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의 부인이 40세의 남편과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남편은 회사원으로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다. 남편이 20세일 때 농사를 짓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37세에 결혼할 때까지 본가의 생활비와 세 동생들의 학비와 결혼 자금을 대느라 자신의 적금통장 하나 없이 헌신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부인은 남편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댁의 정신적 지주라고 했다.

반면에 부인의 친정 아버지는 돈을 벌어도 자신이 다 쓰는 등 가정 경제에 소홀하여 친정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다. 부인은 아버지의 무책임함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 가정경제에 민감한 편이다.

이들은 결혼 후 부인의 친정 아버지 명의의 건물에서 어렵게 살림을 시작하였다.

부인은 남편이 아직도 시어머니가 원하면 언제든 돈을 보내드리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 거절할 것은 거절하도록 남편에게 요구하였다. 이런 부인에 대해 시댁 식구들은 원망을 넘어서서 적대적으로 대하였다. 부인이 시댁 식구들에게 시달려도 남편은 당신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인은 시댁 방문을 거절하였고, 부부 갈등은 점점 심해져 갔다.

남편은 부인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부부관계가 악화된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또 부부의 힘든 것과 노력하는 것을 본가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요구도 끝이 없어서 자신도 오랫동안 속을 많이 끓여왔다고 했다.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더 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단지 부인이 자신과 본가 식구들에게 조금만 더 상냥해진다면 자신의 마음이 편해져서 부인에게도 좀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인은 지금껏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애써온 것을 남편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장래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남편이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부부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자신도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잘 해보자 하면서도 부인이 조금만 심하다 싶으면 이혼하자고 하니 남편의 진심을 믿기가 어려워졌다.

남편은 자신이 부족해서 집안 이야기를 남에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 몹시 부끄럽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자신이 이혼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부인의 오해라고 하였다.

하지만 치료 중에 부인에게는 말하지 않고 명절을 쇠러 남편 혼자서 시댁에 혼자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이 일로 또 싸움이 커졌다. 남편은 부인이 시댁에 가기 싫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자 다녀온 것뿐이라고 했다.

부인은 남편이 시댁에 간 것 때문에 화난 것이 아니고 그런 일들을 말도 않고 혼자서 처리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라 했으나, 남편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치료 받기를 거절하더니 급기야 얼마 후 시댁 근처로 발령을 자원하여 집을 떠나 버렸다. 부인도 이혼을 결심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면서 상담이 종결되고 말았다.

애초에 남편은 부인의 알뜰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부인은 남편의 성실함과 책임감에 끌려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부부 각자의 장점들도 일치점을 찾지 못하면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부모님을 통해서 건강한 부부 대화 방법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다. 남편은 부인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부탁을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 했고, 부부 관계가 이처럼 악화되었음에도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부인 역시 상담을 받으면서 남편의 마음을 달래고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파국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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