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룸 대박, 명품의류 진출로 쪽박… 요즘엔 신소재·광산개발에 관심

미래에 가장 뜰 사업은 무엇일까? 바로 웰빙 산업이다. 소득이 올라가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아도 몸에 좋다는 온갖 것들로 넘쳐 나고 관련 시장도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이런 웰빙 산업의 ‘원조’격인 회사가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할 내츄럴파크다.

내츄럴파크는 웰빙 관련 원재료와 제품을 만들어 판다. 음이온, 원적외선, 은섬유, 천연약초실크 건강 내의와 각종 용품, 건강 미용용품과 음이온 파우더, 게르마늄 파우더, 원적외선 파우더, 선박 도료용 환경파우더, 친환경적 건축 내장재용 웰빙 기능성 파우더, 환경 코팅제 등을 원재료 상태로 공급한다. 때로는 직접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요즘은 제품보다 원재료 사업의 비중을 늘려가는 중이다.

이 회사 이연중(57) 회장은 웰빙 산업의 고수답게 건강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다. 업종과 사람이 딱 맞는 그런 느낌이다. 필자는 이 회장을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났는데 처음부터 남달랐다. 사업가라기보다 신부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조용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넘쳤다.

많은 성공한 이들이 그러하듯 이 회장 또한 초년 고생을 톡톡히 했다. 그는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는데,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공부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군 제대 후 시작한 직장 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 한 일은 영사기 판매 영업이었다. 선배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그대로 실천하자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업에만 만족할 수 없어 총무부로 옮긴다. 이곳에서는 회사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볼 수 있었고 사업의 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29세 되던 해였다. 모 전자회사의 대리점 운영이 첫 걸음이었다. 거기서 에어클리너 관련 제품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인연으로 클린룸 사업에 진출해 대박을 낸다. 당시 불같이 일어나던 반도체 산업의 호황과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사업 초창기 대단한 성공을 거둔 덕에 기사 딸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30대 중반에 벌써 호의호식을 하게 됐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잘 나가던 그의 사업은 암초를 만난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명품의류 사업에 새롭게 진출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해외 명품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는 사업이었는데 경험 및 자금 부족 등으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무리한 사업확장은 자금경색으로 이어졌다. 조금 손해가 났을 때 접었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투자를 하다 결국 부도를 낸다.

이 회장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그 때의 부도인 것 같다. “어디에선가 초년 성공의 위험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흔 살 이전에 번 돈은 자기 돈이 아니란 얘기도 들었습니다. 딱 저를 두고 한 말입니다. 젊은 나이에 잘 나갈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로 넘쳤습니다. 하지만 부도가 나자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다 떠나고 두 사람만 남더군요. 그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재기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부도가 난 후 재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감이 없어지거든요.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더군요. 하지만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세상이 보였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밑바닥을 치니까 새롭게 희망이 보이더군요. 그러다 새로운 아이템을 만나면서 탈출하게 되었지요.”

누구에게나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있다. 이연중 회장이 웰빙 산업에 뛰어든 것이 그렇다. 그는 우연히 어떤 자료를 보다가 이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소득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웰빙 산업은 자연스럽게 커질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닥치는 대로 정보를 모으고 관련업계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받는 등 이 산업을 열심히 공부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기초로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보고서를 들고 대학에 검토를 의뢰했는데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1991년 마침내 웰빙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장애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홍보에 힘이 들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웰빙 산업의 중요성을 얘기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돈이 없어 광고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는 궁리 끝에 신문사를 노크했다. 무작정 신문사에 찾아가 기자들에게 제품을 나눠주었다. 듣건 말건 일단 써보라고 설득도 하고 기사화를 부탁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그래도 그는 이 일을 계속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자가 신상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잡지에 이 회장의 제품이 다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 유망상품 코너 1면에 크게 기사화되었고 무역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서광이 비쳤다.

요즘 내츄럴파크는 신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양한 제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원재료 기술 개발이 부가가치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신소재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개발한 선박 도료용 소재가 대표적이다. 대형선박에 사용되는 일반 도료는 부식과 함께 도료가 떨어지면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하지만 기능성 광물에서 추출한 신소재로 페인트를 만들면 환경오염 방지는 물론 연료비 절감과 수리시간 단축 등의 효과도 있다.

이 회장은 요즘 광산개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자원전쟁이란 말이 나올 만큼 세계 각국은 자원확보 경쟁을 하는데 우리의 대응은 너무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는 좋은 광물이 많은데 민간 차원에서라도 확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한다.

“모든 일은 물 흐르듯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제가 부도를 맞았던 것도 너무 서둘렀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행동은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거나 현실에 안주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과감할 때는 과감해야지요.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손해를 감수하고 포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사업을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실수도 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다. 이연중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이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