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하는 작업 중의 많은 부분은 부부간의 의사소통을 정리해 주는 일이다. 사소한 일로 비롯되는 싸움을 반복하는 부부들의 경우는 의사소통의 장애가 흔한 원인이 된다. 이런 경우 부부치료 작업은 부부가 하는 말을 통역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된다.

의사소통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언어로 전달되는 것과는 별도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때로는 언어적 메시지보다 비언어적 메시지가 더 정확하거나 강한 효과를 준다.

말로는 동의하지만 표정이나 몸짓으로는 거부감이 전달되는 경우다. 또 부부의 언어적 표현에는 두 사람간의 상하관계가 드러난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남편과 힘든 일을 남편에게 부탁하기를 어려워하는 아내의 관계는 분명히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언어로 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자기가 들은 대로 반응하는 배우자는 낭패에 빠지기 십상이다.

임신하여 입덧에 시달리는 신부가 직장에 있는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가 힘들어 빨래를 못하고 있으니 일찍 와서 빨래를 해달라 했다. 신랑은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들어 기분이 나쁜 상태였지만, 신부의 말대로 일찍 귀가했다.

신부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건넨 신랑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서 앞으로는 파출부를 불러 쓰자고 했다. 그러나 신부는 신랑의 그 말이 너무 서운해서 견딜 수 없었다. 신랑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어적 표현으로 보면 신부의 요구대로 빨래도 해주었고, 이런 일을 처리할 파출부를 부르면 해결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신부가 마음 속으로 바랬던 것은 빨래의 해결이 아니라, 신랑이 와서 함께 있으면서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경우를 보자. 어머니에게서 전기장판이 고장 나서 밤새 춥더라는 말을 들은 남편은 당장 전기장판을 사서 가져다 드리려 했고, 부인은 “이 밤에 어디서 사다 드린다는 말이냐?” 했다.

남편은 “24시간 운영하는 마트가 있지 않느냐?” 반문했고, 결국 부부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남편은 부인의 ‘어디서 사느냐?’라는 표현에 집중하느라, ‘이 밤에’라는 말 뜻이 ‘왜 꼭 지금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의미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들이 아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남편만의 잘못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원하는 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아내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거나, 상대가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소통 장애가 사이가 나쁜 부부에게 더 많이 일어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갈등을 겪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은 부지불식간에 진행되는 것이라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반복됨에 따라 부부는 자신들도 모르게 심한 불만을 쌓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소한 것에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흔히 젊어서 아내에게 큰소리치던 남편이 나이가 들면서 힘을 잃는다는 경우도 알고 보면 그 동안 아내의 마음에 쌓이는 억울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선 자신이 말하는 것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또 듣는 사람은 자신이 이해한 것이 정말 상대가 원하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 때에는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그러나 공격적이지 않게 말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훈련은 처음에는 상당히 부자연스럽겠지만, 서로의 표현방식이나 이해방식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의도적으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백상신경정신과 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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