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신세계 회장 1위… LG家는 수적 우세, 현대家는 가뭄에 콩 나듯 적어

정몽구(현대차그룹 회장), 정몽준(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 이건희(삼성그룹 잔 회장), 구본무(LG그룹 회장), 이수영(동양제철화학그룹 회장), 허창수(GS그룹 회장)….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그룹의 오너이자 주식 부호들이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 재산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5월말 현재 정몽구 회장은 3조1,594억여 원, 정몽준 고문은 3조787억여 원, 이건희 전 회장은 2조2,207억여 원에 달하는 상장기업 주식을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본무 회장, 이수영 회장, 허창수 회장 등이 보유한 상장기업 주식 평가액도 모두 1조 원을 넘었다.

남성들에게 다소 가려 있지만 여성들 중에도 엄청난 재산을 자랑하는 주식 부호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대다수는 재벌 및 대기업 총수의 가족으로서 증여 또는 상속을 받아 손쉽게 부를 형성했지만, 더러는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보유주식 가치를 스스로 끌어올리는 여장부들도 눈에 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주식 부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의 재산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최근 재벌닷컴이 집계한 ‘상장사 100대 여성 주식부자’ 리스트에는 그 면면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1위에 오른 인물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다. 이 회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6월17일 종가 기준으로 무려 1조7,325억여 원에 달했다. 다른 여성 부자들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재산 규모다.

2위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다. 홍 씨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7,451억여 원이었다. 이건희 전 회장의 한 살 아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홍 씨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다. 범 삼성가(家)의 시누이와 올케가 나란히 국내 여성 주식부호 1, 2위를 차지한 셈이다.

3위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 김영식 씨가 차지했다. 김 씨의 평가액은 5,515억여 원에 이르렀다. 이어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가 2,675억여 원으로 4위에 올랐다. 정 상무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이다.

5위 자리에는 다소 의외의 인물이 올랐다. 부산 소재 금속제품 제조업체인 태웅의 허용도 대표이사 부인 박판연 씨가 주인공이다. 박 씨의 평가액은 2,183억여 원이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태웅은 2008년 ‘대한민국 코스닥 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최근 주목받는 기업이다.

6위는 1,931억여 원의 평가액을 기록한 이화경 롸이즈온 대표이사의 몫이었다. 이 대표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7위에는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의 부인 구미정 씨가 이름을 올렸다. 구 씨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딸이다. 구 씨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1,694억여 원이었다.

여성 주식부호 ‘톱10’의 나머지 세 자리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1,537억여 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녀 김주원 씨(1,436억여 원),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1,417억여 원)이 차례대로 8, 9, 10위를 차지했다. 김 이사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다.

여성 주식부호 순위를 매길 때 빠뜨려서는 안 될 변수가 있다. 비상장기업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 국내 재벌들은 ‘알짜’ 비상장 계열사를 상당수 거느리고 있다. 그 계열사 지분의 상당 부분이 오너 일가의 몫임은 자명하다. 결국 비상장기업 보유주식을 합산해야 전체적인 주식재산 규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상장기업 지분을 반영하면 여성 주식부호 상위 판도가 확 달라진다. 재벌닷컴이 자산총액 순위 500대 비상장기업의 2007 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토대로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4명의 여성이 1,000억 원 이상의 비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1, 2위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두 딸이 차지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가 2,354억여 원,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가 1,905억여 원의 평가액을 각각 기록한 것. 이어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의 부인 유정현 씨가 1,487억여 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씨가 1,363억여 원의 비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비상장기업 보유주식 평가액 규모가 505억여 원으로 9위에 그쳤지만, 상장기업 보유주식을 합산한 전체 평가액은 2,042억여 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상장 및 비상장기업 보유주식 평가액을 함께 반영한 여성 주식부호 순위는 어떻게 나타날까.

우선 1~4위는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이부진 상무가 단숨에 5위로 치고 올라간다. 이어 박판연 씨가 6위로 밀리고, 그 다음 7위에는 신영자 부사장이 자리한다. 이화경 대표는 8위로 두 계단 내려가고, 이서현 상무보가 9위를 차지했다. 구미정 씨는 7위에서 10위로 세 계단 밀려나지만 간신히 ‘톱10’에 턱걸이했다.

재배열된 순위를 살펴보면 여성 주식부호 10위 안에 범 삼성가의 여인들이 5명이나 포함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진다. 다른 재벌가도 여성 가족들에게 많은 주식을 물려주지만 한국 1위 재벌 삼성 앞에서는 역부족인 셈이다.

범 LG가의 경우 10위 안에는 구본무 회장 부인 김영식 씨만 이름을 올렸지만 상위권에 다수의 여성 주식부자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외손녀 김선혜 씨, 구본무 회장의 장녀 구연경 씨,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녀 구훤미 씨 등은 모두 1,000억 원대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자손이 많은 가문이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 주식부자의 숫자도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범 현대가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1,289억여 원) 외에는 여성 주식부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 때부터 내려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집안 전통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