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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전복성' 노린 장르의 비빔밥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본 코헨형제 작품의 비밀
정석과 파격을 넘나드는 독창성… 열광적 지지와 악의적 비판 엇갈려
히치콕과 견줄 만한 절묘한 편집으로 스릴러·코미디 등 믹스 앤 매치










감독에 대한 관객의 기억은 천차만별이다.

논쟁적인 386세대 관객에게 코헨은 <바톤핑크>(1991)나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이라는 기이한 영화를 만든 문제적 감독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며, 영화를 유희적으로 대하는 30대 관객이라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0),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2001)를 만든 괴짜 감독으로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20대의 한국 주력 관객들에게 코헨이라는 이름은 영화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생경하고 낡은 이름이다.

하지만 관객의 기억과는 별개로 그들은 1984년 전설적인 영화 <분노의 저격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8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숨가쁘게 필모그라피 작성에 몰두해왔다.

미국에서 20년 이상 영화감독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 변함없는 관객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일정한 작품성을 유지하여 거장의 반열에 서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코헨 형제는 대중성과 작품성 양쪽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드문 감독임에 분명하다.

그들은 뉴욕에서 <분노의 저격자>를 조용히 개봉하여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단숨에 무서운 신예의 자리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한 편의 영화로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이벤트였다는 사실이 불과 몇 년 후에 드러났다.

그들은 <바톤 핑크>(Barton Fink)와 <아리조나 유괴 사건>(Raising Arizona) 같은 비중있는 문제작들을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관객들은 새로운 신인 감독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 영화역사상 가장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기대하는 설레임으로 그들의 영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형제의 작업 공조는 처음에 역할 분담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공동 감독 시스템으로 안착해갔다. 처음에는 형 조엘은 감독에 전념했으며 동생 에단은 제작에 보다 신경을 썼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가 확장되고 코헨식 독창성에 보다 공을 들이게 되면서 두 사람이 공동감독으로 참여하여 코헨형제의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그들의 영화는 너무나 많은 호의적인 평가와 악의적인 폄하의 세례를 장대비처럼 받아왔다.

분명 그들의 영화에는 코헨표라는 상표를 붙일 수 있는 독창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영화의 정석과 파격의 담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장르영화이지만 장르영화의 관습을 벗어버리고 서로 이질적인 장르를 뒤섞기도 하고 기대를 져버리는 번복적인 장면과 상황이 연출된다, 이 지점에서 코헨의 지지 세력은 열광하며 장르에 익숙한 게으른 관객들은 적극적인 해독에 참여를 귀찮아하면서 이탈한다. 또 하나는 히치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정교한 편집의 정수를 보여준다.

히치콕은 영국시절에 미국영화사의 자막넣는 일을 하면서 편집에 대한 감각을 몸에 익혔다. 히치콕 영화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의존도가 5할이라면 5할은 편집의 힘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히치콕의 편집은 한 프레임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딱 떨어진 편집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코헨의 영화도 인물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는 교차편집과 도망자와 쫓는 자의 긴박감을 편집의 힘으로 밀어올리는 장기를 지니고 있다.

그들도 편집기사일에서 영화를 시작하여 영화에서 편집의 마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코헨은‘영화 구성의 너트와 볼트와 같은 기초적인 것은 편집일을 하면서 습득하였으며 시나리오 해석과 촬영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편집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두 가지의 장점이 코헨의 영화를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영화에 대한 실마리는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추격드라마와 스릴러와 코미디를 뒤섞은 코헨식 장르 비빕밥영화다. 이 영화는 <파고>와도 닮았으며 드 팔마의 잔혹함도 인용하면서 미국 서부영화의배경과 정신도 일정부분 급유한 코헨식 영화의 교집합을 보여준다.

<파고Far go>(1996)는 장인의 재산을 노려 아내의 유괴를 계획하는 남자와 이를 직업적으로 실행하는 청부업자와 이들을 쫓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초라한 이력이 전부인 여자 경관의 이야기가 꼭지점으로 달려간다.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추적의 드라마와 느와르적 분위기와 공익을 위해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주인공의 신념이 비빔밥처럼 잘 섞여있다.

이미 말 한 바 대로 코헨 형제의 특징은 장르와 영화의 룰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들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반하여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전복성으로 집약된다. 이것은 우연의 산물이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도달한 창조적 전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적 전략을 명료하게 밝힌 바 있다. 그들은 “훌륭한 감독은 기본 규칙에 대해 알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감독들은 그 기본을 열심히 찾는다. 그러나 그 규칙을 따르면 영화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기본은 잘 알지만 그것의 준수가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기 때문에 창조적 전복을 시도한다는 말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어떤 공간과 어떤 장르를 선택하느냐 문제를 떠나서 코헨식 낙인을 영화 곳곳에 발자국처럼 남겨두는 독창성으로 귀결된 것 같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사소한 추격드라마의 서사를 채택했지만 편집과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순식간에 코헨표 영화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우연히 습득한 돈가방을 들고 도망자 신세가 되는 남자와 이를 처치하려는 슬픔도 기쁨도 삭제된 표정을 소유한 냉혹한 킬러와 이를 저지하려는 보안관의 이야기가 층을 이루면서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현실에 잠복되어있는, 너무나 선진적이라는 시스템의 균열 속에 보여진 폭력의 뇌관을 꺼내서 보여준다.

이는 아주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가르고 내장을 꺼내는 일처럼 충격적이며 또한 명품 정작을 입은 잘생긴 사내가 노상방뇨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당혹스런 현실의 맨얼굴을 대면시키는 일과 닮았다. 그들은 삶은 비극적이고 부조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웃기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영화가 염세적이거나 비관의 색채로 채워져 있지만 여백이 있다. 그 여백은 삶의, 혹은 희망의 환풍구이며 그것은 쓰디쓴 유머와 삶의 표면이 아닌 속살의 아픔을 보여주는 진정성의 발원지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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