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나무 자생지는 일본 아닌 우리나라

부드러운 봄 바람이었건만 마지막 남은 벚꽃 꽃잎은 여지없이 흩날린다. 벚나무를 보면 많이 공부하여 알아낼 일도, 그 눈부신 개화와 장렬한 낙화를 보며 느낄 일도, 더불어 할 일도 아주 많은 듯 하여 매번 대단한 결심으로 벼르기만 하다가 계절을 보내버린다. 올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이렇게 벚나무 생각을 놓치 못하여 절절매고 있다.

우선 공부해야 하는 것은 수많은 벚나무집안 식구들을 제대로 구별해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벚나무를 비롯하여 산벚나무, 왕벚나무, 개벚나무, 올벚나무, 섬벚나무 등등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자란다.

하지만 산에서 피는 벚나무종류들은 하나같이 나무들이 높고, 개화가 너무 순식간이어서 제때를 놓치기가 십상이고 주변에 개량된 품종들이 많이 심겨져 있어 제대로 이름붙여 부르는 일을 난 아직도 어렵게 생각한다.

더욱 깊이 해야 하는 공부는 일본인들이 깊이 사랑하고 그 나라를 상징한다 여겨 전 세계에 심고 있는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라는 점인데 아직 그 문제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자신있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처음 판 곳이 소메이라는 곳에 있던 꽃묘목 파는 곳이어서 이 나무가 여기서 인위적으로 만든 원예품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908년 한국에 와 있던 다께라는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왕벚나무를 발견하였고 이어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에 의해 세계에 정식 학명이 등록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일본이 아닌 우리꽃이라고 하기엔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

느낌으로 치면 내게는 개화보다는 낙화가 훨씬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 연분홍빛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는 풍광속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쓸쓸함은 이 나이가 되도록, 매번 경험을 해도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격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매번 벚꽃이 필 즈음이면 무엇인가 해보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유명하다는 군항제나 쌍계사 벚꽃 십리길은 아니더라도 이젠 이곳저곳에 때맞추어 할 수 있는 벚꽃 길은 얼마든지 많다. 몇 해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남산의 산책길을 걸었던 기억이 새로워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지만 번번이 때를 놓친다.

지난해는 동료들과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벚나무 아래서 낙화주 한잔 함께 하자고 벼루었으나 갑작스레 생긴 일정으로 무산 되엇고 올해에는 꽃구경은 사람에 치이면 그 멋이 덜하니 이른 아침 서울대공원 벚나무 길을 겉다가 차한잔 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열면 가장 먼저 들어가자는 제법 멋진 구상을 했으나 이 또한 놓친 듯 하다.

사실 벚나무에는 이러저런 사연이 생각보다 많다.

앞에서 언급한 논란이 아니더라도 벚나무집안 나무들의 줄기는 목재로는 활을 만들고 그 껍질은 벚겨 활을 감아 아프지 않게 할 수 있는 좋은 나무여서 인종때 병자호란을 겪고 더욱이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치욕을 겪었던 효종이 국력을 키우려고 우이동 어딘가에 수양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여 여러 사람이 찾아 그 뜻을 다시 생각하려 했으나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화엄사 근처 암자옆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올벚나무 역시 화엄사에 계시던 벽암스님이 효종에 뜻에 깊이 동감하고 절 근처에 많은 나무를 심었던 것이 님은 것이라 하는 설득력있게 들리긴 한다. 산벚나무는 팔만대장경을 만든 나무의 하나라고 알려지고, 벚나무의 열매 버찌를 개량한 것이 바로 체리이고 약으로도 쓰이고 …

왕벚나무가 자생지를 우리나라에 두고도 일본의 나무로 여겨지 것을 막연히 억울해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자라는 나무하나 풀 하나에도 의미를 가지고 귀히 바라보면 문화로 역사로 자랑으로 키워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는 벚나무에 대한 감상으로 시작했으나 어느덧 비장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