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자산 규모로 보면 한국 재계에서 서열 5위다. 지난 4월 기준으로 롯데그룹의 자산 총액은 대략 43조 원 정도로 집계됐다.

산술적 수치를 떠나 롯데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집단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식품이나 유통, 호텔 등 서비스업 분야에서 ‘롯데’라는 브랜드는 대단하다.

롯데는 거의 모든 사업이 흔히 말하는 ‘현금 장사’이기 때문에 유동성만큼은 삼성이나 현대차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금융가는 인식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당시에도 다른 대기업들은 모두 휘청거렸지만 롯데만큼은 유동성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롯데그룹이지만, 정체성에 대해서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특히 수십 년 동안 롯데그룹을 취재한 필자도 여태껏 ‘롯데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규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사실 롯데는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먼저 일군 기업이기에, 태생적으로 그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후반 정부가 재일동포의 모국 투자 유치를 추진하면서 롯데는 한국 땅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롯데의 사업은 자연히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이뤄졌고, 신격호 회장의 이중국적이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국민들이 용인한 부분이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돈을 벌어 거대 재벌이 된 롯데가 2세 경영 시대의 개막을 앞둔 이 시점에선 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롯데가 일본 자본의 투자기업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토착기업이 될 것인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롯데그룹의 상당수 계열사 대주주 명단에는 몇 년 전에 없던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00홀딩스’니, ‘00투자회사’니 하는 이름이 그 것이다. 그 중 대부분은 일본계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를 비교해 보면, 한국 롯데의 규모가 훨씬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롯데’는 ‘한국 롯데’ 투자지분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롯데는 뭔가. 어쩐지 한국 롯데는 ‘재주 부리는 곰’이고, 일본 롯데는 ‘돈 챙기는 왕서방’으로 비쳐진다. 최근 어느 언론을 보니 한국 롯데를 책임질 것으로 알려진 신격호 회장의 차남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는 보도가 자랑스럽게 실려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그가 이제서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니 그 동안 임원들은 일본말로 경영보고를 했을까.

얼마 전 필자가 경영하는 재벌닷컴에서 주요 대기업 직원 평균임금을 조사해 보니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사실이 여러 언론에 보도되자 롯데는 “임금은 낮아도, 근무기간은 길다”는 해명을 했다고 한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게 롯데의 창업정신인지는 모르겠다.

롯데는 매년 창업자의 고향마을에서 떡 벌어진 잔칫상은 차리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봉사에는 ‘짜다’는 평도 있다. 신 회장의 가족 중에는 그룹과 별도로 독점 납품회사를 세운 뒤에 매년 수억 원의 알토란 같은 배당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회사는 곧바로 금융당국에 공시하는 내용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아예 외부 사람들이 회사 내부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런 롯데가 최근 서울 잠실에 100층이 넘는 호텔 건물을 세운다고 떠들썩하다. 한편에선 롯데호텔 고위 경영인과 대통령이 대학 동기동창이어서 허가가 쉽게 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돈다.

하지만 6조7,000억 원에 달하는 롯데호텔의 지분 75%는 낯선 일본계 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롯데는 한국기업인지, 외국기업인지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