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이어 온 세계문화유산 답사의 무한 감동… 작은 추억의 편린도 삶의 스승

여행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힘들고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 달콤한 꿀맛 같은 휴가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아름다운 바닷가나 호텔 수영장의 긴 의자에 누워 선텐하면서 먹고 쉬며 쇼핑하는 여행도 좋지만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나의 여행은 교과서 위주의 낡고 재미없는 역사 수업에서 벗어나고자 교실 밖 세상으로 직접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세계 문화유산을 보지도 않은 채 학생들에게 그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한다는 것이 무척 양심에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어렸을 적부터 세계 4대 문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신비로운 세계를 하나씩 탐구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문명 답사여행은 1997년부터 올해로 12년 째가 되어간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자료를 보여주기 위해 비디오카메라, 슬라이드 사진을 위한 중형 카메라를 들고 황하 문명의 중국, 인더스 문명의 파키스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리아, 이란,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문명, 마야 아스텍 문명의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잉카 문명의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을 여행하며 수집한 영상자료를 수업 시간에 활용하게 되었다. 1997년부터 kbs <세상은 넓다>와 인연이 닿아 지금까지 단골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홀로 떠난 답사 여행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2008년 1 월 말 중국 강남 지방에 50 년 만에 내린 폭설을 3 일 내내 맞으며 답사를 하고 버스와 기차가 운행을 중단되어 이동의 어려운 상황을 맞기도 하였다. 춘절(설날)을 앞두고 고향을 찾아가는 거대한 인파 속에서 13 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새치기 하는 사람들, 바가지요금을 씌우고 기다리기로 약속하고서도 뺑소니를 친 얌체 택시 기사 등,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실리만 따지는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도 컸었다.

하지만 공자의 고향 곡부에서 만난 시사(詩社)모임의 예술인들은 낯선 여행자를 따뜻하게 환대하고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태산의 호텔에서 만난 종업원 왕 밍은 한류 문화에 빠져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는데 나에게 한국어 발음 교정을 부탁하기도 했다.

문화유산을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없다면 아마 반쪽짜리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외로운 여행자에게 그들은 마음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인류애 바로 그 자체이다. 여행을 돌아와서도 그 나라를 생각하면 문화유산보다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동영상과 여행 중 겪은 에피소드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 유발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나로 인해 그들이 세계 문화를 오해와 편견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나의 여행이 갖는 전파력은 아주 대단한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 감명을 받아 이탈리아로 미술 유학을 떠난 제자, 대학에서 아랍어를 선택하여 이집트로 어학연수를 떠난 제자, 나처럼 역사를 전공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제자 등 자신들의 삶을 찾아나가는 제자들이 기특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여행은 나의 삶이자 나의 선생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은 나의 열정이며 신념이다. 여행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 속에 1년 전보다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게 되고,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가를 깨닫게 된다.

또 여행은 내가 있는 곳을 떠나서 다시 내가 있는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여행을 가면 그 곳에서 해답을 얻게 되고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 김지희

<늘을 마주하고 잉카 문명 위에 서다> <문명의 숲, 중국을 가다> 저자. 그외 <하늘과 땅과 바람의 문명 1,2>. 서울 광영여고 교사. KBS <세상은 넓다> 단골 패널.


김지희 kjih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