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 품목 6만여 종·394개 매장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균일가 마켓으로 '우뚝'

필자는 균일가 제품 시장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1,000원짜리 제품이 오죽할까라는 편견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 전 일산에 있는 매장을 일부러 찾아갔다.

어머님과 아내를 데리고 갔는데 의외로 살 것이 많았다. 구두약, 세제, 수세미, 심지어 필기도구까지 사게 되었다. 꽤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지불해야 할 돈은 만원을 조금 넘었다. 지금처럼 물가인상 때문에 고전하는 우리에게 이런 비즈니스는 구세주가 될 것 같았다.

다이소아성은 1,000원짜리 균일가 제품 매장이다. 대부분 제품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500원짜리나 2,000원짜리도 있다. 그런 자잘한 것을 팔아 1,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400억 원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취급 품목 6만여 종, 국내 매장 394개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균일가 마켓의 주인공이다.

다이소아성은 일본의 다이소와 한국의 아성이 공동 투자해 만든 회사다.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는 박정부(64) 회장이다.

경기 기흥에 위치한 회사를 방문했을 때 무척 분주한 분위기였다. 전 직원이 동원되어 물건을 내리는 듯했다. 오전에는 물건을 실은 차가 와서 이를 내리고 오후에는 매장에 보낼 물건을 분류해 싣는단다.

이 사업의 핵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재고관리와 물류시스템이 가장 중요할 듯하다. 이 회사는 DPS(Digital Picking System)라는 물류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이후 업무의 효율이 몰라보게 달라졌단다. 척 보기에도 이를 알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런 사업은 할 수 없다. 업종 자체가 워낙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약속을 잡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인터뷰하던 날도 작업복 차림에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엄청난 업무량에 필자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우선 취급 아이템이 많다. 수만 개의 아이템을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발주를 내고, 구매하고, 확인해야 한다. 물류를 위해 가져오고, 보관하고, 각 매장에 실어 날라야 한다. 그 와중에 한 달에 400개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거래처 담당자와 회의도 해야 한다. 보통 사람은 절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다. 모든 제품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의 사무실 앞은 확인을 기다리는 제품들로 가득하다. 사무실인지 창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자신이 너무 꼼꼼해서 회사가 성장을 제대로 못했다고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반대다. 그만큼 꼼꼼하고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일본 다이소는 보통 회사가 아니다. 초창기 다이소의 야노 회장은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상을 뒤집을 정도로 강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굴하지 않았고 살아 남았다. 사실 그 덕분에 탁월한 개발 능력과 품질관리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제품에 대한 그의 열정 또한 대단하다. 6만 가지 아이템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나하나에 자신의 애정을 담았기에 누구보다 제품을 잘 알고 있다. 1,000원이라는 가격에 제품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가의 우수한 제품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 제품을 발굴했다. 연 평균 20회 이상 해외 출장을 다니는데, 지금까지 쌓인 거리만 지구 30바퀴를 너끈히 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생존부등식’이란 게 있다. 한양대 윤석철 석좌교수가 개발한 것인데, 이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는 조직만이 오랫동안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원가(Cost)<가격(Price)<가치(Value). 즉 제품을 만드는 원가보다는 가격이 높아야 하고, 가격보다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부등호가 클수록 그 조직의 생존가능성은 높아진다. 박 회장은 비록 1,000원짜리지만 가격 대비 두 배 이상의 가치를 고객에게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생존부등식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믿는다.

박 회장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이다. 바로 균일가 매장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시장이지만 일본에는 유통시장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일본 유통은 네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백화점, 할인점, 균일가 매장, 편의점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균일가 시장 규모는 4조원이다. 한국의 10배 규모다. 그만큼 한국의 균일가 시장 성장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개척자인 만큼 고생도 많이 하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저가 제품을 판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제안도 합니다. 이 시장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지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지금의 사업을 시작했을까? 그는 한양대 공대를 나왔다. 대학시절 품질관리기사 1급을 취득했고, 첫 직장에서 공장장으로 14년간 착실히 근무했다. 그러다 샐러리맨으로서 한계를 느껴 독립을 했다. 처음 사업은 1988년 설립한 ㈜한일맨파워이다. 동생과 함께 시작한 한일맨파워는 삼성, LG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에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연수를 위해 일본을 오가면서 무역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다이소였다. 100엔샵으로 알려진 다이소는 그 무렵 일본 내에서 하나의 유통채널로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였다. 한국판 다이소를 겨냥해 1992년 만든 회사가 아성산업이고, 다이소와 합작을 한 회사가 다이소아성이다. 한국맨파워는 일본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남아 있다.

처음부터 대박을 낼 수는 없다. 개인도 조직도 모두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이루면서 한 단계씩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 회사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일본에 제품 공급만 했다.

그러다 노하우가 쌓이자 1997년 ‘아스코이븐프라자’라는 브랜드로 국내 균일가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다이소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쌓은 역량 덕분에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01년 다이소와 합작해 지금의 다이소아성산업을 만들었다.

박 회장에게 최대 위기는 언제였을까. 그는 매일매일이 위기이고 지금도 위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대 고비는 1995년이었다. 거래처의 부도로 인해 자금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받아놓은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연쇄적으로 고통을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회사 규모도 줄이고 직원도 이탈해 고생을 많이 했단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컨테이너 한 개에 물품을 가득 싣고 거래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하루 40개의 컨테이너 물량이 오고 갑니다. 물론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올해가 설립 20주년입니다. 이미지도 바꾸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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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