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골 점점 깊어져 여권 지지도 하락에도 큰 영향'공동운명' 인식 통해 윈윈 전략 구사해야 상생의 길 열려

여권이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한달 만에 반토막 나더니 국정 100일에 즈음해서는 20%대로 추락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민심이 이렇게 빨리 돌아선 적은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면을 전환시킬 회심의 카드나 비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정 동반자인 한나라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18대 총선에서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지지율은 30%대에 불과하고, 당 안팎에선 친이(親李)-친박(親朴) 간 불협화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黨)ㆍ정(政)ㆍ청(靑)이 엇박자를 내고 심지어 책임을 전가하는 추태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권의 난맥상은 국정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계파 간 힘겨루기에 집착하고 청와대 눈치보기에 급급한 까닭이다.

이렇게 여권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이면에는 당ㆍ청의 중추인 이명벅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불편한 동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나아가 친이-친박측의 날선 대립이 국정의 동력을 소진시키고 당내 분열을 노정시켜 국민들의 지지는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5ㆍ10 회동 후 벌어진 ‘당 대표 제의’ 진실 논란과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은 바닥권의 지지율을 더욱 끌어내리고 있다.

그래서 정가 안팎에서는 개별 국정 현안을 다루거나 당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와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4선의 홍준표 의원(서울 동대문을)은 “두 사람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손을 잡는 모습만 보여도 MB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한나라당 상임고문단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원로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대통령에게 친박 인사를 껴안고 당 화합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진정한’ 화해를 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두 사람의 신뢰회복이 최대 관건이다.

기자는 5ㆍ10 회동 직전 박 전 대표가 간간이 자문을 구하는 박정희 대통령시대 고위관료를 지낸 원로 K씨로부터 이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남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아직 거둬들이지 않고 있기 ??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예상대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은 감정의 골만 깊게 했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 회동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과 신뢰가 회복됐느냐?”는 질문에 “신뢰요?…그렇지 않아요”라며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어 돌출된 ‘당 대표 제의’논란은 다시 한번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의 불신의 간극을 확신시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학원(맨왼쪽) 최고위원이 친박의원 일괄복당을 건의하고있다.

그렇다면 이ㆍ박 두 사람의 불신의 골은 어느 정도이며 과연 메워질 수는 있는 것인가.

이 대통령측은 화해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반면, 박 전 대표측은 상대적으로 회의적이다.

박 전 대표측 원로 K씨는 “박 전 대표는 꾸밀 줄 모르고 정직한 사람이다. 이 대통령이 ‘진정성’을 보이면 화해가 가능하겠지만 여러 번의 기회를 이 대통령이 외면하거나 놓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좀처럼 이 대통령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진정성의 결여’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대표측은 지난해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깊이 패인 불신의 골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고 말한다. 당시 경선 캠프 전략가로 활동한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는 경선 승리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대의’를 우선했다. 그래서 이른바 ‘X파일’ 공개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에 담긴 이 대통령의 실체엔 적잖이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ㆍ박 갈등은 경선 후 더욱 벌어졌다고 말한다. 경선 후 9월 17일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은 ‘협력’을 얘기했지만 며칠 뒤 양측은 시도위원장 경선에서 멱살잡이를 벌였다. 작년 12월29일 두 번째 만남에선 총선 공천 시기를 놓고 두 사람이 상반된 주장을 공개해 얼굴을 붉혔다.

총선 공천을 앞둔 1월23일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원칙과 기준에 따른 공천’을 얘기했지만 두달 뒤 공천 결과에 박 전 대표는 “속았다”며 분노를 나타냈다. 지난 10일 회동에서도 친박인사 복당 문제와 검찰의 친박연대 수사, 당 대표 제안을 두고도 서로 다른 말을 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대통령이 매번 약속을 어겼다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박 전 대표측 원로 K씨는 “박 전대표는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흐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박 전 대표를 초청한 것이나 올 초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차관보가 이 대통령에 앞서 박 전 대표를 먼저 만난 이유를 아는가. 그만큼 세계가 박 전 대표를 주목하고 있고 박 전 대표는 세계의 높은 수준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얘기도 듣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국내 문제, 또는 단순히 감정상의 불신 때문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이 전 대통령측은 박 전 대표의 행보가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박 전 대표가 원칙을 강조하고 당을 위한다고 하지만 친박계 중심의 게파정치를 하려 한다고 판단한다. 또한 이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도 진정으로 잡아주기보다는 제스처만 취하고

이 대통령과 MB정부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효과를 얻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심하게는 “지나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박 전대표가 이 대통령과 당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이냐”반문한다. 한 친이계 중진은 “박 전 대표가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5월 시한으로 못박은 것은 한 쪽을 굴복시키고 계파의 영웅이 되겠다는 것으로 그런 자세로는 신뢰회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쯤되면 이ㆍ박 두 사람은 물론 친이-친박계의 화학적 결합은 어려울 듯하다. 결국 실마리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에게 달렸다.

이와 관련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두 사람의 신뢰회복의 해법으로 인식의 대전환을 제시한다. 즉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탈여의도 정치`의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되며, 박 전대표를 포함한 비주류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자신의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제로섬 게임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한나라당에 있는 이상 이 대통령과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통령은 13일, 당 상임고문단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며 친박측에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