜 예술감독까지 바통터치

최근 무용계 소식은 유독 극단적인 기사들이 많다. 하나는 좋은 소식이다. 세계 유수의 무용단에 진출해있는 우리 무용수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린 무용수들의 해외 콩쿠르 입상 소식도 우리를 뿌듯하게 하는 좋은 소식이다.

안 좋은 소식은 바로 원로들의 작고 소식이다. 특히 지난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무용계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생을 마감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 심소 김천흥 선생, ‘한국무용계의 금자탑’ 송범 선생,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 선생, 시인이자 무용평론가 김영태 선생이 차례로 이승을 떠났다. 올해는 산조춤의 명수 김진걸 선생이 이들의 뒤를 따랐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길다면 긴 우리 무용사에서 이들은 한 획을 긋고 떠났지만 이들 뒤에는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갈 무용인들이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 초로의 나이에도 무대를 누비는 백발의 춤꾼들

지난해 서울시무용단을 임이조 현 단장에게 물려준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는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김백봉 선생은 1986년 아시안게임 축하공연 <신천지> 안무,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식 <좋은 날> 안무 등을 통해 민족적 색채를 띤 한국무용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그의 수제자인 김말애 무용학부장과 딸인 안병주 교수 등 ‘경희대 라인’이 선생의 예기를 이어받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와 97호 살풀이의 예능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은 1,500회가 넘는 해외공연으로 세계에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공연과 창작 활동 외에도 후배 양성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오늘날 한국무용계를 이끌어가는 한국무용 교수들과 현장 무용가들 중 그의 문하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한국 창작춤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창무회’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실에 걸맞은 창작춤을 선보이려는 의도로 1976년 김매자 선생에 의해 창립됐다.

김매자 선생은 창무회의 작업을 통해 신무용의 틀을 깨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가령 무용수들이 버선을 던지고 맨발로 무대를 누비면서 동작과 감정의 세밀한 질감을 표현한 것은 이전까지의 한국춤에 제기되던 표현의 한계를 떨쳐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젊은 무용수를 키워내며 한국 춤의 꽃을 피워내다

한국 창작춤의 대모로 불리우는 배정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국립국악원 상임안무자, 시립무용단 단장, 국립무용단 단장 등 대표적인 직업무용단의 수장을 역임하며 대중이 한국춤이 지루하다는 인식을 극복하는 데 일조해왔다. 또 국립무용단의 해외공연 프로그램으로 한국춤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설이 있는 발레’로 우리나라에서 발레붐을 일으킨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은 퇴임 후 정동극장장을 맡으며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과 함께 발레의 대중화 작업을 계속하다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온 친숙한 인물이다.

특히 ‘해설이 있는 발레’는 다른 무용단에도 전파되어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히트 상품이다. 특히 최태지 단장의 국립발레단과 문훈숙 단장의 유니버설발레단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한국 발레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국의 줄리어드를 표방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정승희 무용원장은 무용원 개원과 함께 실기과 교수로 초빙되어 어린 무용수들을 키워내왔다. 또 미나유, 남정호, 전미숙, 안성수 등 스타 안무가 교수들과 함께 주 18시간에 가까운 집중 교육으로 무용원이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각각 이론과 실기를 분리해 전문 교육을 하면서도 춤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 이론과 실기를 적절한 비율로 병행케 하는 무용원의 교육방식은 무용인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 문예위, 제도적 보완으로 현실적 지원 필요

4- 배정혜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5-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
6- 정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
7-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지금 무용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 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2기 위원으로 새로 선임되어 무용계의 진흥을 위해 보다 직접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는 현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와 한양대 예술학부장도 맡고 있어 당분간 공적(公的), 사적(私的)으로 무용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하게 될 듯하다.

2005년부터 문예위 무용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온 김현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3기 무용위원회까지 위원장을 맡아 계속해서 무용계를 이끄는 중추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무용위원회에는 김 위원장 외에도 각 장르별로 정은혜 충남대 교수, 장선희 세종대 교수, 양정수 수원대 교수가 선임되어 활동을 해왔다. 또 평론 부문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춤 전문지에 비평을 실으면서 지평을 넓혀온 김승현 문화일보 기자가 활동해왔다.

3기를 거치는 동안 이들에 대한 현장 무용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상반된다.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장르와는 달리 관객의 소구력이 적은 춤예술은 정부의 지원이 공연의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문예위원의 현장에 대한 인식과 지원 여부의 향방에 따라 무용가들이 공연을 ‘어떻게, 어느 정도의 규모로 할 것인가’까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받을 자격이 있어도 심사에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무용가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즉 문예위원들의 심사 공정성에 대한 시비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한 무용평론가는 “2005년도에 민간자율기구로 전환된 후 민간 예술가들이 직접 행정을 하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심사의 권한이 무용위원회 위원장에 집중되어 있는 현 시스템은 권력의 사적 도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장 무용인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보다 생산적인 춤예술 진흥을 위해서는, 현재의 지원 방식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문예위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성격 규정이 요구된다.

무용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과 그를 중심으로 한 단체들의 이권 다툼은 수년째 어지럽게 얽혀 있지만 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기득권 세력의 사욕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되어 전체 무용계가 비리 집단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무용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성토하며 여전히 요원해보이는 안정된 춤 활동의 그날을 꿈꾸며 땀을 흘리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