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부부 간의 사랑과 친밀감이 강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근세까지는 동서를 막론하고 가정의 의미를 혈연의 유지와 가문의 번창에 두었고, 부부관계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의 부정적인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과거에는 중년기까지는 남편이 아내에게 군림하였다가, 노년기가 되면 아내의 결정권이 늘어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부부간의 힘의 균형을 맞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부부의 우애와 가정의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없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남녀의 평등이 인정되는 현대에는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고, 이를 위해서는 원만한 부부 관계를 토대로 하는 가정의 안정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경제력의 상승을 들 수 있다. 현대에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남녀의 차이가 생물학적 성별 이외에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가정 외에서 여성의 활동 영역이 늘어감에 따라서 여성이 자녀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또 배우자의 선택 방식이 가문의 번영을 목적으로 한 중매혼으로부터 결혼 당사자의 선택에 의한 연애결혼으로 바뀌었다. 핵가족화가 대세가 되어감에 따라서 부부의 정서적 유대가 강조되며, 여성들이 결혼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이제 부인의 권리를 존중할 줄 모르는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실질적인 권위를 존중 받지 못한다. 그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정서적 별거부터 실제 이혼까지 이르게 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상대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남성이 가정 중심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그 개인의 성격 탓만은 아니다. 모든 사회는 오랫동안 생존과 성취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도록 남성을 훈련시켜 왔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국가나 회사 같은 집단의 목표를 개인과 가족의 목표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여기는 습성이 남아있다. 우리도 과거 불안정한 시기에는 남성의 이러한 특성 덕분에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사회가 안정되어감에 따라 남성의 위기상황 대처능력이 덜 중요해졌다.

이제는 남녀의 역할 분담이 과거보다 덜 엄격해지면서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되었고 가정 내에서는 남성의 역할 참여가 자연스럽게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남성들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직업적 역할 외에도 가족 개개인의 복지와 행복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만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집단주의에 익숙한 남성들은 억울할 지도 모르겠으나, 사회의 안정과 가정의 복지를 추구하는 세계적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남편이 잘 부응하는 경우에 부부의 상호 만족도가 높고 가족의 심리적, 경제적 및 신체적 행복지수가 높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이런 가정은 부부 불화가 지속되는 가정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경우가 많으며 그 가족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낮다. 친밀한 부부는 그 자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 대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질서를 통해 가문의 영광을 지키려 했을 때에는, 불가피하게 여성을 희생시켜야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친밀한 부부 관계를 토대로 가정의 안정을 추구하면서 희생자 없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박수룡 www.npspecial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