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 경영위기설’이 재계와 금융시장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국내 50대 대기업집단 중 몇 곳이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실제로 이름이 거론된 몇몇 대기업들의 계열사 주가는 폭락사태를 겪고 있다. 해당 기업들이 금융 관계자나 기자들을 초청해 해명에 진땀을 흘리지만 좀체 위기설은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칫 외환위기 때와 같은 초특급 경제위기가 몰려오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추측도 하고 있다. 정부나 금융당국도 뒤늦게 호떡집에 불난 듯 진화에 난리법석이다.

만사가 그러하듯 지금의 상황도 그냥 도래한 것이 아니다. 시발점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폭등에서 비롯되었지만, 국내 상황은 정부의 정책부재, 기업들의 안이한 경영, 국민들의 부화뇌동식 경제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인재(人災)에 가깝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적색등이 켜진 것은 월드컵이 끝나던 무렵부터였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남긴 유산 중 시한폭탄과 같았던 통화증발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강구해야 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는 엄청난 화폐를 발행했고, 이는 저금리를 타고 주식시장에 흘러 들었다. 다행히 주식시장은 되살아났지만, 시장에 풀린 부동자금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핵폭탄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돈을 유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그 대책은 기껏 부유세 정도에 그쳤다. 그러던 중 부동자금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넘나들며 투기바람을 일으켰고, 주택건설업체들은 초호화주택을 분양하면서 투기심리를 부추겼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강남을 시작으로 집값 잡기에 골몰했고, 내놓는 정책마다 시장에 풀린 수백조 원의 돈에 농락당했다. 부동산을 잡으려고 초강력 안정책을 내놓자 이번에는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이를 노린 증권사나 금융기관들은 ‘펀드’를 만들어 시중자금을 유입시켰다.

2006년 중반부터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세계적인 분석기관들이 한국 주식시장의 적정주가를 제시했지만, 아랑곳없이 주가는 2,000포인트를 넘는 괴력을 발휘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노무현 정부에 금리인상을 요구했지만, 시장이 죽는다며 이를 외면했다.

눌리고 눌렸던 시장의 본능은 마침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터졌다. 주가는 폭락하고, 금리는 오르고,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값도 폭등했다. 잠자던 한국 경제의 뇌관인 환율마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신 4고(高)시대’를 맞이한 한국 경제는 벼랑 끝에 선 신세가 됐다.

부연하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를 관장해야 할 관료들의 헛다리 짚기가 문제를 더 부풀렸다는 점이다. 정부 출범 6개월 동안 경제 살리기 정책은 온데간데없고, 촛불과 종교분란만 세종로를 가득 메웠다. 야당은 야당대로 ‘건수’를 잡았다는 식으로 대통령과 정부에 상처를 입히는 데 골몰했다. 벌써 대선 시즌이 시작된 느낌이 들 정도다.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말하지 않아도 될 환율정책에 대한 사견을 드러내면서 환투기꾼들의 먹이가 되었고, 빛바랜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에너지만 낭비하고 있다. 근본적인 로드맵은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정부는 국민세금을 줄여준다고 했지만, 통계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책이 얼마나 허구인지 금방 알아챈다. 자연 감소분에 불과한 수치 놀음일 따름이다.

기업은 또 어떤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알짜회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온통 빚을 끌어대 사들였다. 자기가 얼마나 벌 수 있는지도 가늠하지 않고 먹성만 과시하다가 급체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금리가 오르자 ‘배째라’ 식으로 나자빠졌다. 사라졌던 문어발이 다시 나타나면서 시장만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플랜트, 토목으로 돈을 벌어야 할 건설회사들은 당장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 명운을 걸다가 미분양이 속출하자 주택정책을 바꾸라고 아우성이다. 나만 살겠다는 것인지, 왜 시장 퇴출은 없는지 답답하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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