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결혼한 남녀 '300만잭팟' 나누기좌충우돌 6개월 계약 동거… 카메론 디아즈 주연 로맨틱 코미디

부산 동래의 복합상영관은 목요일 개봉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는 않는다. 어느 감독은 ‘진정한 관객은 개봉 첫날 첫회 상영한 영화를 보러온 관객’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진정한 관객’은 소수이지만 이들의 표정은 일당백의 진지함과 기대감으로 충만해있다. 첫 경험은 기억 목록의 첫 줄에 늘 기입된 것 같다. 처음 마셨던 사이다의 맛과 처음 보았던 영화 장면, 처음 승선했던 배에서 육지가 멀어져가는 풍경 등은 지우기 어려운 기억의 필름이다.

이런 연유로 감독은 첫날 첫회 관람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관객 역시 입소문이 나기 전의 개봉 영화에 대한 기대는 소개팅을 앞둔 20대의 은밀한 설레임과 비슷할 것이다. 이 설레임이 지방의 복합상영관 매표소의 정서같다.

복합 상영관의 목요일 매표소는 다소 분주하다. 하지만 관객들이 매표소에서 한 편을 선택한 다음 9개관으로 분산이동하기에 정작 상영관 안은 지나치게 한산하다.

심지어 현재 전국의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디아나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개봉할 때도 1회 상영시간에는 좌석의 절반을 조금 웃돌았던 것 같다. 흥행작의 좌석 점유율이 절반 정도이니 대부분 작품의 첫날 1회 상영의 분위기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회 관객층은 수업시작 전에 영화 한 편 보고 학교가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들과 가족들을 출근, 등교시키고 극장에 나온 것으로 짐작되는 40대의 주부 몇 명과 서로 직업을 알 수 없는 인간으로 분류하면서 호기심과 경계심으로 시선을 주고받은 남성 관객 극소수가 전부다. 지방 복합상영관의 첫날 첫회 관람은 진지한 영화를 감상하기에는 최적이지만 공포영화나 코미디를 감상하기에는 여의치 못하다.

특히 코미디는 웃음의 전염성으로 가득 찬 관객들과 함께 감상할 때 웃음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한 열에 한두명 감상하다 보면 희극장면이 등장해도 맘껏 웃지 못하며 설사 한두번 폭소를 터트리다가도 곧 정숙한 전체 분위기를 고려하여 자제하고 만다. 코미디는 혼자보다 여럿이 볼 때 재미있으며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열심히 웃는다는 연구 결과를 이곳 상영관에서 새삼 확인하고 있다.

톰 본 감독의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는 만원 사례 극장에서 감상하기 좋은 코미디다. 이 영화는 감독이나 장르적 재미보다는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스타덤에 오른 카메론 디아즈가 여전히 매력적인가라는 질문과 <사랑과 영혼>의 여 주인공데미 무어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애쉬톤 커처의 연기가 안정적인가에 더 관심이 기우는 작품이다.

대중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여 객석을 채워야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같은 대중성에 충실한 태도에 있으며, 결핍이라면 관객이 원하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극장문을 나선 다음 몇 마디 대사를 제외하고는 남는 여운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및 소통을 희망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싱거운 상업영화에 불과할 것이며, 미국의 스타 사진을 자신의 책상에 붙여본 경험이 있거나 극장은 팝콘과 콜라를 먹으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열심히 웃거나 울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는 관객에게는 친절한 영화로 평가 받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깜짝 파티를 기획했던 여자가 하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절교 당하고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가서 부친의 회사에서 퇴직당한 무직의 남자와 만나 취중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해프닝이 중심 서사다. 애정 없는 즉흥 취중 결혼은 이혼으로 종료하려 한다.

하지만 두 남녀는 라스베가스에서 헤어지려는 순간 잭팟이 터져 재산 분할을 위한 동거를 감수해야한다. 즉 300만 달러를 분할 소유하기 위해서 6개월의 결혼 생활을 해야 한다.

영화는 두 남녀가 헤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면서 특별한 애정으로 재결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관심을 유지하고 서사적으로 이를 설득할 것인가에 목숨을 건다. 여기서 세 가지에 주력한다.

하나는 카메론 디아즈의 성적 매력과 애쉬튼 커처의 남성성으로 프레임을 채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스토리를 짐작하는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제거하기 위해 웃기는 장면을 집어넣어 리듬을 만드는 일, 그리고 마지막은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주 인상적인 대사로 두 남녀의 애정 고백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세 가지는 20대의 청순함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연기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고수하는 카메론 디아즈의 연기와 6개월의 동거 기간 동안 서로 함정에 빠뜨리고 빠져나오는 게임식 서사 방식, 등대가 있는 해변에서의 청혼으로 관객의 판타지를 채워주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5% 부족한 것은 이 영화는 장르 룰에 초등학생처럼 충실하여 새로운 것이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장르 영화는 기존 장르 공식의 준수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이 결합해야 완성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신인 감독은 놓치고 만다. 음악의 과잉 사용과 파티 장면의 화려한 미장센은 화면을 기름지게 하지만 창조적 발상은 감소시킨다.

물론 “나는 한 번도 베팅한 적이 없어. 실패를 두려워 했으니까”라는 대사에 “나는 너에게 베팅하고 싶어”라고 호응하는 것과 조이(카메론 디아즈)가 퇴직하면서 사장에게 “원하지 많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보다 백수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식의 대사로 잭(애쉬튼 커처)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을 만하다. 영화의 대중성은 늘 장르 관습에 대한 충실성과 창조적 상상력의 수혈을 동시에 원한다는 까다로운 공식을 이 영화는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문학산 cinemh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