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가창력, 흡입력, 철저한 자기관리로 최정상 인기몰이70~80억 제작비 투입 전국·해외 22개도시에서 기념 공연

국민가수 조용필이 24일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파워 100인이 꼽은 최고의 스타’, ‘음악전문가 20인이 선정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조용필은 여전히 공연마다 수만 명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국내 유일의 중년가수다.

록에 뿌리를 둔 그의 음악은 발라드, 트로트와 전통음악을 넘나들며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그를 두고 영화배우 안성기는 “조용필은 대중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자 숙제인 인기와 작품성의 결합을 완벽하게 이뤄낸 사람”이라고 말한바 있다.

40년간 우리가 조용필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밴드에서 TV, 콘서트로 이어지는 변신

1969년 19살의 나이로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한 그는 곧이어 ‘화이브 핑거스’ ‘김 트리오’ ‘25시’ ‘조용필과 그림자’를 거쳐 1975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스타가 되기까지 걸린 이 8년의 시간을 그는 “기본을 쌓은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본래 기타리스트로 출발했다.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나오는 연주도 그의 솜씨다.

그는 기타를 연주하며 리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이에 대해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그가 스타로 떠오르고 나서 가장 비트를 잘 타면서 노래하는 가수, 심지어 타는 정도가 아니라 ‘비트를 쪼개 나눠 부르는 가수’라는 평판을 얻었던 것도 오랜 연주 경험이 가져온 산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80년 1집 ‘창밖의 여자’로 그 해 모든 방송사의 최우수 가요상과 최고 인기상, 가수왕상을 휩쓴다. 이어 ‘고추잠자리’ ‘나는 너 좋아’ ‘허공’ 등으로 매년 최고 가수와 작곡상을 거머쥐었고 1987년 일본에 진출해 NHK TV가요 홍백전에 외국인 최초로 출연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무게 중심을 공연으로 옮긴다. 이에 대해 그는 “92년 말 방송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은 히트곡을 더 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한계를 인정했다. 마흔 넘어 10,20대를 끌어안으려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는 절제다. 무대로 가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밴드 출신의 그는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엄청난 자본을 들여 메머드 급 무대를 만들고 아무리 늦어도 공연 한 달 전부터 연습에 들어간다.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은 모두 조용필이 밴드와 공연 장악력이 출중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대가(大家)도 “해봐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건 과감히 버린다”고 말한다.

그의 공연이 완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맛깔나게 불러내는 가창력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건재하다. 그의 노력에 팬들은 성원으로 보답한다. 유료티켓 비율이 90%를 넘는 공연을 지속적으로 해온 가수는 조용필이 유일하다.

록, 발라드, 트로트를 넘나드는 음악적 변신과 텔레비전, 음반, 공연으로 이어지는 활동 무대의 변화를 통해 그는 40년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시대에 따른 적절한 그의 변신은 이승철, 인순이 등 수 십 년 관록을 가진 채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가수들의 모델이 됐다.

■ 탁월한 가창력과 흡인력

조용필의 ‘롱런’과 관련해 최근 충북과학대 생체신호분석연구실 조동욱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조용필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음성’이고 두 번째는 ‘진심’이다.

조 교수는 조용필의 대표곡 중 느린 템포의 노래인 ‘그 겨울의 찻집’과 빠른 템포인 ‘여행을 떠나요’ 두 곡을 분석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조용필의 노래는 사람의 가청 주파수내 모든 주파수의 음이 골고루 분포돼 있어 듣기가 좋다”고 전했다. 저주파대 음으로 친숙하고 애잔한 음을 만들면서 고주파대 음으로 열정과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자유롭게 음을 구사한다는 것.

보고서는 또 “조용필은 평상시나 인터뷰 때 웃으면 입 꼬리가 올라간 후 다시 움직임이 있어 진짜 웃음을 짓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타고난 음역과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고집이 40년간 그를 가요계 최정상에 올려놓고 ‘국민가수’라는 수식어를 붙게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정리했다.

그의 40년 인기 비결을 맹자 사상을 통해 분석한 결과도 있다. 지난 달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홍호표 씨는 <조용필 노래에 담긴 맹자적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학위 논문에서 “(노래의) 히트 여부는 하늘에 달렸다.

여기서 ‘하늘’이란 바로 민심”이라며 “인간의 심성을 강조한 한국 철학의 전통은 맹자의 인간 중심사상과 맞닿는다. 조용필의 노래는 선한 본성을 가진 주인공이 인의(仁義)와 순정(純情)을 표현하고 하늘과 나를 합치시키려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정신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홍 씨는 조용필 노래 100여 곡에 나타난 맹자 사상을 분석했다.

한편 그의 인기에 대한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독특한 음색으로 시대를 넘어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도 탁월하다”고 말한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는 흡인력과 가창력을 꼽았다. 그는 “요즘도 노래 잘하는 가수는 많지만 조용필만큼 여러 종류 음악을, 그 음악 색깔에 맞춰 불러낼 수 있는 가수는 많지 않다. 경이로운 가창력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녹슬지 않아 콘서트 장을 찾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더 히스토리-나의 노래’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18~19개 도시와 해외 공연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을 위해 야외 공연장에 70~8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약 35층 높이의 무대를 짓고 3D 영상을 위한 스크린도 준비할 계획이다.

공연 연출을 맡은 이종일 감독은 “그의 대표적인 곡들이 웅장하게 편곡돼 배경으로 깔리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캐릭터화한 5분정도 분량의 애니매이션이 오프닝으로 담긴다”고 예고했다.

무대에는 조용필의 음악인생 40년과 ‘조용필과 팬’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40m 거대한 영상타워가 설치되는 등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전국 22개 도시에서 같은 무대와 음향을 감상 할 수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