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문화에가려진 소중한 것의 재발견호동·태산·곡부·소주 등 살아있는 전통체험

유럽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광대한 땅을 자랑하는 중국에는 현재 56개 민족에 13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지금의 중국은 한족으로 대표되는 민족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녹아 하나의 문화를 이루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과거 화려한 문명을 대륙에 꽃피웠고, 미래에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중국. 그런 중국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어 나는 여러 차례에 걸친 답사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중국은 세계 4 대 문명 중의 하나인 황하 문명의 발상지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중국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고도(古都)를 중심으로 여행을 한다면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즉, 중국 최초의 나라였던 은의 유적이 발굴된 안양의 은허, 춘주 전국 시대 공자가 태어난 곡부와 제천의식이 행해졌던 태산, 중국 3 대 석굴 사원 중의 하나인 대동의 운강 석굴과 낙양의 용문 석굴, 진시황과 한 무제, 당 현종과 양귀비, 측천무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서안, 송의 수도였던 개봉, 강남의 남경, 항주, 소주, 상해 등을 둘러보면 유교 불교 도교 문화를 비롯해 이국적인 외래문화가 중국에 들어와 융합되어가는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나의 중국여행은 10여 년에 걸쳐 일곱 차례, 한달 간 문명 답사 여행을 한 것만도 세 차례이다. 그런데 2008 년 1 월 말에 다녀온 중국 답사는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여행이었다.

기차를 탈 때 춘절(설날) 인파에 떠밀려 압사 당할 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50 년 만에 내린 강남 지방의 폭설로 버스와 기차가 운행을 중단해 나의 여행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곳이 있다.

북경의 호동(胡同, 후통)거리는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가운데 중국의 전통 가옥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북경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고, 눈 때문에 버스와 케이블 카 운행이 중단된 태산(泰山, 타이산)을 걸어 올라가는 여정은 극기 훈련과 같았다.

유교의 정신적인 지주인 공자의 고향에선 시사 모임의 예술인들과 만남을 통해 한중 문화 교류의 장을 실감하였다. 운하와 정원의 도시 소주(蘇州, 쑤저우)에선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에 머물면서 소주의 전통 음악 예술인 평탄 공연을 통해 중국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대부분의 문화유산은 박물관처럼 죽어 있는 문화유산인데 비해 내가 이번에 여행한 곳은 전통을 이어 현대까지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접하게 된 것이어서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 북경 서민들의 정취가 남아 있는 호동(胡同, 후통)거리

중국의 수도인 북경은 중국여행 일정에 꼭 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나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 등 화려했던 명,청시대 왕조 문화유산만을 돌아본다면 반쪽 여행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쳐 지나기 쉬운 곳 중의 하나가 북경 서민의 소박한 정취가 남아 있는 호동(胡同, 후통)거리이다.

보통 북해(北海, 베이하이)공원 북문 건너편에서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출발하여 2 ~ 3 시간 정도 북경의 구시가지와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 (四合院, 쓰허위안) 건축 양식(ㅁ자형)을 둘러보고 고루(鼓樓, 구러우)와 종루(鐘樓, 중러우)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후통이란 원래 좁은 골목이란 뜻으로 몽골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원(元)대에 북경을 수도로 정하면서 시작됐다. 청대에는 2000 개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거미줄처럼 집이 지어졌고 1950 년대에는 6000개 까지 늘어났다.

원대에 세워져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왔던 고루(鼓樓, 구러우)에 오르면 정겨운 기와들이 어깨를 마주하듯 모여 있는 후통 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사합원(四合院, 쓰허위안)이란 ㅁ자형태의 남향 주택을 말하는데 가운데 정원을 두고 동쪽은 아들의 방, 서쪽은 딸의 방, 북쪽은 부모들이 기거하고 남쪽은 공부방, 손님방을 겸하는 양식으로 이루어졌다.

북경의 자금성과 같이 죽어있는 문화유산보다 서민들이 살고 있는 후통 거리는 추운 겨울에 갔더라도 사람 사는 정겨움과 체취를 느낄 수 있어 가장 중국적인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 중국의 명산중의 으뜸인 태산(泰山, 타이산)

베이징 만수산 북쪽의 '후호' 연못가에 늘어선 상점거리(위)
후통의 사합원, 중국 태산(아래)

태산은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명산이다.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6 시간 정도 내려가면 산동(山東, 산둥)지방에 있다. 동쪽에 위치한 태산은 동악(東岳)이라 하여 오악독존(五岳獨尊)으로서 숭배해왔는데 중국인들은 이곳에 오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애 한번은 꼭 오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역대 황제들은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의식을 행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하늘의 신(神)께 보고 드렸으며 하늘의 신성한 승인을 얻고자 했다고 한다..

태산까지 가는 길은 6,660 개의 계단으로 무릎 관절에 안 좋기 때문에 정상까지 오르는 게 걱정스러웠지만 태산까지 와서 정상을 보지 못했다고 했을 경우 학생들의 실망하는 눈빛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걷고 또 걸었다.

태산의 중간 지점인 중천문(中天門)을 거쳐 가장 힘든 난코스인 십팔반(十八盤)을 지나 남천문에 오르니 천가(天街), 즉 하늘길이 시작되었다. 태산의 봉우리들이 발아래 보이기 시작하면서 탁트인 전망이 눈에 들어오니 힘들었던 순간은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불교 사원인 벽하사(碧霞祠)의 눈덮힌 기와지붕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드디어 태산의 최정상 1545 m의 옥황정에 올랐다. 이곳에 오르기까지 많은 우여 곡절과 번민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해냈다. 태산 등반은 희망찬 새해가 시작된 시점에서 나 자신을 극복한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다.

■ 공자의 고향 곡부(曲府, 취푸)

태산 기차역 광장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1 시간 달리면 곡부에 도착한다.

작은 시골마을이나 다름없는 곡부를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게 만든 것은 바로 2000 여 년 동안 내려왔던 중국의 정치사상인 유교 창시자, 공자의 발자취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는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고, 한 무제 이후 각 왕조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으면서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위세를 떨쳤던 곳이다.

그러나 문화혁명 시기 공산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부정되어 공자와 관계된 문화유산은 파괴되었고 도시 전체가 사라질 뻔한 위기도 맞았었다. 그러다 1980 년대 개방 정책이후 공자와 유교는 복원되었지만 중국인들은 사회주의체제하에 있기 때문에 아직도 공자의 사상은 봉건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곡부에서의 여행은 내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 주었다.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의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公俯), 공자와 공자 후손들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을 돌아보던 도중 이곳에서 한식 호텔을 운영하는 한국인 권 선생님 덕분에 곡부 시사(詩社) 모임에 저녁 초대를 받은 것이다.

시사 모임은 시와 서예를 사랑하는 곡부 예술인들의 모임인데 특히, 공부가주(孔府家酒, 콩푸지아주)의 글씨로 유명하신 서예가 ‘서수장(徐壽嶂, 쒸소우장)’선생님, 시사 모임의 회장이신 시인 ‘설리민(薛利民)’선생님과 두 분의 제자 들, 공자의 75 대 후손인 공 선생님, 곡부의 행정 관리 등 곡부를 이끌어가는 지성인들의 모임이었다. 식사 중에 ‘설 선생님’은 직접 일어나셔서 한국에서 온 나를 위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주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 건너 먼 곳인 이곳(중국)을 유람하면서

그대는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성지(곡부)에서 새로운 친구도 만났으니

유학이 너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분들이 처음 만난 나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 그 시에 함축되어있는 듯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공자를 찾아온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으며 유학의 참뜻을 마음에 새겨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내게 아리랑과 도라지 등 우리의 민요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불렀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예술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를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 운하와 정원의 도시 소주(蘇州, 쑤저우)

중국 황후 서태후가 머물렀던 베이징의 '낙수당', 베이징 상점의 물품(위)
항주 호구앞의 운하, 베이징 평장로 거리(아래)

소주는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춘추시대 오(吳)나라가 부강해진 원인이 소주에 수로를 파서 ‘회화(淮河)'를 연결시켜 식량수송의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어서 중국 각 나라는 이러한 오의 기술을 배우려고 했단다.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처럼 소주는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소주에서 잊지 못할 추억은 중국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에서 묵으면서 소주 지방의 전통 음악인 평탄(評彈) 공연을 본 것이다.

Mingtown Youth Hostel(소주명당국제청년여사, 蘇州明堂國際靑年旅舍)은 이번 중국여행에서 가장 맘에 드는 숙소로 저렴한 가격에 중국 전통 가옥을 체험할 수 있어 여행자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녹여 주기에 충분했다.

소주의 전통 음악예술 공연을 볼 수 있는 평탄(評彈) 박물관에서는 매일 오후 1시 30분에 평탄 공연이 행해진다. 평탄(評彈)이란 당송시대 이야기와 노래를 소주의 방언으로 만든 음악예술이다.

우리는 설날이나 추석 때 의례적인 국악 공연이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생활 속에서 전통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며 지켜나가는 소주 사람들이 부러웠다.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의 기후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내가 원하는 대로 일정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번 중국 여행에서 마음을 비워야하거나 또는 간절하게 빌어야만 했던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힘든 일이 지나가면 내게 행운이 찾아왔고 뜻하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여행은 나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듯 여유를 갖는다면 일은 자연스레 풀려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유명한 문화유산에 가려 모르고 지나갈 뻔했던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였다는 것이 큰 소득이었다.

◇ 김지희 약력

서울 광영여고 교사. <문명의 숲, 중국을 가다> <하늘을 마주하고 잉카 문명 위에 서다> <하늘과 땅과 바람의 문명1,2>저자. KBS <세상은 넓다>단골 패널.


김지희 kji33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