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떠나 메카 메디나·아카바거쳐 교역의 중심지 보스라 도착

새벽하늘.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태양의 기운이 느껴진다. 금요일 정오에 열리는 우마이야(Umayyad) 모스크의 대예배 참석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수도 다마스쿠스를 떠나 보스라(Bosra)로 향했다.

찬란한 새벽 여명너머로 어슴푸레 아침 기지개를 펴는 낙타 무리들이 보인다. 킹스하이웨이의 끝없는 사막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리 베두인 텐트들이 보인다. 그 옛날 낙타 등에 실려 예멘을 떠나 북으로 향했을 커피 행렬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오랜 세월동안 책속의 글들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왔던 커피 전파경로 중 예멘이후의 경로를 나의 발길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지난해, 커피의 고향을 찾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험준한 산악지대로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1989년부터 커피와 연하여 살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홀로 중남미.

남아시아의 여러 커피산지로, 커피문화가 발달한 유럽. 미국. 일본 등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언젠가는 커피의 고향을 찾아 아프리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지’라는 간절한 바램이 있었다. 지난해 아프리카 여행이 지닌 각별한 의미이다.

태고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카파 지역을 시작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초원을 거쳐 이슬람의 화려한 초록이 살아 숨 쉬는 랭보의 고장 하라르를 찾았다.

디르다와, 지부티를 지나 목선을 타고 눈부신 홍해를 건너 꿈에 그리던 모카항을 찾았다. 그러나 한가로이 떠있는 몇 척의 작은 배들, 뒹구는 주춧돌,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옛 건물들의 잔해는 이미 모카항이 전설의 항구가 되어버렸음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반도의 좋은 기후 탓에 녹색 예멘이라 말하던 행운의 아라비아는 과거로 묻혀버렸다. 근사한 바닷가 커피집 테라스에서 모카항을 바라보며 진하디 진한 모카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던 간절한 소망을 황망히 날아가 버리게 했던 멀건 모카커피 한 잔. 커피의 역사와 숨결이 배어있는 모카항 유일의 커피집에서 오리지널 모카커피를 마시며 씁쓸해했던 그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커피는 15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16세기 초반, 커피가 지닌 각성작용에 대한 종교적 논란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슬람의 음료가 되어 커피 카라반 행렬은 시작되었고, 기독교 사회에서는 16세기 후반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되었다.

예멘의 수도 사나(Sanaa) 서부 산악지대에서 재배된 커피를 실은 낙타 카라반은 메카, 메디나, 아카바를 거쳐 교역의 중심지 보스라에 닫게 된다.

팔미라 유적, 베두인과 커피(위)
커피 공장, 쑤끄가 보이는 옛 시가지(아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남쪽으로 140킬로미터 떨어진 보스라는 그 옛날 메카와 다마스카스를 잇는 카라반 교역의 중심지답게 사통팔달의 도로가 교차하고 있다. 사막 한 가운데의 오아시스가 가까워짐을 알리듯 부쩍 초록빛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보스라는 비옥한 토질, 풍부한 수량, 그리고 수도 다마스쿠스의 근교라는 이점 덕에 옛 교역의 중심지에서 이제는 근교농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게다가 굽이굽이 돌아가는 옛 킹스 하이웨이를 대신해 새로 난 곧게 뻗은 도로가 생기면서 곳곳에 활력이 넘쳐 난다.

시내 중심가로 들어섰다. 찬란했던 문명의 현장 로마원형극장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버티고 있다. 잘 다듬어진 대리석 광장으로 한적한 발걸음을 내딛어보지만 옛 영화는 어디에도 흔적조차 없다.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다마스쿠스와는 달리 적막하기까지 하다. 며칠전 그 신비로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팔미라의 원형극장과 크게 대비된다. 고대 유적의 보고 팔미라 원형극장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말에 솔깃해 극장 안을 먼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옛 시가지를 먼저 봐야 된다는 생각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색창연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레스토랑이라는 간판을 한 허름한 상점들이 줄지어있다. 모처럼 보이는 관광객이라 그런지 콜라 한잔 마시고 가라며 싱거운 미소를 보낸다. 구석으로 구불구불한 돌담길이 나 있다. 키 작은 야자나무 몇 그루와 뒹굴어 다니는 비닐봉지가 안내판을 대신하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 야트막한 언덕에 올랐다. 순간 눈앞에 눈부신 장관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폐허가 빚어낸 걸작품에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아 진정 이곳이 그 먼 고난의 사막 길을 건너와 잠시 쉬고는 다음날이면 다시 메카로 돌아가던 그 곳 보스라 옛 시가지란 말인가.

커피에 있어 보스라는 다른 산물과는 다른 깊은 인연이 있지 않은가. 예멘을 떠난 커피가 북으로 북으로 향하다 메카를 거쳐 아카바에 잠시 머물다 어떤 것은 서쪽 알렉산드리아로, 다른 어떤 것은 이곳 보스라로 오게 되어 결국에는 저 먼 터키의 이스탄불로 향하게 되지 않는가.

카라반 상인들과 같이 호흡하려 애쓴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보지만 감격에 겨워 제대로 찍히지를 않는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구석구석 펼쳐진 수천의 모습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진 풍파에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아치형의 기념비와 문, 로마식 목욕탕과 오마르사원 바히라 교회, 바실리카, 줄지어선 코린트양식의 기둥들...... 빛바랜 석축에 부딪히는 햇살이 너무나도 맑다. 깊게 골이 패인 벽면은 오늘날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불가능하리라

. 작은 시가지 안은 종교적 분위기가 곳곳에 묻어난다. 종교가 일상생활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의 정신세계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듯하다.

쑤끄의 점포는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대개 두어 평이 채 안 되는 크기로 얕은 처마를 하고 있으며 비바람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견고히 지어져 있다.

아랍식 커피(위), 커피와 사람(아래)

자연스레 구획이 정해져 한쪽에서는 향료를, 다른 한쪽에서는 장신구를 파는 등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제법 넓지막하다. 혹시 한쪽 귀퉁이에라도 남아있지는 않을까하며 커피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더 이상 목욕탕이며 교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바닥에 울퉁불퉁 투박한 돌조각들이 깔려있다. 돌 조각이라기보다는 작은 바위 덩어리들이라 해야 할 만큼 크고 단단하다. 해는 중천에 떠있어 돌바닥은 뜨거워지고 있다. 절로 그늘을 찾게 된다. 며칠전 베두인 텐트에서 보았던 커피도구들이 남겼음직한 불에 그슬린 자국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를 뒤집어 본다.

어디를 둘러봐도 커피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마치 숨겨둔 보물을 잃어버린 듯 상심감이 밀려든다. 아침 일찍 들어왔던 입구 쪽에는 어느새 오색찬란한 장식용 접시며 카펫 조각들을 파는 작은 현대판 쑤끄가 들어서 있다.

오가는 손님은 없지만 나이어린 상점 주인은 분주하기만 하다. 그럴싸하게 차려진 돌바닥 위 진열대를 보며 애써 그 옛날을 더듬어본다. 다시 뒤를 돌아 옛 시가지를 쳐다본다.

역사 속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이미 거대한 원형극장은 내 관심 밖이 되어 버렸다. 다시 오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아 원현극장 안은 생전에 보지 못할 테지만, 차라리 한잔 뜨거운 커피가 간절했다.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했던 고대 로마가 남긴 오락시설 가운데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원형극장이자, 높이 5m의 성벽 덕에 2번에 걸친 십자군의 공격도 굳건히 견뎌낸 의미심장한 이 곳 원형극장 둘러보기를 포기한 채 가장 오래된 커피점이 어딜까 하고 두리번거린다.

이 두리번거림은 어쩌면 병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덕에,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커피 한잔을 마신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커피 여행> 저자


박종만 drmahn@wndco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