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서 만나는 설레는 아침들…극기훈련 같은 호스텔 생활도 소중한 기억

나는 매일 아침 눈 뜨기 전 이불 속에서 세계여행을 한다.

슬며시 깨어나려 하는 의식을 굳이 밀어버리고 한톨 남은 잠을 붙들어 기차를 탄다. 이스탄불 항구의 짙은 노을, 암스테르담의 작은 다리들, 비엔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야경…, 이불 속의 기차는 빛의 속도로 달리며 나를 어딘가로, 또 어딘가로 데려간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마네, 모네, 드가, 피사로, 르느와르의 각각 다른 빛깔까지, 베네치아의 작고 어지러운 골목들의 각각 다른 크기와 골목이 굽은 각도와 방향까지, 그리고 결국엔 내가 아침마다 깨어난 숙소들의 창문에 쏟아져들어오던 햇살의 명도와 채도까지…, 나는 이른 아침의 단지 몇 분 동안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해 낸다.

이건 여행의 습관이다. 여행을 하고 있었던 그 때도 나는 이불 속에서 굼뜬 아침을 맞았다.

이불 밖으로 코만 내밀어 낯선 공간의 낯선 냄새를 맡고, 가는 실눈을 떠 벽지의 색깔, 천정의 높이,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의 위치를 더듬었다. 옆 침대에서는 어젯밤 늦게 들어온 여행자의 낯선 숨소리가 들리고, 위층에서는 일찍부터 짐을 챙기는 소란이 들린다. 모든 냄새와 빛과 소리들이 어제와 다르다. 그래서 여행의 아침은 늘 수상하게 설렌다.

"헤이! 밥 먹으러 가자!"

같은 숙소에 2,3일쯤 머물면 밥 먹자고 깨우는 친구도 생긴다.

그 때 우리의 '밥 먹는 일'은 '단지 그냥 밥 먹는 일'이 아니었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유럽의 여름, 나는 성당 종탑을 개조한 비엔나의 이상한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 종탑 호스텔에는 0층부터 9층까지 한 층에 8인실 방이 하나씩 있고 좁고 가파른 계단이 10개의 방문들을 아슬아슬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은 4층이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2층, 부엌은 0층(유럽식 건물은 1층이 아니라 0층부터 시작된다)에 있었다. 아침부터 우리는 모두 노틀담의 곱추처럼 하루종일 성당 종탑을 오르내린다. 에어컨도 없이 푹푹 찌는 계단을 그 많은 여행자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오르내리다보면 아침이 다 가기전에 온몸이 땀에 절어버린다.

가장 힘든 코스는 밥을 지어 먹는 것. 쌀이며 라면이며 딸기잼이며 여행자의 배낭에서 풀려나온 식량들이 어수선하게 펼쳐진 0층 부엌은 전쟁터다. 싱크대에 자리가 나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비상식량을 방에 두고왔다는 것을 깨달으면 한숨이 나온다. 특히 9층 방에 짐을 푼 여행자는 이미 10층이나 걸어내려왔는데 다시 10층을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계단에서 어깨를 스치며 만난 낯선 여행자의 얼굴에서 '너도 미치겠지? 나도 그래.'라는 표정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쿡-.' 나온다. 극기훈련을 방불케하는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종탑 속의 여행자들은 모두 그 이상한 숙소를 즐기고 있었다. 더욱이 그 숙소의 방값은 겨우 6유로로 서유럽 최저치를 기록했으므로 숙박객들은 나날이 늘어났다.

나의 유럽여행은 '숙소 여행'이었다. 어떤 도시든 여행자가 모이는 숙소에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생긴다. 나는 이상한 숙소에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에 푹 빠졌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 눈은 이미 떠졌지만 나는 부러 눈을 꾹 감는다. 여행이 지구 반대편에서 날라준 어떤 장면들 때문에 내 가슴 속에는 늘 무지개처럼 알록갈록한 강이 흐른다.

낯선 도시에서 맞았던 어느 아침의 표정, 색깔, 냄새가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평범한 아침을 설레게 한다. 여행은 나에게 느낌과 상상의 보물창고다. 하지만 한국의 아침은 바쁘다. 나는 곧 벌떡 일어나 바쁘게 달려나갈 것이다.

■ 미노

<미노의 별 볼일 있는 유럽숙소여행> 저자. 그외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컬러풀 아프리카 233+1> . SBS <진실게임><놀라운 대회 스타킹> 방송작가.


김미정 ljack9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