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점유율 98% 패러다임 주도… 미국 發 금융한파에 주춤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은 2007년까지 100억 달러를 훌쩍 뛰어 넘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 중심에는 세계 미술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인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있다.

전세계 경매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2007년 경매 실적을 보면 총낙찰 금액 합산가가 131억 달러를 기록했고, 이는 2006년의 81억 달러보다 무려 62%나 성장한 수치다. (도표 참조)

특히 소더비의 경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러시아 현대 미술품의 매출이 20배가량 늘었고, 인도·중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현대 미술도 매년 30% 이상씩 성장했다.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의 60%를 차지하며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크리스티 역시도 호황을 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꾸준한 성장가도를 달릴 줄로만 알았던 세계 경매 시장이 올 들어 불거진 경제 위기와 맞물려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의 여파도 세계 주요 미술 시장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런던에서 얼마 전 막을 내린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 결과가 이를 입증해준다.

런던 크리스티에서 지난 19일 열린 ‘현대미술품 이브닝 경매’의 낙찰규모는 3,197만 8,500 파운드(약 715억원)로 집계됐다. 총 47개 출품작 가운데 26점이 낙찰돼 낙찰률은 55.3%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7월 열린 이브닝 경매의 낙찰 총액 약 2,000억원, 낙찰률 82%에 비하면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이날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얼마 전까지 만해도 구하기 조차 힘들었던 루치안 프로이트의 초상작품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예상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인 541만 파운드(120억원)에 팔렸다.

애초에 이 작품은 치열한 경합을 벌이며 700만 파운드 이상에 낙찰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지만 160만 파운드나 밑도는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프로이트의 또 다른 작품 누드화가 무려 3,360만 달러에 팔린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번 런던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의 최고 낙찰가는 900만 1,250파운드(200억원)로 루치오 폰타나의 1963년 작품 <콘체토 스파지알레(Concetto Spaziale)>가 그 주인공이다.

계속해서 크리스티가 열리기 이틀 전인 17일에는 런던 소더비의 현대미술품 경매가 진행됐다. 크리스티에 불어 닥친 한파는 이미 소더비 경매를 통해서도 예견됐던 바이다.

이날 소더비 경매에는 총 64점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 45점만이 팔려 70.31%의 낙찰률을 보였다. 낙찰총액은 2,200만 파운드(약 498억원)로 과거 메이저 경매의 낙찰률이 80~90%를 웃돌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최근 시장 위기의 심각성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런던 소더비 이브닝 경매의 최고가 작품은 앤디워홀이 1976년에 그린 <해골>로 예상가보다 270만 파운드나 낮은 430만 파운드(97억원)에 팔려 충격을 더했다. 대부분 인기 작품의 낙찰가도 추정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낙찰된 45점 가운데 17점이 추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렸고,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린 작품은 2점에 불과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전세계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미술 시장의 불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미술품에 대한 가격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침체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미술 작품을 발굴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 돼있는 미술 시장을 공략하는 등의 방법으로 불황을 모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 세계 최고 경매회사 크리스티

크리스티는 17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J. 크리스티가 런던의 폴 몰에서 첫 경매를 실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적류만 다루던 소더비와 달리 미술품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을 경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1859년 윌리엄 맨슨과 토마스 우즈가 합류해 ‘크리스티 맨슨 앤 우즈’라는 합작회사로 재탄생 했으며, 1973년 런던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로 성장했지만 크리스티에도 시련은 있었다.

런던에서 안정된 위치에 만족한 채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여전히 빅토리아 풍의 회화나 프랑스의 바르비종 파를 다루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1957년에 길버트 스튜어트의 작품 <조지 워싱턴의 초상>에 사상 최저가가 매겨지자, 크리스티는 비로소 시대에 뒤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소더비는 당시 미술품 분야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었다. 1964년 소더비에 의한 파크 바넷의 흡수가 오히려 크리스티에게는 자극이 되었다.

오랫동안 런던에 안주해 있던 크리스티는 이를 계기로 뉴욕을 비롯해 전세계로 진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현재 뉴욕과 런던을 거점으로 세계 43개국 129개의 지사를 가지고 있으며, 18개의 경매장에서 연간 800회 이상의 경매를 개최한다. 경매계에서 크리스티가 갖고 있는 기록도 다양하다.

1926년 롬니의 <데이븐 포드 부인의 초상화>는 6만 900파운드에 팔려 양차 대전 사이에 거래된 미술품 중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미술품으로 기록되었다. 1970년에는 벨라스케스의 <후앙드 파레야의 초상>을 231만 파운드에 판매해 미술품 중에선 처음으로 100만 파운드가 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1987년에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2,475만 달러에, 1990년에도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이 5,250만 달러라는 경매사상 최고가로 팔려 경매사의 최고 미술품 가격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또 1998년에는 고흐가 말년에 어머니를 위한 선물로 그린 자화상 <수염 없는 예술가의 초상>이 7,150만 달러에 경매됐다.

■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소더비

소더비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공인 경매장이자 예술 품목을 주로 다루는 곳으로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다.

영국 런던의 서적판매상인 사무엘 베이커가 1744년 개인 소장 도서들을 효과적으로 팔기 위한 방법으로 행했던 경매 기술이 소더비 역사의 기원이 되었다. 1778년 그의 사망으로 조카인 존 소더비에게 회사가 넘어가면서 ‘소더비’라는 현재 이름을 얻게 된다.

1796년부터 정기적인 경매 날짜가 지정 공포되어 경매를 대중화하기 시작했고, 1827년 그 간 주력해오던 서적류에 대한 경매에서 탈피, 회화 작품을 위시해 가구를 비롯한 보석류, 자기, 골동품까지 다양하게 아우르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한때 주춤했던 소더비가 다시 되 살아난 것은 1957년 ‘와인버거 컬렉션’ 덕분이었다.

네덜란드의 은행업자 인 와인버거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뉴욕으로 건너가 수많은 물품을 수집하고 죽자 당시 소더비의 사장이었던 피터 윌슨이 유산관리자를 끈질기게 설득, 경매에 부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시사회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등 유명 인사 3,000여 명이 참석해 화제가 됐고, 고흐의 <크리스 공장>이 8만 6,600달러에, 르느와르의 <빨간 조끼 입은 소녀>가 6만 1,600달러라는 최고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과 피카소, 유트리로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총 91만 4,000달러가 넘는 거래 매상을 올려 대전 후 최대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런던의 본사 외에 1964년 미국의 파크 바넷 경매회사를 인수해 뉴욕에도 본사를 두고 국제 기업으로 거듭났으며, 현재 전 세계에 100여 개의 상설 경매장을 갖춘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감정면(鑑定面)에서도 그 진가를 인정 받아 연간 2조 4,000억 원 이상의 경매실적을 기록하며, 경쟁사인 크리스티와 함께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미술품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 1991년 10월에는 뉴욕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미술품 단독경매를 실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추정가의 10배인 176만 달러에 팔리는 등 대성황을 이루며 한국 미술품의 진가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