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1개월이 지났다. 그 바로 하루 전인 10일, 지금은 한나라당 의원인 김장수 전 국방장관은 지난해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마주했던 김일철 인민무력 부장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해 11월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마주하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당시 남과 북의 군 최고대표로 만나 서로를 ‘장수장관’, ‘인민무력부장 선생’이라 칭하며 마음을 열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고 간 시간이었습니다. 인민무력부장 선생, 지금 이 순간 중국은 세계화합의 기치아래 스포츠제전 올림픽을 통해 웅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반대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금강산 총격사건이 남북관계의 진화적 발전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남북간의 골이 너무 깊었지만 우리는 그 아픔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이제는 화해와 상생의 토대를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의 금강산 총격사건이 그 시대정신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이번 사건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북의 입장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군부임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인민무력부장 선생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입니다.>>

김 의원은 제안했다. ▦북측 군부의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 표명 ▦남북군사협의기구 정상가동 이었다.(동아일보 8월10일자) 물론 김인철 인민무력 부장의 답신은 없었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12일 박왕자씨의 사망 시간을 추정 발표했다. “피해자 박씨는 7월11일 오전 5시 15분쯤 경계 펜스를 통과해 직선거리 200m 지점에서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다”였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한 어떤 반론도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건국 60주년, 집권 3기를 맞아 군 부대를 찾으며 군인들의 내무생활 개선 모습을 둘러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테러국 지원 명단 해제가 이뤄져야 하는 8월11일이 지났어도, 금강산 사건 발생 1개월이 지났어도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다. 그는 아직도 선군 정치의 마스터인가?

그는 아직도 일부 인민에게는 존경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11일 12년 만에 북한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여자 역도 63kg급 박현숙(23)은 수상 직후 말했다. “위대한 장군님이 경기를 지켜본다는 생각에 마지막 순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1999년 8월29일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34)은 말했다. “결승 지점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어서 오라’고 불러주시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 그녀에게는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공화국 영웅’ 칭호가 주어졌다.

과연 김정일 장군님은 건재한 것일까.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지난 7월 ‘평양의 이방인’(원제목은 ‘고려호텔의 시체’, 2006년 12월 나옴)을 낸 가명의 미국 정보요원 출신 소설가 제임스 처치는 지난해 10월 ‘숨겨진 달’(Hidden Moon)을 냈다. ‘평양이나....’ ‘숨겨진....’에는 ‘장군님’, ‘친애하는’, ‘위대한’ 김위원장에 대해서는 한 줄도 표현이 없다.

처치는 1970년대부터 20년 이상 한국, 북한 등에서 ‘서방 정보요원’으로 지냈으며 현재도 요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 인민보안성 수사관 오(O)를 중심으로 스릴러 소설을 썼다. 그는 주인공 오를 통해 북한의 오늘을 견디는 오 수사관 같은 독립혁명 투사의 3세대가 보는 북한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등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를 요약한다.

<<나도 한때 정보기관의 분석가였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도 많다. 그러나 분석가, 학자들은 이데올로기나 도덕적 관념에서 북한을 엄중히 보려고 한다. 그러나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는 이런 제약이 필요 없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오 수사관의 세계라는 것은 결국 범죄를 다루는 것이다. 북한에는 ‘주체사상’ ‘김일성 부자 숭배’ 등 이념과 도덕만 있는 게 아니다. 군과 내무성, 지방인민위원회와 중앙, 노동당과 내각 등 각종 분쟁이 있다. 파벌도 있고 부패도 있다. 남북과 길이 트이면서 군부와 내각, 그들이 ‘중앙’으로 부르는 국방위원장 그늘과의 권력 투쟁도 있다. 은행에서 일어난 실크양말 복면을 쓴 외국은행 강도사건을 둘러싼 범죄를 추적하면 그 사회의 실상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을 쓰게 됐다.>>

소설의 주인공 오 수사관은 소설 속에서 독백했다. <<우리가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옳지 않다.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싫어한다. 우리 마음의 저변에는 “우리는 작고, 흔들리고, 굽신거리고, 복종적이고, 얻어맞은 비실거리는 개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외국인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편애를 받고 싶고, 그들에게 굽신거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오 수사관은 서방과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해외근무를 한 정보요원이기도 했다. 그는 “잊어 버린다”는 것이 북한 정치에서 살아가는 방법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의는 그런 것이 아니며, 인간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김정일 북방위원장은 제임스 처치의 ‘고려 호텔의 시체’, ‘숨겨진 달’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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