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5,000원이상과 현실사이 국가와 통치자 향한 문제제기와 답·해설

『 이해만 따지고 시비를 중시하지 않으면 일을 옳게 처리할 수 없고, 시비만 따지고 이해의 소재를 강구하지 않으면 변고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시비도 명백하지 않고 이해도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선택하기 어렵다면, 일의 경중과 완급을 살피면 됩니다. 나라는 근본에 힘써야 하며, 일은 요령을 알아야 합니다. - 본문 중』

율곡은 현실에 기반한 관료로서도, 당대 학계의 최고 지성으로도 모두 성공한, 흔치않은 인물로 추앙받는 조선 대표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그토록 생애 내내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노심초사한 율곡의 책문이 이 시기에 발표된 것은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조선 최고 지식인의 17가지 질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율곡문답>은 16세기 조선 중기의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국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과 긴밀한 교류가 왕성하게 전개됐던, 위대한 지성사이자 지적 사회사가 펼쳐졌던 시기에 그가 있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을 비롯해 김인후, 일재 이항,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등 오늘날까지도 거성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활약했던 ‘한국 학문사의 황금기’, 쟁쟁한 담론의 시대 중심부에 우뚝 서 있었다. 여러 방면에 걸쳐 율곡의 흔적과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기념비적으로 손꼽히는 지성의 모델이다.

‘북로남왜’라는 국제질서의 교란기이자 조선 창건 이래 100년에 접어들면서 온갖 모순이 횡행하던 혼란기 속에서도 율곡은 당대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한 고뇌와 조선 석학으로서의 답안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율곡문답>은 이상과 현실 앞에서 국가와 통치자를 향한 율곡의 고뇌에 찬 17가지 문제제기와 자답, 해설이 담겨 있다.

율곡의 지적 범위와 깊이는 아직도 현대인들이 쉬 따라잡지 못할만큼 방대하고 심도있다.

그가 고심한 문제들은 그 낱낱마다 넓이와 깊이가 빛난다. 역사의 정의로운 이념과 현실과의 괴리 문제, 인간으로서의 최선이라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반문과 확인, 학문의 정도에 대한 갈등과 정의 등 국내 사회와 인본적 사회의 방향 제기에서부터 격변기 국제질서의 흐름속에서의 국방정책의 갈 길, 난관에 부딪친 중국과의 외교문제 등 이미 ‘글로벌’ 시대의 국가 생존안을 탐색했던 조선의 이론가이자 실천가형 석학이다.

심지어 자연과학인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율곡의 탐구세계는 광활하다. 조선을 넘어 오늘에 이르러서도 시대를 초월한 거대 지성의 담론을 대하는 듯한 울림을 선사한다.

몇주째 촛불집회 대열은 이어지고, ‘민심의 소리를 들으라’는 외침이 청와대 앞을 메운 지금, 새삼 들춰보는 율곡문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현실없이 이념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한 그의 말이 ‘이념없는 현실 또한 생각해서는 안 될’ 오늘의 한국사회를 한번 더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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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