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차별성 고민 없이 대부분 간판 정리 등 외형에 치우쳐

‘디자인 코리아’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되어 있다. 도시환경에 디자인을 씌우는 유행이 국가적 차원의 정책 과제로까지 발전된 것이다. 이미 지난 수년 전부터 각종 언론들이 ‘도시 디자인 열풍’을 경쟁적으로 다뤄 올 정도로 도시 디자인은 이미 전국화된 의제다.

새 정부가 디자인 이슈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이러한 열풍에 뒤진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국가적 힘을 실어 한국도시의 모습을 바꾸어보자는 뜻은 유의미한 것이다.

한국도시들은 그간 나라 전체가 겪은 빠른 외형적 성장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도시로 표현되는 한국의 오랜 역사성은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지워졌고 생존을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얼기설기 살아가는 삶의 관계는 헌 옷을 깁은 듯한 도시적 풍경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시화의 단계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도시들은 이곳저곳을 손질해야 필요성을 낳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 도시재생 등의 이름으로 도시얼굴을 바꾸는 정비사업이 여러 도시에서 봇물을 이룬 것은 이런 필요성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도시정비사업들은 부동산 개발이익에 우선하다 보니 지속가능한 21세기 도시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 디자인 열풍은 바로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일고 있다. 말하자면, 현재의 한국 도시들은 거리로부터 간판, 신호등, 건축물, 공원, 하천 등 도시환경 전반에 ‘디자인’적 요소와 기법을 끌어들여 섬세하게 다듬는 도시 디자인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펴고 있다.

디자인을 통한 도시 변신에 대한 요구는 도시를 삶터로 해서 살아가는 시민, 상인, 기업인, 관공서 모두로부터 제기되는 되는 바이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이 도시 디자인을 도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특히 단체장들이 최고의 치적으로 삼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선도적인 지자체는 역시 서울시다. 현 서울시장은 시장출마 때부터 ‘디자인 서울’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후 지금까지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행정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시는 도시디자인 분야를 총괄할 ‘디자인 서울 총괄본부’를 2007년 4월에 시장직속으로 발족했고 각 자치구에도 디자인 전담부서를 설치해 놓고 있다. 시정에서 디자인이 최우선 순위로 다루어지는 점을 인정받아 서울시는 2007년 10월 국제산업디자인단체총연합회로부터 ‘2010 세계디자인 수도’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 10월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 디자인 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국제현상을 통해 선정된 자하 하이드의 설계에 따라 건립되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들 수 있다.

서울시 외에도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 역시 디자인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간판 정비와 거리 가꾸기,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의 다양한 도시 디자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994년‘분당 신도시 건축전 모형사진’(출처 : 토지개발공사 한국주거문화 1994)
1994년'분당 신도시 건축전 모형사진'(출처 : 토지개발공사 한국주거문화 1994)

가령, 대구시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도시 디자인 정비를 전담할 시장 직속의 도시디자인총괄본부를 출범시켰고, 도시브랜드인 ‘컬러풀(colorful) 대구’, 지식자유경제도시 등의 이미지에 맞게 도시 디자인을 새롭게 바꿔가고자 한다. 부산시는 ‘바다도시’로서 부산의 개성적 이미지를 색채로 표현하기 위해 ‘도시색채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 용역결과에 의거해 부산시는 ‘부산의 색’과 이와 조화를 이루는 ‘지역별 색’을 정한 뒤 그에 맞춰 건물 외벽과 주택지붕, 간판·표지판 등 각종 시설물의 색상을 바꾸어 갈 참이다.

이 사업을 위해 부산시는 행정부시장 직속으로 ‘도시경관기획단’을 신설했다. 대전시도 최근에 ‘경관심의위원회’를 발족해 대전의 특징을 살릴 도시경관 창출에 나섰다. 경관심의위원회는 시설물의 외관 다자인이나 형태, 색채, 야간 경관, 주변경관과의 조화, 스카이라인 등을 핵심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그 밖에도 많은 지자체들이 도시 디자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데, 2008년 전국의 지자체가 공공 디자인에 배정한 예산은 무려 3조원에 달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얻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추진성과를 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간 드러난 것으로 볼 때 지자체의 디자인 정책이 콘텐츠의 구현이나 시스템의 구축에 몰입하기보다 ‘반짝 행정’으로 불리는 캠페인성 사업에 더 치우친 감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실제 전국적으로 이는 열풍에 비해, 디자인이란 이름을 단 사업들은 대부분 간판정비, 가로시설물의 교체, 상징물의 설치 등 지엽적인 것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도시경관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종합적으로,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가는 종합적 전략과 틀 속에서 도시 디자인이 하나하나 구상되고 생산되어야 한다.

현재 도시디자인 사업은 사실 어디가나 비슷비슷하다.

말하자면,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살려내는 조건을 구현해내는 데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으며, 보인다 하더라도 그저 도식적으로 하다 보니 구현된 디자인은 때로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보면, 현 단계 도시 디자인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해당 도시의 역사성, 정체성, 차별성을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찾고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둬야 할 것이다.

현재의 도시 디자인이 외형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도시디자인은 간판이나 가로시설물을 정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민들의 공공적 삶을 살찌우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도시의 공공영역(public sphere)을 활성화하고 풍요하게 하는 방식과 수단으로 도시 디자인이 기획되고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콘텐츠의 구현과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바로 이러한 조건과 과정을 통해 구현된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현 단계 도시 디자인의 가장 큰 맹점은 관료적 개입과 절차로부터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음으로써 디자인 고유의 미학성, 창발성, 사회성 등을 올곧게 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해외의 많은 성공사례는 도시행정에서 디자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보장되고 우선될 때 디자인을 통한 도시의 변신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mrcho55@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