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국 재계는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좌파정권이 집권한 때문이었다.

한국 재계는 그 이전까지 우파정권의 그늘 아래서 승승장구했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우파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재계는 무섭게 성장했다. 그것은 때로 ‘정경유착’이라는 말로 시비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실 한국 재계의 성장에 정권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계획은 한국 재계의 성장에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런 혜택(?)을 누리던 재계의 입장에선 좌파정권의 출범이 여간 우려스럽지 않았다. 그들의 우려대로 좌파정권은 출범 직후 재계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재계의 본산’이라 불리던 전경련은 초토화됐다. 대기업 오너들이 모여 만든 이익단체인 전경련은 좌파정권 출범과 함께 회장 선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재벌 총수라면 누구나 탐내던 전경련 회장직은 임자 없는 나룻배 신세였다.

전경련을 만든 주인공인 삼성도, 현대차도, LG도, 모두 전경련을 외면했다. 삼성은 자칫 미운 털이 박힐 지 몰라 1년에 한두 번 생색내기로 얼굴을 내밀었고, 현대차는 ‘원님행차’ 하듯 북소리만 요란했을 뿐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LG도 좌파정권 시절에 있었던 빅딜 불만으로 공공연히 반(反) 전경련 정서를 드러냈다.

결국 전경련 회장 자리는 재계 서열 50위에도 들지 못했던 경방으로 돌아갔다. 나중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매출 1조 원도 안 되는 제약회사 총수에게까지 전경련 회장이라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이런 재계의 무기력한 상황은 전경련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대한상의도, 무역협회도, 경총도, 중기협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상의는 그저 명맥만 유지하다가 대표자가 ‘쓴 소리’ 잘못했다가 좌파정권 핵심 인사들에게 면박까지 당했다. 가뜩이나 힘없던 경총도 전공인 노사문제에 대해 ‘이불 속 만세’ 부르듯 간간이 볼멘소리를 질렀지만 그나마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한국 재계는 좌파정권 10년 동안 지리멸렬했다. 그러는 사이에 재계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졸면 죽는다’는 생각에서인지 서로 제 살길 찾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유난히 재계에서는 형제의 난도 많았다. 사업권을 둘러싼 재벌간 전쟁도 그 어느 때보다 피를 튀겼다. 재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적도, 아군도 없는 ‘춘추전국시대’의 그것이었다.

그런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국 재계는 다시 우파정권을 맞았다. 강산도 변하는 세월을 침묵으로 지내던 한국 재계가 다시 기지개를 펼 것이라는 기대가 만발했다.

하지만, 어쩌랴. 10년의 세월은 하루아침에 벗어 던지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던지, 한국 재계는 아직도 구심점이 없이 떠도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전경련은 뭔가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말하려고 입을 벙긋거렸다. 전경련 회장이 대통령의 사돈이니 더욱 힘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경련의 목소리는 어쩐지 목청이 제거된 강아지의 울부짖음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주장도 없고, 전경련이 왜 존재하는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됐던 ‘대통령 사돈’은 오히려 ‘부작용’만 있어 보인다. 올바른 주장을 해도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 사돈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시선을 던진다.

한국 재계는 지금 뭔가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이 한국 재계에 있어서나, 한국 경제에 있어서나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기 때문이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