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아이리버 신화 레인콤 '산업스파이' 논란레인콤 경영권 장악 보고펀드와 에이트리의 진실 게임

<레인콤 공동설립자 ‘친정기술’ 빼내려다 덜미> 한국경제, YTN, <아이리버 공동 설립자, 기술 빼돌려 새 회사 차려> SBS. 지난 8일 각 언론이 내보낸 이래환 에이트리 대표이사의 구속기사 제목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래환 에이트리 대표는 아이리버 신화창조의 주역에서 희대의 ‘배신자’내지는 ‘산업 스파이’로 낙인 찍힌 셈이다.

법의 판단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래환 대표와 에이트리는 사회적 ‘낙인’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레인콤이 거쳐온 지난 역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는 아직 섣부른 예단일 수 있다.

의혹1. 레인콤은 왜 2년이 지나서야 에이트리 수사를 의뢰했나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 8일, 레인콤 전자제품 제조기술을 도용해 동종 업체를 차려 영업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에이트리 이래환 대표를 구속하고 직원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06년 8월 레인콤에서 퇴사해 에이트리를 설립한 이래환 대표가 레인콤 전직원 9명을 고용해 레인콤 전자사전, MP3플레이어와 유사한 제품을 개발, 판매했다는 게 혐의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래환 에이트리 대표가 레인콤 사업권의 일부를 양도받은 시점은 지난 2006년 8월께로 레인콤은 2년여가 지난 시점에 수사를 의뢰했다. 레인콤 측의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에이트리측은 “에이트리가 부상하는 데 대한 (레인콤의)‘견제’ 내지는 ‘시샘’으로 본다”고 말했다. 에이트리는 최근 전자사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대폭 늘려왔다. 전자사전 ‘아이리버 딕플’로 샤프와 경쟁하는 레인콤에는 ‘눈엣가시’인 셈이다. 아이리버의 작년 매출액은 1000억원대로 2004년에 비해 1/4 이상 급감한 상태다.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2006년 8월께 레인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때, 레인콤과 웨이브스퀘어(이래환 대표가 창업을 위해 설립해 둔 법인)가 맺은 ‘사업양수도 계약서’에는 레인콤이 당시 개발중이던 전자사전 G10 사업권을 웨이브스퀘어에 양도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돼있다. 당시 시장이 열리지 않아 사업성이 없던 전자사전 사업부였던 레인콤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 대부분이 이 대표를 따라 에이트리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 시점과 일치한다.

그러나, 경찰은 “G10 사업권을 양도했을 뿐이지 소스코드 사용까지 허락한 것은 아닌데 이를 사용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진정서를 제출한 레인콤의 혐의사실을 대부분 인정해 사건을 검찰로 넘긴 상태다.

계약의 ‘당사자’가 실질적으로 바뀐 것 역시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유가 됐다. 2006년 8월 계약 당시 주체는 레인콤과 웨이브스퀘어 법인이다. 웨이브스퀘어 법인의 대표는 이래환 씨이지만, 상대인 레인콤 법인의 대표는 이명우 씨로 바뀐 상태다. 레인콤의 최대주주는 지난 2007년 2월을 기점으로 보고펀드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레인콤의 한 관계자는 “경찰 수사의뢰 전에도 에이트리 측에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내 레인콤의 소스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의혹2. 레인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래환 대표가 받은 약속은 어디까지인가

경찰은 레인콤과 (당시 이래환 대표가 설립할) 회사가 2006년 8월 맺은 ‘확약서’ 내용상으로 “(당시 이래환 대표가 설립할)회사가 MP3플레이어 단품 이외의 제품은 생산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MP3P 기능만 있는 제품은 안되지만 MP3P 기능이 들어간 디지털 제품은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레인콤 입장은 역시 “소스 사용까지 허락한 것은 아닌데 이를 어기고 우리의 소스를 사용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안도 레인콤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이래환 대표를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에이트리 측은 “레인콤 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것은 올해 3~4월이다”라며 “2007년까지 우호적인 관계였다가 갑자기 문제삼기 시작한 것은 레인콤의 새 경영진들이 에이트리가 두각을 나타내자 이를 견제하려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확약서 내용상 ‘안된다’는 말은 없어 MP3플레이어를 제외한 MP3기능이 들어간 제품은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정황’ 역시 새롭게 밝혀졌다. ‘인간 있는 경영’을 했던 당시 레인콤 경영진은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2006년 8월을 전후해 간부들에게 ‘먹고 살길’을 열어주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인콤 간부였던 S씨는 ‘아이리버’ B급제품의 유통권 일부를 받아 회사를 창업한 바 있다. 다른 레인콤 간부 Y씨는 이후 레인콤의 한 관계사를 인수했다. 사업권 일부를 받은 것은 이래환 대표뿐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최소한의 보장인 문서 외에 이 대표가 레인콤 경영진과 어디까지 사업권을 나누는 데 합의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리버 전자사전(좌) 에이트리 전자사전(우)

검찰조사 끝나면 진실 밝혀질까

사건 당사자인 레인콤 사측은 대표와 부대표 인터뷰 거부는 물론, 내부 대책회의까지 열어 ‘입 단속’을 하는 왜곡된 언론관을 보였다. 최소한의 정보 공개를 통해 주식회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는 커녕 소액 주주들의 ‘알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듯한 태도다. 에이트리 사 역시 검찰 수사 중임을 이유로 들어 취재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들은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문제는 경찰과 검찰의 조사가 끝난 시점에서도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당시 실제 논의 내용과 최소한의 보장에 불과한 문서의 해석에서 오는 차이를 고려했나’라는 질문에 경찰은 “레인콤의 진정내용 외에는 수사대상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검찰 역시 경찰의 조서 내용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는 레인콤과 에이트리측의 합의가능성을 예상해 보도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자가 합의해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이상 수사와 재판은 계속된다.

보도시 검찰이 형량을 더 크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만약, 검찰이 보도를 이유로 피의자에게 더 큰 형을 부과한다면 이는 기소권 남용이자 국민의 알권리 침해다.

레인콤과 에이트리가 법적 갈등을 시작한 것은 보고펀드가 레인콤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2008년 3월 이후다. 레인콤과 에이트리의 갈등 이면에 보고펀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경제학자들의 경고와 같이 펀드를 비롯한 ‘주주 자본주의’는 경영에서 손익계산을 따질 뿐 ‘인간’을 거의 고려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레인콤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보고펀드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창업초기부터 유지해왔던 ‘인간 경영’이 손익논리에 의해 위협받아 에이트리와의 법적 갈등으로 불거졌다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에이리트 측과 레인콤의 경영권을 장악한 보고펀드의 ‘진실게임’결과에 따라 이래환 대표에게 낙인 찍힌 ‘주홍글씨’의 흔적도 달라질 전망이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