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동차 프로젝트 실패 책임지고 사표… 포항공대 출신 10명과 의기투합

휴대폰부품 및 LED(발광 다이오드) 전문업체인 알티전자는 2002년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2007년에는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9분기 만에 흑자전환 되었다. 최근에는 태양광 사업에 대한 1,500억 원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공격적인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는 알티전자 김문영 사장을 소개한다.

필자는 김문영 사장을 보면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일찍 죽어주는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독설이 떠올랐다. 그는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광산업을 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은 풍요로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고 졸업 후 2년 동안 대한페인트에서 기능직 사원으로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재수를 해서 서울시립대를 가게 되었다. 더 좋은 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사립대는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의 형제들은 무조건 국립대만 갈 수 있었다. 그를 보면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도 그렇다. 그도 다른 사업가처럼 수많은 경험을 거쳐 오늘날의 사업가로 성장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삼성에서의 근무 경험이다. 그는 삼성에서 주로 신규사업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 경험이 나중에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삼성에서 처음 배치된 곳은 삼성석유화학 기획팀이었습니다. 신규사업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기획하고, 자금 조달하고, 공장 세우고, 마케팅하고…. 그렇게 5년간 하다 보니 전체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군요. 다음 프로젝트는 삼성BP였습니다. 그 때는 기획팀장으로 승진하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몇 조원짜리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돌려보고 피드백을 받아본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웬만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운영할지 훤히 보이거든요.”

그에게 최대의 사건은 삼성자동차 프로젝트였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신규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인정받아 7조원 규모의 삼성자동차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동시에 기아자동차 인수팀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기아차는 현대차로 넘어간다. 별다른 실패 없이 잘 나가던 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신규 프로젝트를 하면서 거의 1년 365일을 회사에서만 지냈던 그였다. 결국 프로젝트 실패를 책임지고 사표를 던진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이다. 그렇게 난생 처음 쉬던 그에게 흥미 있는 제안이 하나 들어온다. 조그만 벤처 회사에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10명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조금만 도와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소프트웨어는 생소한 분야였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을 듣고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비전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젊은이 10명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해보기로 결심한다. 이 회사가 지금의 알티캐스트(구 포디엘)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기회는 생기는 법이다. 알티캐스트가 그렇다. 이 회사는 현재 디지털방송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할 계획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그 쪽 관련 일이 블루오션이 될 것 같다는 느낌만을 갖고 있었다. 별다른 전문성도 없었다.

99년 2월 알티캐스트로 이름을 바꾸고 그 해 4월 북미방송장비 전시회를 전 사원과 함께 참관했다. 뭔가 하나 건지겠다는 일념으로 전 직원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전시회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관찰을 하고 질문도 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외국인들 눈에 인상적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썬마이크로시스템과 필립스가 공동 주최하는 디지털방송 컨소시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아무 경험도 없고 지명도도 없는 회사가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사는 디지털방송 분야에서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도약하게 된다.

“알티캐스트는 저에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 준 곳입니다. 함께 했던 젊은이들 덕분에 주춤했던 열정을 다시 살릴 수 있었습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외환위기 덕분입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인재를 무더기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회적으로는 힘든 시기였지만 소프트웨어 회사 입장에서는 최고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이지요.”

초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운영자금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월급이 직원들은 100만 원, 임원은 150만 원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생활이 곤란한 급여였다. 하지만 알티캐스트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있던 삼성이 성장 가능성을 예감하고 투자를 결정하면서 살림이 풀린다. 삼성이 15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06년에는 AIG가 200억 원을 투자했다. 그는 이 돈을 모두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그러면서 매출이 꾸준히 상승했다. 좋은 기회도 생기기 시작했다. 알티전자를 인수하게 된 것도 그런 경우다. 사업상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알티캐스트의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알티전자를 인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오므론의 한국 지사였던 한국오므론까지 인수할 수 있었다.

너그러워 보이는 인상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믿고 맡기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철저히 검토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면 ‘임파워먼트’(권한위임)를 한다. 이처럼 직원들의 자율성을 중시한 덕분인지 그의 회사에서는 거의 이직이 없다.

“사업을 하면서 전표에 사인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표 결제를 하다 보면 자꾸 의심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큰 방향보다는 엉뚱한 곳에 관심을 가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일은 사장이 아닌 담당자가 합니다. 뽑았으면 믿고 맡겨야 합니다. 회사를 말아먹는 일이 아니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업은 신뢰가 전부거든요.”

그는 철저한 국가관을 가진 기업가다. 공군에서 근무한 4년간의 생활이 그를 애국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돈을 버는 사업가보다 뭔가 국가에 기여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한다. 사회적으로는 화합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재자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참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를 보면 역시 인간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생각이 든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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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