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인생처럼 익어갑니다" 한국과 교류 증진에 기여하고 싶어 와인 등급 매기는 '파커 점수' 기준은 맛의 조화와 균형

지난 5월 말 국내 와인업계가 크게 들썩였다.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가 한국을 찾은 때문이다. 겨우 한 사람의 방한을 두고 이슈가 됐던 것은 그가 다름 아닌 ‘와인 황제’로 불리는 ‘거물’이란 이유에서다.

5월27일부터 5일간 한국에 머문 그는 이번이 첫 공식 방문. 도쿄를 시작으로 상하이 베이징을 거치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온 그는 도시에서 마다 와인 세미나 및 갈라 디너로 분주한 일정을 보냈다. “새로운 신흥 시장의 중심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의 와인 문화 교류를 위해 계획된 여행”이라는 것이 그가 공식적으로 밝힌 변(辯)이다.

“사실 10년 전에도 개인적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때와는 달리 서울이 많이 변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는 “일례로 시내에 당시에는 없던 와인바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번 방문은 삼성카드와 신라호텔의 초대로 성사됐다. “당장은 삼성카드와 신라호텔 고객들을 위한 것이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한국과의 와인 교류 증진과 와인 문화에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30년간 일반 회사와 와인과 관련해 ‘전략적 제휴’를 맺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그는 어떻게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가 됐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평범한 농장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와인을 태어나서 처음 마셔본 것은 21살이 됐을 때”라고 다소 의외의 얘기부터 꺼냈다. “제가 성장할 때 부모님 또한 와인을 마시지 않으셨거든요.”

처음 와인을 접한 것을 1967년 대학을 휴학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프랑스에 건너갔을 때였다. 6주 정도 머물렀는데 콜라를 마시려다 보니 레드 와인 보다 더 비싸다는 점이 항상 거슬렸다. 그렇게 와인을 접한 후 복학한 뒤 와인 테이스팅 클럽을 조직했다. “1주에 1번씩 모여 토론도 벌였는데 학교 공부 보다 와인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았어요.”

대학 졸업후 그가 가진 직업은 농업은행 전문 변호사. 하지만 그는 “변호사로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지금 말한다. 그래서 78년 그는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와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외아들이 번듯한 직업을 내팽개치고 매일 와인이나 마시는 직업을 갖는다고 생각하신 부모님도 이후 10~15년 후에는 ‘바른 결정’이었다고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82년 찾아왔다. 당시 빈티지 와인이 좋지 않다는 것이 미국 내 대부분 와인 평론가들의 생각. 하지만 파커는 “82년 빈티지 와인이 좋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82년산 와인은 잘 팔려나갔고 많은 와인 소비자들은 “맛이 괜찮다”고 그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와인 만 아니라 무슨 분야에서든 지금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한 것이지가 성공의 열쇠”라고 조언했다.

파커는 와인에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처음 시도한 파커 포인트가 그것. 와인을 권유하는 와인 애드버킷 창간과 함께 100점 만점의 평가제를 개발했다. 그가 매긴 점수에 따라 몇만원짜리 싸구려 와인이 될 수도, 수백만원이 넘는 고가의 와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 세계 유명 와이너리가 매년 그의 평가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는 얘기까지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와인 점수를 매길 때 조화와 균형을 가장 중시합니다. 좋은 와인은 흠잡을 데 없이 산도와 탄닌 등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죠. 오크향이나 알코올향이 너무 강하다든가 한가지라도 치우침이 있다면 훌륭한 와인이 아닙니다.” 그는 좋은 와인의 요건으로 와이너리에서부터의 정직과 순수, 단순성을 들었다.

그가 매기는 파커 포인트가 불변의 것은 아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 맛도 변하기 때문에 점수를 달리 매긴다고 말했다. “마치 마라톤처럼 처음 먼저 달리는 선수가 항상 마지막에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와인도 같은 원리입니다.”

세계와인업계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지는 않다. “30여년간 제 와인 평론에 대한 관심을 받아왔지만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와인소비자로서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 와인 로봇이나 두목은 아니거든요.” “보르도에서 일할 때는 주위의 지나친 관심에 부담도 컸다”는 그는 “하지만 세계의 수많은 셰프(조리장)들이 나를 위해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그가 와인에 점수를 매기는 과정도 공개했다. 전문적인 시음을 할 때는 사전에 정신적으로 휴식을 충분히 취한다는 것. “피곤하면 감각이 흐려집니다. 앞에 놓여진 와인에 모든 집중을 다하지요.” 아무 냄새도 없는 곳에서 객관적인 상태에서 시음을 하고 초콜릿이나 카페인, 야채 등의 음식도 피한다. 김치나 중국 쓰촨요리는 시음 전 당연히 기피 내상.

이를 위해 하루에 1리터 이상의 물을 마신다. 또 탄닌이 많거나 젊은 맛의 와인은 미리 샴페인 한 잔을 마시는 방법을 그는 추천한다. “제 코가 나이가 들면서 기능이 떨어지지 않냐구요?” 그는 “나이 25세가 넘어서면 감각이 떨어진다는 과학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만약 후각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감을 보였다.

■ 한국서 딸 입양해 특별한 인연

그의 평가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파커 포인트는 순전히 그의 개인적인 점수 산정이기 때문이다. “제 점수에 동의를 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습니다. 잘 훈련되고 체계화된 기준으로 점수를 주는 것이니까요.” 그는 “맛의 평가에서 과학이 있을 수는 없다”며 “평가는 독립적이고 평가 주체에게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단 한가지 와인 산업계나 업체로부터 사업이나 금전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내세우는 철칙이다.

파커는 한국과도 남다른 인연이 깊다. 그의 딸이 한국에서 입양됐기 때문. 87년 9월 당시 3개월된 아기를 입양했는데 지금은 21살의 성년이 됐다. “미술을 공부하는데 워낙 잘해 너무 자랑스럽다”는 그는 하지만 자신만큼 “아직 와인에 대한 조예는 없다”고 소개했다.

“제 입맛에 맞는 와인이란 없습니다. 다만 파커라는 인물을 통해 세계의 많은 와이너리들이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으로 제 역할을 충분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매기는 점수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와인이 만들어지고 발효, 숙성되고 결국 소멸되는 과정이 태어나서 성숙해지며 현명해지는 인생과 같다”고 덧붙였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