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영화제작자·배급사·세계적 감독·배우

얼마 전 막을 내린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지만 환율 급등에 따른 예상치 못한 운영비 상승이 그 주요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한국영화와 세계영화가 교류하면서 한국영화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부산국제영화제였기에 이것이 앞으로의 한국영화에 미칠 파급력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한국영화 개봉 편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대신 외화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 전체 관객수도 줄고 있는 극장가에서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작은 영화들의 홍보를 위해선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을 써야 한다. 최근 하나의 활로로 발견된 작은 한국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한국영화 정책을 좌우하는 영화진흥위원회

더욱이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줄곧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영화계가 영향력 있는 리더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화제작자, 극장주, 배급사,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감독과 배우들의 발언과 행동은 정부의 정책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영화인들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기대하는 것은 더 절박하다. 영진위는 정부와 충무로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확대, 영화인 복지 지원 및 정책 지원 같은 영화정책들을 집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섭이라는 새 수장을 맞은 영진위는 아직까지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취임 후 한국영화 대공황 위기설을 언급하고,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의 의도적인 이념 대립을 유도하는 발언으로 영화계와 관련 단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 노조와도 마찰을 빚고 있는 강 위원장이 위기를 넘기고 새로운 영진위를 어떻게 수습, 정리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영화 정책의 순조로운 운용을 결정지을 듯하다.

■ 영화계의 진정한 파워 그룹, 제작-투자-배급사

관객은 영화를 고를 때 유명감독이나 배우가 그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영화사들이다.

김주성 CJ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그동안 공을 들여온 투자, 합작 등 해외사업과 독립영화에 대한 지속적 지원으로 올해 상당한 결실을 맺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도 쇼박스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추격을 물리치고 배급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는 파워 인물 설문에서 언제나 수위에 오르는 대표적인 인사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을 맡아 충무로 현안에 대해 가장 폭넓게 경험한 인물로 인정받는 차 대표는 지난해 영화노조와 임금 단체협상을 성사시키는 등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한때 8년 연속 영화계 파워 인물 1위를 차지했던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대표는 여전히 영화계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와 Kn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제작자로 이름을 걸고 많은 작품을 만들어온 강우석 감독은 <강철중: 공공의 적1-1>이 관객 400만을 넘기고 <신기전>이 400만 동원을 앞두고 있어 시네마서비스 사단이 재기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 거장 감독, 이제 한국에서 만난다

한때 세계적 명장과 겨룰 수 있는 감독은 임권택 감독 한 사람이었지만 어느덧 한국영화의 힘은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등 세계적인 감독들을 키워낼 정도로 성장했다.

<괴물> 이후 첫 작품으로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선보인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카락스 감독,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 감독 등과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해 세계영화계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복수 3연작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제작자로 영역을 넓혀 <미쓰 홍당무>로 첫 선을 보였다. 자신의 차기 연출작인 <박쥐>는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의 공통투자로 북미 배급망을 확보하게 돼 제작자로서도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계의 비주류를 표방하는 김기덕 감독 역시 제작자로서 올해 <영화는 영화다>를 흥행시켜 상업영화에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감독으로서도 일본의 오다기리 조와 한국의 이나영을 캐스팅한 <비몽>이 마니아층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그가 고수해온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제작하는 영화에서 어떻게 변주될지 지켜보게 한다.

■ 스타 배우와 그들을 위한 머슴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이후 송강호와 최민식이 국민배우의 반열에 오른 것은 그들이 가진 연기력과 관객동원력에 있을 것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많지만 출연만으로 일정 수준의 흥행이 보장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송강호는 한국영화계의 보증수표다. 시니컬하면서도 역동적이고, 건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그의 연기는 쉬이 질리지 않는다. 굳이 ‘이미지 변신’을 하지 않아도 그가 가진 연기의 내공이 깊은 까닭이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현재 최고라고 불리우는 감독들이 그를 주연으로 삼아 두 편 이상의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의 위상을 말해줌과 동시에 그 자신의 뛰어난 시나리오 선택 감각을 증명하고 있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해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한 전도연은 최근 <멋진 하루>에서도 업그레이드된 연기력을 선보여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데뷔작인 <접속> 이후 자신의 색깔을 조금씩 진하게 표출해왔던 그는 <밀양>에서 그 정점을 찍은 뒤 한층 연기폭이 넓어져 동료, 후배 연기자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건 해마다 영화계 구석구석에서 궂은 일을 맡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올해 적자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영화의 큰 희망으로 남아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좋은 예다.

어느덧 70이 된 김동호 위원장은 청년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영화계를 누비고, 내년에도 누빌 예정이다. 자본의 힘에 귀속되는 파워의 논리가 아니라 국제적 문화 인식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김동호 위원장이야말로 한국영화의 진정한 파워맨이라고 할 만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