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의 최대 화두는 기업 인수합병(M&A)이다.

M&A는 원래 미국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지분을 사고파는 기법에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할리우드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배우 리처드 기어가 맡았던 주인공 역할도 M&A 전문가였다.

국내에 M&A가 본격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때였다. 우량 회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침몰할 상황에 처하자, 자본가들이 주식시장에서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하는 사례가 자리잡았던 것이다.

재계에서 M&A가 붐을 일으킨 까닭은 외환위기로 경영난에 처한 많은 대기업들이 회사를 팔기 위해 주식시장에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던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사업을 확장하던 대기업들이 핵심사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면서 세칭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은 기업경영에 대해 “회사는 달리는 사이클과 같다”고 말했다. 사이클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추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 하고, 몸집을 불려나가야 한다. 실적이 지난해와 같거나 줄어들면 기업경영은 지속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최근 재벌닷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2005년 이후 3년 동안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집이 불어난 만큼 자산은 42%, 부채도 38% 각각 증가했다.

대기업들의 몸집이 이처럼 불어난 것은 M&A 영향이다. 외환위기 때 핵심사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던 대기업들이 민영화 공기업이나 부도난 회사들을 대거 사들이면서 기업 수가 급증한 것이다.

문제는 몸집이 불어나면서 부채도 덩달아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30대 그룹의 부채총액은 3년 만에 무려 150조 원이나 증가했다. 다시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으니 연간 10조 원에 가까운 금융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30대 그룹 전체의 순이익이 25조~30조 원대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사업을 해서 번 돈의 약 40%를 이자로 내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시중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유동성 위기까지 우려된다.

또 다른 문제는 대기업 몸집 확대의 질(質)적인 측면이다. 일부 대기업은 아이스크림 장사나 유흥주점 사업에까지 진출하면서 계열사를 불리고 있다. 어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나 할 법한 사업까지 싹쓸이해서 진출하고 있다. 그 바람에 자금력과 사업력이 처지는 기존 중소기업들은 발붙일 곳도 줄어들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왜 입시학원 사업을 하는지, 두산그룹이 왜 출판사를 하는지, GS그룹이 왜 담배를 수입하고 외식사업을 하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이러다간 한국에 대기업만 남고 중소기업은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몇 년 전 대기업들은 ‘상생경영’이라는 거창한 말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 강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도 말 뿐인 듯하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연간 영업이익률은 20%를 넘고, 임원 연봉은 최대 100억 원대에 이른다. 연간 주주배당도 수조 원에 달하니 대주주인 외국인들이 받는 배당금은 천문학적인 수치다.

하지만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어떤가. 영업이익률이 1%가 안돼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거래관계가 끊길까봐 입도 벙긋 못한 채 냉가슴만 앓는다. 삼성전자 임원 연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순이익을 남기고 근근이 회사를 지탱하는 중소기업도 즐비하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