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계의 핫이슈는 재벌가 자녀들의 주가조작 스캔들이다. 상당수 재벌가 자녀들이 유명세와 재력을 활용해 비정상적 주식거래로 막대한 투자이익을 남긴 혐의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자본력과 정보력이 절대적인 증권시장의 속성상 주가조작이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례는 끝이 없다.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 역시 그런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재벌가 자제들의 경우 일반 투자자들에 비해 막대한 자금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정보 접근성에서도 훨씬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투자’라는 탈을 쓰고 주식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한국 증시에서 재벌가 자제들의 주식투자가 붐을 일으킨 것은 1998년 무렵이었다. 당시 외환위기로 주식시장이 침몰하고 벤처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코스닥시장이 폭등하자 돈을 앞세운 재벌가 자제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 이전까지 재벌가 자제들의 주식투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거나, 부모로부터 주식을 증여받는 정도가 전부였다.

정부의 증시 정책도 재벌가 자제들의 주식투자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외환위기로 주식시장이 붕괴되자 정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주식시장에 투자를 하도록 유도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주식에 투자했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주식투자를 견제하는 도덕적 기준도 무너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재벌가 자제들은 자금력을 앞세워 주식시장으로 몰려 들었고, 자고 일어나면 주가가 폭등하는 코스닥시장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당시 1만%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일부 코스닥 기업의 주가폭등 이면에 몇몇 재벌가 자녀들이 있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무렵 재벌가 자녀들이 주식시장에 몰리게 된 데는 그들이 외국 유학을 통해 얻은 금융지식도 한몫 했다. 대부분 미국 등 선진국에서 경영, 경제 등을 공부한 재벌가 자녀들은 부모들과는 달리 금융분야에 대해 비교적 해박했다.

대기업 창업주들이 제조업을 통해 피땀을 흘리며 한 푼 두 푼 버는 경영 마인드를 가진 것과는 달리 해외 유학을 한 재벌가 자녀들은 주식투자나 금융시장을 통해 단숨에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재벌가 자녀들의 주식투자 붐이 꺼진 것은 2000년 말 무렵이었다. 벤처거품이 붕괴되면서 주식투자의 매력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재벌가 자녀들 중에는 1998년부터 2000년 말까지 3년 동안 주식투자로 막대한 돈을 챙긴 사람이 즐비했다. 물론 뒤늦게 뛰어들어 수백억 원을 까먹은 사람도 있었다.

2006년 무렵 재벌가 자제들의 주식투자 붐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코스피 지수가 1000을 돌파하면서, 이른바 ‘펀드 열풍’이 불어 닥치자 한동안 잠자고 있던 재벌가 자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할 때 2006년부터 다시 시작된 재벌가 자녀들의 주식투자 기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증권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단순 투자 사례가 많았다. 반면 2006년 이후에는 기업의 지분을 아예 사들이는 인수합병(M&A) 방식이 유행했던 것이다.

이처럼 투자방식이 바뀐 것은 주식투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때문이기도 했지만, 투자기법이 더욱 고도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기업이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저가로 사들인 뒤 최악의 경우 경영권을 넘겨받는 사례도 등장했다.

최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상당수 재벌가 자제들의 투자도 이런 형태로 이루어졌다. 투자를 통해 경영권을 인수한다면 별 탈이 없겠지만, 주가가 오르면 대부분 ‘먹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우려가 높다는 게 문제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